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19-02-26 15:38:00 출처:cri
편집:朱正善

요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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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족은 중국의 가장 오래된 민족의 하나이다. 요족은 중국 화남지역에 가장 널리 분포된 소수민족이며 중국에서 가장 장수하는 민족의 하나로도 알려져있다. 요족은 아시아와 유럽, 미주, 호주 등 각 대 주에 산재해있기도 하지만 민족 주체는 중국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 오늘 날 요족은 주로 중국의 광서장족자치구와 호남성, 광동성, 운남성, 귀주성, 강서 등 5개 성과 자치구의 130여개 현에 분포돼있으며 그 중 광서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2010년 제6차 인구보편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요족 인구수는 279만여명에 달한다.

요족의 명칭은 아주 복잡한바 자칭이 28종, 타칭이 무려 100여종이다. 요족의 자칭으로는 면(勉), 포노(布努), 금문(金門),’납가(拉咖),오내(唔柰)등이 있고 그 뜻을 풀이하면 ‘사람’, ‘산속의 사람’이다. 요족의 타칭은 기원 전설과 생산방식, 주거, 복장의 특징에 따라 ‘반요’(盤瑶), ‘과산요’(過山瑶), ‘차산요’(茶山瑶), ‘홍요’(紅瑤),‘백고요’(白褲瑶), ‘평지요’(平地瑶) 등 30여종의 서로 다른 명칭이 있다. 반요란 요족의 반왕(盤王)숭배에서 비롯된 것이고 과산요는 산에 산을 너머 경작생활을 한다 하여 불려진 이름이며 차산요는 그 지역이 찻잎 고장이여서 붙은 이름이고 홍요와 백고요는 그 지역 요족들이 붉은 옷, 또는 흰 바지를 즐겨 입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허나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후 모두 요족으로 명칭을 통일하였다. 

언어습관과 풍속, 신앙 등 차이에 따라 요족은 대체로 네 갈래로 나뉜다.면어(勉語)를 사용하는 반요는 요어(瑶語)갈래,  묘어(苗語)를 사용하는 포노요는 묘어갈래,  장(壯)족-뚱(侗)족어족의 뚱족수이족 언어를 사용하는 차산요와 나계요(那溪瑶)는 동수어(侗水語)갈래로 불리고 이외 한어방언갈래가 있다. 장시기동안 한족, 장족 등 민족과 잡거한 관계로 각지의 요족은 보통 한어를 겸용한다. 한편 고대 요족은 민족문자가 없어 나무에 표시를 하여 기록을 하는 ‘목계’(木契) 또는 ‘타목계’(打木契) 방식을 사용하였다. 과거에 방괴요문(方塊瑤文)이라는 문자를 사용한 적도 있다고 한다. 1980년대 면어와 포노어에 대하여 정부 주도로 각기 라틴자모 형식을 이용한 표음문자 방안 초안을 만들어 민간에서 시험하고 있으나 아직 광범위한 사용은 못하고 있다. 묘족은 일반적으로 한자(漢字)를 통용한다.

요족의 역사를 보기로 하자.

고대 동양의 ‘구려’(九黎)의 한 갈래로 알려진 요족은 차츰 호북(湖北)과 호남(湖南)방향으로 이주한다.

진한(秦漢)시기에 이르러 요족의 선민은 장사(長沙)와 무릉(武陵), 오계(五溪)에 정착하며 여타 소수민족과 통털어 ‘무릉만’(武陵巒), ‘오계만’으로 불렸고 남북조(南北朝)시기에 일부 요족은 ‘막요’(莫瑶)로 불렸다.

수당(水唐)시기, 요족은 주로 오늘의 호남성 대부(大部)와 광서 동북부, 광동 북부 산구에 살았다. 이른바 “남령(南嶺)에는 요족이 없는 산이 없다”는 말은 당시 요민들의 산간거주의 특징을 잘 개괄했다고 할 수 있다.

송나라 때에는 요족들이 호남 경내에 주로 살았지만 이미 일부 요족들이 광동과 광서 북부에 이주했다. 그러다 원나라 때에는 전쟁을 피해 많은 요족들이 남으로 이주해 광동과 광서 중심지대에 정착하고 명나라 때에는 이 지역이 요족의 집중 거주지로 되었다.

명나라 말, 청나라 초기에 부분적인 요족들은 또 광동, 광서에서 운남과 귀주로 이주했으며 이로써 요족이 남방 6개 성과 자치구에 널려 ‘대분산 소집거’분포구도를 기본상 형성했다.

명나라 중엽이후 또 광서와 운남으로부터 베트남과 라오스, 태국 등 동남아 나라에 이주한 요족도 일부 있다.

제2차 지나전쟁기간 부분적인 요족은 태국 난민영으로 피난가며 그 후 유엔난민국에 의해 난민의 신분으로 유럽과 미국 등 나라에 보내진다.

요족의 사회제도를 본다면 송나라와 원나라, 명나라 때 광서 서부와 운남의 요족 지역은 토사제도를 시행했고 청나라 때에는 요족의 집거지역에 ‘요장’(瑶長), ‘요련’(瑶練)등 직무를 설치했다. 민국 정부 통치시기에는 지금의 현과 구(區)1급에 상당한 ‘화요국’(化瑶國),’안화국’(安化 局),’설치국’(設治局)을 세우고 후에는 구, 향, 촌 제도와 보갑(保甲)제도를 내왔다. 이외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전 일부 요족들의 집거지에서는 원시적인 특징을 보유한 사회조직형태도 잔존했다. 이런 사회조직형태로는 ‘파인’(巴引), ‘유과’(油鍋),‘요로제’(瑶老製), 석패제(石牌製) 등이 대표적인데 20세기 40년대 민국정부가 대요산에서 보갑제도를 실시하며 점차 정체성을 잃어가고 새 중국 창건 후에는 와해에 이른다. 하지만 성원간 관계가 긴밀하고 생산과 생활에서 서로 도우며 특히 상례를 치르거나 싸움이 붙으면 똘똘 뭉쳐 함께 움직이며 절대로 수수방관하지 않는, 서로 돕고 단합 협력하는 일부 우수한 전통은 요족들 속에서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다.

지금까지 요족의 역사에 대해 말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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