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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 10월 21일, 일본군 광주 점령
2015-10-21 09:21:20 cri

오늘은 10월 21일입니다. 1938년의 오늘 일본군이 광주(廣州)를 점령했습니다.

광주는 화남(華南)연해의 최대 도시이고 중국이 홍콩을 이용해 외국 원조물자를 유입하는 주요 통로였습니다. 중국 화남의 외국원조 노선을 절단하기 위해 1938년 9월 7일 일본군 근거지 어전(御前)회의에서는 광주를 공략하는 결정을 정식으로 내리고 제21군을 편성해 광주를 공략하도록 명했습니다.

9월 19일 제21군 전투 서열이 하달되고 일본군 대만군 사령관 후르쇼 간료우 중장이 사령관을 맡았으며 예하의 제5, 제18, 제104 사단과 제3 비행단 등 부를 설치했습니다. 동시에 해군 제5함대가 제21군을 협조해 광주부근의 요지를 진공하고 중국에서 국외로 오가는 주요 보급선을 절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국적인 항일전쟁이 발발한 후 국민정부군사위원회는 광동(廣東)에 제4작전구역을 설립했으며 하응흠(何應欽)이 사령관을 겸임했습니다. 군사위원회는 일본이 만약 광주를 공격하면 영국의 이익을 해치게 되여 영국의 간섭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일본이 경솔하게 광주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때문에 시종 광주를 중점 방어지역으로 간주하지 않고 광서의 대부분 병력을 화중 작전구에로 돌렸습니다. 무한(武漢)회전기간에는 광주에서 4개 사단을 무한보위전에로 돌려 빈약한 화남병력을 보충했습니다.

광주작전이 시작되기 전 제4작전구는 제12집단군 총사령 여한모(餘漢謀)가 작전 부사령관을 맡고 광동 방위사무를 책임졌습니다. 예하에는 3개 군단, 2개 독립여단, 호문(虎門)요새부대 등 총 8개 사단의 병력을 두었습니다. 또한 여러 사단을 각기 호문, 혜양(惠陽), 조산(潮汕), 대아만(大亞灣), 증성(增城), 종화(從化), 광주 동쪽 교외 등 지에 배치해 병력을 분산시키고 경계심을 낮추었습니다.

일본군 제21군은 10월 9일 해군 제5함대의 호위 하에 마공(馬公)에서 출항해 11일에 대아만에 도착했습니다. 12일 새벽 일본군은 해군 제5함대의 수십척 군함과 백여대 비행기의 엄호 하에 대아만에 강행 상륙했으며 거의 저항을 받지 않았습니다. 일본군 제21군은 상륙 후 선후로 담수(淡水), 혜양, 박라(博羅)를 점령했습니다.

20일에 중국군의 방어를 뚫고 21일에 광주를 점령했습니다. 22일부터 23일가지는 연이어 평해(平海), 임산(稔山), 길륭(吉隆), 증성, 태평장, 종화, 호문 등 요지를 점령했습니다.

광주작전이 무한회전기간에 펼쳐짐으로 하여 중국 수비군은 유력한 저항을 거의 조직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일본군은 9일도 안돼 손쉽게 광주를 점령했고 무한작전과의 협동 작전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일본군은 광주를 점령한 후 그 후의 남진작전에 전진기지를 구축한 반면 중국은 중요한 국제물자운수선을 잃어 지구적인 항일전쟁에 새로운 어려움이 가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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