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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11월 19일, 중공중앙 신사군의 소북 항일근거지 개척 동의
2015-11-23 09:23:04 cri

오늘은 11월 19일입니다. 1939년의 오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신사군이 소북(苏北)항일근거지를 대폭 개척하는데 동의했습니다.

1939년 11월 11일, 류소기(劉少寄)는 중공중앙에 전문을 보내 소북근거지의 창설을 제안했습니다. 11월 19일, 중공중앙은 답전에서 "전적인 동의"를 표했으며 "전반 강북의 신사군은 응당 안경(安庆), 합비(合肥), 회원(怀远), 영성(永城), 하읍(夏邑)으로부터 시작해 광범위하고 강하게 동쪽으로 발전해야 하며 바닷가까지 발전하지 못하면 절대 그만두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중앙의 지시에 따라 1939년 12월부터 1940년 2월까지 류소기는 안휘성 동부지역에서 중원국 회의를 세번 주재하고 소북항일근거지를 개척하여 동부로 한층 발전하는 전략적 방향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 때 국민당 완고파는 이미 반공 중심을 화중 지역으로 전향했으며 강북 신사군의 남쪽 전이를 강경히 명령하는 한편 강북의 신사군을 진공했습니다. 이에 비춰 중공중앙은 팔로군의 일부를 남하시켜 증원했으며 신사군과 협동하여 소북에서 새로운 항일근거지를 개척했습니다.

1940년 6월, 남하한 팔로군 2종대 5개 연대의 1만 2천여명은 하남과 안휘, 강소 항일근거지에 진입했으며 신사군 제6분대와 회합하였습니다. 7월, 이 두 부대는 팔로군 제4종대로 합편되었으며 팽설봉(彭雪枫)이 사령관으로 황극성(黄克诚)이 정치위원으로 되었습니다. 황극성은 또 제5종대 사령관 겸 정치위원도 담임했습니다. 정돈, 편성을 마친 후 제4종대 1만 7천여명은 하남과 안휘, 강소 주변의 유격전쟁을 견지하면서 항일근거지를 확대했습니다. 제5종대의 약 2만명의 일부는 안휘 동부의 유격전쟁을 견지했으며 주력은 강소 북부로 전진해 회해(淮海)항일근거지를 초보적으로 개척했습니다. 이 기간 강소 남부의 신사군 강남지휘부 주력은 연속 북쪽으로 장강을 도하하여 앞서 강소 북부의 연강(沿江) 지역에 진입한 종대와 강소, 안휘 분대를 지원하였으며 6월말 곽촌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7월, 강소 북부 신사군 각 부대에 대한 영도를 강화하기 위해 신사군 강남지휘부는 소북 지휘부로 개칭하고 진의(陈毅)와 속유(粟裕)가 정, 부 지휘를 담임했습니다. 부대는 정돈, 편성을 마친 후 즉각 황교(黄桥) 지역으로 전진했으며 정강(靖江) 동북의 고산(孤山), 서래진(西来镇) 등 일본군 거점을 공략하고 일본군의 두차례 보복성 "소탕"을 분쇄했습니다. 그러나 국민당 완고파 군대의 저애와 공격을 받았습니다. 10월 상순, 소북 신사군은 자위에 나서서 자신들보다 몇 배 더 많은 한덕근(韩德勤) 부대를 물리치고 황교 결전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기간 팔로군 제5종대의 주력은 국민당 완고파 군대의 저애를 물리치고 남하하여 지원을 했으며 10월 10일 동태현(东台县) 마구진(马驹镇)에 도착하여 북상한 신사군 부대와 승리적으로 회합하였습니다. 이로써 신사군과 팔로군은 남북으로 상호 전진해 소북항일근거지를 함께 개척하는 전략적 과업을 기본상 완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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