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19-05-22 09:57:06 출처:cri
편집:朱正善

투쟈족의 역사

투쟈족은 지금 주로 중국 남방의 호남성과 호북성, 중경시, 귀주성 접경지대의 무릉(武陵)산간지역에 살고 있다.

2010년 제6차 전국인구보편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투쟈족은 835만명을 웃돌며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인구규모가 여섯번째이다.  

투쟈족은 스스로‘비즈카(畢玆卡)’,미지카(密基卡) 또는 베진카(貝錦卡)라고 부르는데 ‘토착민’이라는 의미이다.

투자족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법이 존재한다.

첫째는 투쟈족을 고대 파인(巴人)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역사기재로 보면 ‘파인’은 확실히 지금의 호남성 동북과 호남성 서부유역에로 이주했다. 오늘날 호남성 서부의 투쟈족은 스스로 ‘비즈카’라고 자칭하는데 역사적으로 파인이 거주하고 활동한 곳들의 일부 지명 역시 ‘비즈’와 발음이 비슷하고 파인의 이름이나 ‘족명’ 역시 ‘비즈’와 발음이 비슷하다. 그리고 파인과 투쟈족 민간에는 모두 호랑이와 연관된 이야기와 신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또 파인과 투쟈족 모두 백호신을 숭배하며 같은 성씨도 적지 않다. 이는 투쟈족을 고대 파인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증거이다.

둘째, 투쟈족을 고대 귀주 지역에서 호남 서부로 이주해온 소수민족인‘오만(烏蠻)’의 후손이라고 인정하는 학설이다. 이 설법은 귀주 경내의 ‘비즈(比玆)’족이 호남서부로 이주해왔다고 주장한다. 역사기재를 보면 당나라 중기이 후 사천 ‘월서(越西)’일대의 ‘오만’이 귀주에 이주한 뒤 현지의 일부 토착민을 ‘오만’에 흡수했으며 끝까지 항쟁하던 나머지 토착민들은 호남성 서부와 운남으로 이주했다. 이 설은 이런 역사기재에 근거하고 또 투쟈족의 언어가 서남의 이족과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투쟈족이 귀주에서 이주해온 ‘오만’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셋째, 호남, 호북, 사천, 귀주 변경의 토착민들을 주체로 기타 일부 부족의 선민들이 융합돼 투쟈족이 형성되었다는 설이다. 그 주요 증거로는 호남서부지역에서 발굴된 문화유적으로 볼 때 호남 서부지역에 기원전 4000여년전부터 인류가 살고 있었고 투쟈족이 자신들을 ‘비즈카’, 즉 ‘토착민’이라고 자칭한 반면 묘족을 ‘이웃사람’이란 의미의‘바이카(白卡)’, 한족을 ‘외래인’이라는 의미의‘파이카 (帕卡)’로 부른 점으로 미루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지금은 투쟈족의 다원 유래설이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있다. 즉 고대 파인의 두 갈래인 늠군만(凜君蠻)과 판순만(板楯蠻)을 주체로 하고 현지 토착민과 이 지역에 이주한 한인,복인(濮人), 초인, 오만 등 이 융합돼 투쟈족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역사기재를 보면 당나라 말기 이후 투쟈족이 점차 단일민족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단정지을 수 있다. 새 중국 창건이 후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다섯차례의 조사를 진행해1956년 10월 투쟈족을 단일민족으로 확정했다.  

투쟈족은 역사적으로 침략에 반대하고 압박에 저항하는 항쟁을 끊임없이 전개해왔으며 하룡(賀龍), 임필시(任畢時)의 지도하에 유격전을 진행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도 큰 기여를 했다.

건국 후 당 중앙과 국무원은  호남성 서부 투쟈족묘족자치주와 호북성 서부 투쟈족묘족자치주의 설립 그리고 유양(酉陽) 등 투쟈족자치현의 설립을 비준했다. 지금 당중앙 위원 중에는 투쟈족 위원이 있으며 성과 자치주, 현 급 정부에도 모두 투쟈족의 영도간부가 있다.      

투쟈족은 자신의 민족언어가 있다. 그들의 언어는 시노-티베트(漢藏)어계의 티베트미얀마어족에 속하며 이족의 언어와 비슷하다. 그러나 장기간 한족과 교류해온 등 여러가지 사정으로 투쟈족의 상다수는 한어나 묘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투쟈족은 민족언어는 있지만 본 민족 문자가 없으며 한문을 통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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