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소개
게시판
조선어부 소개
 
cri korean.cri.cn/
1937년11월26일, 범촌 전투서 팔로군 승전
2015-11-26 09:47:30 cri

오늘은 11월26일입니다. 1937년의 오늘, 팔로군은 범촌(范村) 일대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전을 거두었습니다.

일본군이 태원(太原)을 강점한 후 화북(華北)지역의 항전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1937년11월12일 모택동(毛澤東)은 연안(延安)에서 중국공산당의 열성자회의에서 보고를 하면서 "화북지역에서 공산당을 주체로 하는 유격전쟁이 대표적인 지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화북지역에서의 유격전쟁의 시작을 보면 모택동이 태원이 강점당하기 전에 중국공산당 중앙 북방국(北方局)과 팔로군본부에 5회에 걸쳐 전보를 보내 화북지역에서 독립자주의 산간지대 유격전쟁을 견지할데 관한 전략방침과 배치를 명확히 제시했습니다. 태원이 강점당한 다음날 모택동은 또 팔로군의 각 사단들에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는 화북지역에서 정규전이 끝나고 유격전이 대표적인 전쟁이 된 상황에서 머지않아 왜놈들이 곧 주력군을 내륙지역으로 옮겨 여러 현(縣)의 요충지들을 진공할것으로 예상하면서 섭영진의 부대(聶部)와 하룡의 부대(賀部), 류백승의 부대(劉部), 임표의 부대(林部) 가 주력이 되고 일부만 습격부대로 하며 다수의 병력은 여러 지역의 요충지에 흩어져 민중무장을 조직해 일본군과 싸우도록 배치했습니다. 모택동은 한달안에 큰 성과를 거두어 적들의 내륙 진공에 대응하기 위한 충분한 힘을 모을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11월13일 모택동은 중국공산당 중앙 북방국과 팔로군 본부에 또 다시 전보를 보내 팔로군의 당면한 과업은 왜놈들과의 전투에서 산서(山西)성의 대부분 시골들을 탈취해 유격근거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모택동은 이로써 대중들을 발동하고 패전으로 흩어진 군대들을 재 편성하여 규모를 늘리며 자급자족하고 소규모의 승전을 많이 거두어 군민의 사기를 북돋우고 그로써 전국에 영향을 주어 전면항전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중국공산당 중앙과 모택동의 지시에 따라 중국공산당중앙 북방국과 팔로군 본부는 산서를 주된 진지로 하여 화북지역의 항일전쟁을 진행하고 독립자주적으로 유격전을 벌여 근거지를 창조하면서 국민당군의 작전에 협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37년11월26일 일본군의 보병 500여명과 기병 1개 중대가 대표 6문과 자동차 2대와 함께 산서성 태곡(太谷)현 범촌 일대를 진공했습니다. 정보를 입수한 팔로군의 제129사단 제386여단 제771연대 제1중대는 적이 많고 아군이 적은 상황에서 빠른 기동 전술로 용감히 전투에 임했습니다. 팔로군 제771연대 제1중대는 각 소대들을 적들로부터 5킬로미터 떨어진 길옆의 수풀에 매복시켜 적군을 기다렸습니다. 적군이 유효한 사정거리에 들어섰을 때 제1중대의 장병들은 침착하게 일본군에 사격을 가했습니다. 돌연습격에 일본군은 방어도 못하고 퇴각했습니다. 다음날, 771연대는 또 태곡현의 곽보(郭堡)에서 일본군을 습격했습니다. 두차례의 전투에서 일본군은 사상자 100여명을 냈으며 팔로군은 교묘한 전술로 승전을 거두었습니다.

  관련기사
중국각지우편번호중국각지전화코드편의전화번호호텔
China Radio International.CRI. All Rights Reserved.
16A Shijingshan Road, Beijing, 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