赵玉丹
2019-01-17 17:01:10 출처:cri
편집:赵玉丹

[지명과 문화] 호원동(呼猿洞)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 비래봉(飛來峯) 서북 기슭 백원봉(白猿峰) 아래에는 호원동(呼猿洞)이라는 동굴이 있다. 호원동, 원숭이를 부르는 동굴이라는 의미다. 그 이름의 유래에는 원숭이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먼 옛날 새싹이 트고 꽃이 피는 어느 봄날, 서호(西湖)의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영은사(靈隱寺) 앞은 인파로 흥성흥성했다.
 
이날 항주의 지부대인(知府大人) 나들이 대오가 위풍당당하게 영은사 앞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무슨 영문인지 알아보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한 연로한 스님이 금빛 원숭이와 바둑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지부대인도 평소 바둑을 즐겨 두는데 아첨하는 자가 많으니 자신의 기량이 최고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바둑을 두는 모습을 지켜보던 지부대인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기예를 한번 뽐내고 싶어졌다. 하여 원숭이를 쫓아내고 본인이 스님을 마주해 앉았다.
 
스님은 지부대인의 체면을 생각해 첫판은 져줬다. 지부대인은 이기게 되자 거만한 태도로 크게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이런 수준으로 사람들 앞에서 바둑을 두다니, 웃음거리가 따로 없구만!”
 
이에 스님은 생각했다.

‘체면을 살려주려고 했더니 분수를 모르는구나! 오늘 체면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줘야지! ’
 
그리고 스님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지부대인은 스님의 밝은 표정을 보고 물었다.
“이런 미친 중이 있나! 지고도 웃음이 나오는가?”
 
스님이 말했다.
 
“지부대인, 저는 대인을 보고 웃고 있지요. 저는 비록 졌지만 저의 스승님은 이기기 힘들 것입니다! ”
 
지부대인은 그 말을 듣고 급히 되물었다.
 
“당신 스승은 어디에 있나? 감히 나와 승부를 겨룰 수준이 되는가?”
 
스님은 옆에 있던 원숭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이분입니다. 이분을 이기면 진짜 고수인 셈이죠.”
 
지부가 머리를 돌려 보니 바로 금방 쫓아낸 원숭이인지라 득의양양해서 말했다.
 
“아이고! 난 또 어떤 위인인가 했더니 원숭이로구만! 이리 와봐, 나랑 바둑 한판 두게.”
 
스님이 휘파람을 부니 원숭이가 바로 스님 옆에 다가왔다. 스님은 원숭이를 자리에 앉히고 일어났다. 지부대인은 원숭이와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부대인은 원숭이에게 상대도 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숭이에게 패한 지부대인은 얼굴이 귀밑까지 빨개졌다. 그리고는 화를 내며 말했다.
 
“원숭이 놈이 무슨 수를 쓴 거야? 안돼, 다시 두자!”
 
하지만 두 번째도 얼마 안돼 원숭이가 이겼다. 지부대인은 민망한 나머지 식은땀을 흘렸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주변 사람들은 원숭이보다 못한 지부대인이라며 비웃었다. 체면이 여지없이 구겨진 지부대인은 아예 바둑판을 뒤엎으며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저 원숭이 놈을 잡아서 몽둥이로 사정없이 쳐라! ”
 
그러자 부하들이 달려와 원숭이를 잡으려 했다. 이때 스님이 원숭이 머리를 탁 치며 크게 외쳤다.
 
“가거라!”
 
그러자 원숭이는 화살같이 비래봉 방향으로 도망쳤다. 지부의 수하들은 산 속 까지 쫓아 갔으나 민첩한 원숭이를 따르기 힘들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지부대인은 산에 불을 지르라고 명령했다. 당장 불을 붙이려고 하는데 원숭이가 나무 위에서 뛰어 내리더니 옆에 있는 동굴 속에 들어갔다. 수하들이 동굴 속으로 쫓아 들어가 보니 다른 출구가 없는 동굴인데 원숭이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졸병들은 다시 돌아와 지부대인에게 아룄다. 하지만 지부대인은 믿지 않고 직접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는 동굴 속에서 원숭이의 그림자를 언뜻 본 듯 하여 정신 없이 달려가 잡으려다가 벽에 코를 박고 넘어졌다. 지부대인은 원숭이를 잡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코까지 깨지고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갔다.
 
그때로부터 금빛 원숭이는 동굴안에 은둔했으며 사람들은 원숭이를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스님이 손뼉을 쳐서 원숭이를 부르면 바로 나타났다. 시간이 지나 스님이 세상 뜨자 원숭이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사람들은 스님이 동굴 입구에서 원숭이를 불렀다 하여 이 동굴을 “호원동”이라 불렀다.


번역/편집: 조옥단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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