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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9월25일 평형관대첩, 항전의 첫 승리 이룩
2015-09-25 09:59:38 cri


오늘은 9월25일입니다. 1937년의 오늘 팔로군 제115사단(師)이 평형관(平型關) 전투에서 크게 승리했습니다. 중국이 항일전쟁기간 거둔 첫 큰 승리인 평형관 대첩으로 인해 일본군의 불패의 신화가 깨졌습니다.

1937년9월 중순, 일본군은 평형관 요새를 점령하고 중국 제2전구의 군대를 섬멸하려는 속셈으로 신속히 장성일대에 접근했습니다.

중국 제2전구 염석산(閻錫山)사령관은 평형관에서 안문관(雁門關), 신지(神池)에 이르는 장성 안쪽 일대에서 방어전을 펼쳐 일본군이 산서 복지를 침범하는 것을 막으려는 결심으로 팔로군(八路軍)의 주덕(朱德)총사령관에게 전문을 보냈습니다. 전문은 "측면에서 적의 배후를 협공하도록 임표(林彪)사단에 지시(希電林師夾擊敵之側背)"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우군의 작전에 협조하고저 주덕 사령관은 안문관 서쪽의 신지지역에 진입해 대동(大同)에서 남침하는 일본군을 측면 공격하도록 제120사단에 지시하고 평형관 서쪽의 대영진(大營鎭)에서 적절한 시기에 평형관을 침범하는 일본군을 측면 공격할 준비를 하도록 제115사단에 지시했습니다.

평형관 동쪽은 끝 없이 이어진 뭇 산들로 계곡 길을 형성했고 남쪽 고지는 은폐와 기동, 매복습격에 훌륭한 지형이였습니다. 제115사단은 평형관에 매복해 적을 섬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9월23일 밤, 사단 사령부는 주력을 이끌고 평형관 동남쪽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염장(冄庄)지역에 진입했습니다. 24일, 사단장 임표와 부사단장 섭영진(聶榮臻)은 간부들과 함께 현지 조사를 한 뒤 평형관 동북쪽에 있는 13킬로미터 정도 길이의 도로 옆에 매복하여 령구(靈丘)에서 평형관 쪽으로 진격하는 일본군을 기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4일 밤, 제115사단은 폭우를 무릅쓰고 예정 지역에 매복했습니다.

9월25일 새벽, 일본군 제5사단 제21여단의 주력군과 사단의 치중대는 령구에서 평형관에 이르는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격했으며 7시 경 전원이 제115 사단의 매복권에 진입했습니다. 제115 사단은 전 지역에서 맹 공격을 개시해 적군의 퇴로를 끊고 분할 포위한 뒤 육박전을 벌였습니다. 일본군은 치중 차량을 엄호물로 삼고 완강하게 저항했습니다. 전투에서 팔로군 제685연대(團) 2대대(營)5(連)중대 증현생(曾賢生) 중대장은 맨몸으로 일본 병사 10여명을 살해했으며 중대원들을 이끌고 일본군의 자동차 20여대를 소각하고 마지막 하나 남은 수류탄을 폭발시켜 적과 함께 죽었습니다. 제686연대 3대대 9중대의 중대원들도 십여명 외에 모두 희생됐습니다. 5중대 3소대(排)의 병사들은 여러번 부상을 입었음에도 끝까지 전투를 견지하다 장열하게 희생됐습니다. 오후 1시경 채가욕(蔡家峪) 동쪽의 일본군은 전투기 6대의 엄호하에 노야묘(老爺廟)고지에 반공격을 가하다 팔로군에 의해 격퇴당하거나 섬멸됐습니다. 그때부터 전투가 끝날 때까지 팔로군 제115사단은 일본군 천여명을 섬멸하고 자동차 백여대와 마차 2백여대를 파괴하고 소총 1000여자루와 기관총 20여정, 대포 1문을 노획했으며 아군에서도 6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평형관 전역에서 팔로군이 첫 승리를 거둔 소식에 전국은 기쁨에 휩싸였으며 국민의 사기가 크게 진작됐습니다. 전투는 공산당과 팔로군의 명성을 떨쳤으며 국제 여론의 찬사와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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