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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11월13일 모택동, 독립자주의 화북유격전을 견지할 것 팔로군에 지시
2015-11-13 08:14:04 cri


오늘은 11월13일입니다. 1937년의 오늘 모택동(毛澤東)은 전보를 보내 팔로군이 화북유격전쟁을 견지하고 전면항일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실시할것을 지시했습니다.

1937년 11월 8일 중국침략 일본군은 태원(太原)을 점령한 후 계속 평한(平漢) 진포(津浦), 동포(同蒲), 평수(平綏) 등 철도를 따라 진공했는데 화북의 대면적의 국토는 적들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화북전쟁의 국면에는 새로운 태세가 나타났습니다.

11월13일 모택동은 중공중앙 북방국(北方局)과 팔로군 본부 그리고 주은래(周恩來),류소기(劉少奇), 양상곤(

楊尚昆)과 팔로군 각 사단의 책임자들에게 전보를 보내 산서 국민당 각 군이 크게 붕괴하고 정규전쟁이 끝났으며 남은것은 팔로군을 위주로하는 유격전쟁이라고 알렸습니다.

모택동은 팔로군의 임무는 더 한층 독립자주 원칙을 발휘해 화북유격전쟁을 견지하며 왜놈들과 맞서 산서 전 성의 대다수 농촌을 유격근거지로 만들고 대중을 발동해 궤멸된 군사를 재 배치하는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자체역량을 확대하고 자급자족하며 다른 사람에 의지하지 않고 소승전(小勝戰)을 많이 이룩해 사기를 북돋우며 전국적으로 그 영향력을 행사해 전면항전의 새로운 국면을 형성하는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모택동의 지시에 따라 중공중앙 북방국과 팔로군 본부는 산서를 주요 진지로 하는 화북항일전쟁을 지탱했고 독립자주적으로 유격전을 벌이면서 항일근거지를 창건했습니다.

그 뒤 팔로군 제15사단의 한부대는(一部)진찰기(晉察冀) 변구에서 일본군의 포위를 필사적으로 물리쳤으며 12월 하순에 와서는 형제부대와의 협동작전으로 일본군 천여명을 사살했습니다. 1938년 1월에 진찰기변구 군정민(軍政民) 대표대회가 열렸으며 대회에서 항일민주정권이 선출되었습니다. 이로써 팔로군이 개척한 첫 적후항일근거지가 형성되었습니다.

제120사단은 산서 서북쪽 지역에서 분산돼 대중을 발동해 군 확장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1938년 1월에 부대는 발전해 그 수가 2만여명으로 늘었으며 각 현에도 자위군과 유격대를 설립하면서 진서북(晉西北) 항일근거지가 점차 형성되었습니다.

제129사단은 계속해 산서 동남부와 하복 서부, 하북 남부에서 여러가지 항일단체와 항일자위대를 조직하고 새로운 항일민주정권을 건립했으며 항일무장을 창설했습니다. 1938년 봄에 와서는 진기예(晉冀豫)변구 항일근거지가 점차 형성되었습니다.

제115 사단 사령부는 제343 여단을 이끌고 산서 서남부에 도착해 대중사업을 전개하는 한편 중국침략 일본군을 타격했습니다.

1938년 봄과 여름이 바뀌는 시기 진서남(晉西南) 항일근거지가 초보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화북적후유격전쟁의 전개와 항일근거지의 창건은 넓은 적후 전장을 개척했으며 중국침략 일본군은 정면과 적후 두 전장에서 협공(夾擊)을 받았고 중국의 항일전쟁은 이때로부터 새로운 전략적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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