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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촌의 어제와 오늘
2018-02-07 19:59:28 cri

서하촌 전경

북위 31도, 대별산 북쪽 산자락에 위치한 수백년 역사의 옛 마을 서하촌(西河村)은 마을을 가로 지르는 서하로 인해 그 이름을 얻었다.

하남성(河南省) 신양시(信陽市) 신현(新縣) 주하향(周河鄕)에 위치한 서하촌은 원나라 말 명나라 초기에 장씨 성 가족이 강서(江西)로부터 이사를 오면서 삶의 터전을 잡은 곳이다. 마을은 800여년의 역사가 있으며 촌민 대부분이 장씨 성이다. 오늘날 서하촌은 하남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사문화옛촌, 전국 생태문화유명촌, 중국의 가장 아름다운 촌진, 중국 향촌관광 최고의 목적지 등 미명을 갖고 있다.

하지만 불과 5년전만 해도 이곳은 가난하고 지저분한 낡은 촌마을이 였다.

신현은 하남성에서 유일한 장군현이며 서하촌은 어젯날의 홍색 근거지이기도 하다. 깊은 산속에 위치한 특수한 지리적 위치는 서하촌의 이름을 알림과 동시에 마을의 발전을 저애하기도 했다. 마을의 노동력이 선후로 마을을 빠져 나가고 심지어는 아예 마을을 떠나는 가정이 늘면서 노동능력이 없고 밖으로 나갈 능력이 구비되지 않은 노인과 아이들만 남아서 마을을 지키는 상황이 되었다. 가장 심각할 때는 촌민 39명이 마을을 지키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예전의 서하촌

2013년 8월 1일 신현 정부는 해내외 유명 전문가 500명을 청해 "영웅의 꿈, 신현의 꿈"이라는 계획을 제기했다. 계획은 9개 아름다운 향촌 건설 방안을 가동했는데 서하촌도 그 속에 들었다. 새로 부임 된 신현 여려(呂旅) 현장이 직접 서하촌 명예 촌민위원회 주임을 맡아 나섰다. 서하촌 개조 프로젝트 장일모(張一謀) 상무 총지휘의 소개이다.

"전단계 조사 시 현지의 인문과 지리, 문화, 민속, 민풍을 파악한 후 생태의 서하촌, 역사의 서하촌, 촌민의 서하촌, 관광의 서한촌을 건설하기로 확정했습니다."

서하촌은 생태보호 레드라인을 지키고 향촌 특색과 역사 문화의 혼을 살리는 것을 전제로 철거와 복구, 개발 ,개조를 통해 짧은 몇년간 기존의 낡고 지저분하고 난잡하던 마을의 모습을 180도로 바꿨다. 재래식 화장실과 소우리, 돼지우리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공기가 정갈해 졌으며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넓어지고 가로등이 늘어섰으며 집집마다 WIFI 신호가 들어갔다.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한 서하촌

마을이 깨끗해지고 인프라 시설이 제고되면서 향촌관광업도 흥하기 시작했다. 촌민들의 수입이 늘자 외지에서 품팔이를 하던 촌민들이 하나 둘 마을에 돌아오기 시작했다. 오늘날 서하촌의 상주인구는 기존의 39명으로부터 88가구, 400여명으로 늘었다.

마을에 사는 장양(張洋) 씨는 2006년 18세 나던 해에 광동(廣東) 산두(汕頭)로 품팔이를 떠났다. 2013년에는 친구의 도움으로 한국 노무길에 올라 자동차 부속품 생산가공에 종사하기도 했다. 2016년 고향의 변화와 상업기회를 눈여겨 본 장양 씨는 고향을 떠난지 10년만에 고향에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농가락 관광점을 운영하기로 했다.

2016년 4월 갓 귀국한 장양 씨는 마침 마을에서 열린 제1기 향촌부흥포럼을 접하게 되었다. 중국과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해내외 문화재 전문가들이 마을에 모여 각 나라 향촌 문화재보호의 최신 실례와 경험을 교류하고 수많은 매체의 기자들이 잇달아 마을을 찾았다. 하루 아침에 인적이 드물던 옛 마을 서하촌이 흥성흥성해지고 번영하는 양상은 오래동안 외지에서 분투해온 장양 씨를 놀라게 했다.

"예전에 아버지가 전화에서 마을이 여차여차하게 변했다 말해도 크게 믿지 않았습니다. 마을이 변화했으니 반드시 돌아와 마을건설에 이바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습근평 총서기가 금산은산과 청산녹수를 모두 돌보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마을의 청산녹수가 바로 보배입니다. 지금 저는 한국에서 근무하던 시절과 수입이 비슷합니다. 부모님을 돌보고 처자식과 함께 생활하면서 사는 멋이 납니다."

서하촌 커피숍

아름다운 향촌 건설은 서하촌의 마을 면모를 변화시키고 촌민들의 돈주머니가 두둑해 지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서하촌 사람들의 정신상태를 변화 시켰다. 마을 주민 장인성(張因成) 씨를 대표적인 일례로 들수 있다.

올해 34세 나는 장인성 씨는 선천성 지적 장애를 앓고 있다. 3살과 10살 나던해 에 선후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읜 장인성 씨는 계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학교를 중도에서 그만 둔 장인성 씨는 성격이 갈수록 소심해 졌으며 한적한 마을 분위기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을 거의 잃다싶이 했다. 2013년 마을 개조팀이 마을에 들어오자 외부와 거의 단절되다 싶이 살아 온 장인성 씨는 낯선이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돌멩이를 날리기도 했다.

서하촌 촌민 장인성 씨

하지만 오늘날 아름다운 향촌을 건설하면서 장인성 씨가 접촉하는 사람과 일들이 많아졌으며 자신의 "사업"도 생겼다. 처음에는 산에 올라 야생과일을 따다 관광객들에게 판매하던데로부터 2016년에는 주변 마을의 촌민들을 동원해 과일을 채집하고 그 과일들을 수매하기 시작했다. 관광성수기에는 일평균 수입이 1천원-2천원에 달한다. 견식이 넓어지면서 장인성 씨의 성격도 활달해 졌다. 자신의 "사업"이 생긴 장인성 씨는 이제 색시를 얻어 가정을 이룰 꿈을 꾸고 있다.

장인성 씨는 서하옛촌락풍경구 관리위원회 장일모 씨와 귀향해 촌민들을 이끌어 치부의 길에 오르도록 한 장사은(張思恩) 씨, 장화 (張華)씨의 이름을 자주 입에 올린다. 그러면서 이 세사람이 마을을 떠나서는 안된다고 덧붙인다.

서하촌 알곡기름박물관

장사은 씨는 서하촌에서 나서 자란 사람이다. 20여년간의 노력으로 장사은 씨는 베이징에서 건축인테리어회사 두개를 운영하는 리더가 되었다. 장일모 등 향정부 지도자들이 그를 향해 도움을 청했을 때 장사은 씨는 아무런 주저없이 배이징의 사업을 접고 귀향길에 올랐다. 2014년 1월 서하농경원재배양식농업합작사가 설립되었고 장사은 씨는 합작사 이사장이 되었다.

"마을에서 20년간 생활하다고 20세 이후에 베이징에서 품팔이를 했습니다. 마을에 책임감을 갖고 있기에 돌아올 결정을 했습니다. 마을이 하루하루 변화하는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마을발전이 저희를 수요로 한다면 두말없이 나설 것입니다."

장화 씨는 서하농경원재배양식농민전업합작사 지배인이다. 그는 장사은 씨와 마찬가지로 외지에서 창업에 성공한 서하촌 사람이다. 장사은 씨가 귀향 건설계획에 대해 제기하자 장화 씨는 곧 이에 동참해 나섰다.

"우리는 모두 고향에 대한 정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입니다. 지금 좋은 정책이 출범돼 농촌을 발전시키고 있는데 이는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서하촌 텐트 호텔

이들 마음속의 향수가 이들이 마을로 돌아오도록 한것이다. 오늘날 서하촌은 정부가 추동하고 전문가가 기획하며 현지 우수한 인재들이 인솔하고 촌민주체의 모델로 발전을 도모해 옛 마을이 생기로 넘치고 있으며 마을 촌민들은 향촌관광발전이 가져다 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마을의 서하알곡기름박물관과 커피숍, 텐트호텔들이 잇달아 영업에 들어가면서 서하촌은 현대화 느낌이 물씬 풍기고 있다. 서하촌의 발전은 사회각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관광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유유히 흐르는 서하는 서하촌의 어제와 오늘을 싣고 희망찬 내일을 향해 흐르고 있다.

번역/편집:강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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