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辉
2019-06-02 09:45:35 출처:cri
편집:宋辉

[청취자의 벗] 2019년 5월 30일 방송듣기

남: 네, 여러분 지난 한 주 잘 보내셨습니까? 청취자의 벗 담당 송휘입니다.

여: 네, 안녕하세요? 이명란입니다.

남: 요 며칠은 완전히 초여름 날씨입니다. 5월인데 벌써 30도를 웃도니… 이번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 나라와 지역별 편차가 있기 하겠지만 올 여름 기온은 평년보다 높을 전망이라고 합니다. 정말 피할 새도 없이 여름은 이미 우리 곁에 한 발 성큼 다가왔습니다.

남: 이왕 이렇게 된 것 어쩌겠습니까? 옛말에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도 저희 <청취자의 벗>프로를 청취하면서 잠시나마 더위를 잊으시기 바랍니다.     

여: 네, 그럼 노래 한 곡 듣고 계속해 <편지 왔어요> 코너로 이어 가겠습니다.

<떼목이 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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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이어서 여러분이 보내주신 따끈따끈한 편지사연들을 소개해 드리는 <편지 왔어요> 시간입니다. 오늘은 먼저 장춘의 김석찬 청취자가 보내온 사연부터 만나 보겠습니다.

(청취자의 ) 장춘의 김석찬 청취자

조선 여행기

송휘, 이명란, 한창송 선생님: 그간 안녕들 하셨습니까?

오늘은 5박 6일 조선 여행 소감을 말씀 드리려 합니다.

우리 애청자클럽 황정숙 상무부회장이 대학교 동창들을 모집하여 조선 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저는 제가 1937년에 태어난 평안북도 신의주, 의주군 고향에 가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발벗고 따라 나섰습니다.

이번 우리 여행팀은 할아버지 9명, 할머니8명, 모두 17명으로 구성됐는데 그 중 최고령자가 85세, 나이가 가장 적다고 하더라도 75세였습니다. 비용은 일인당 3천 400원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5월 8일 밤11시 장춘에서 침대기차로 이틀날 아침 8시에 단동에 도착하였습니다.

단동 출국 수속 현장에는 광주, 심천,호남, 산동 등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인산 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소식에 따르면 조선정부는 각종 시설의 제한으로 매일 800명 밖에 접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압록강을 건너 조선 신의주에서 기차에 올라 평양으로 떠났습니다. 신의주에서 평양까지 9시간 가면서 조선 농촌의 풍경을 자세히 구경할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집들은 모두 기와집이고 농민들은 한창 밭갈이와 논 갈이에 바삐 보내는 모습이었습니다. 논갈이는 대부분 황소가 하고 뜨락또르는 보기 드물었습니다. 산은 대부분 밭을 일구어 벌거숭이 산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주요 교통 도구는 자전거였습니다.

밤10시에 평양에 도착하여 청년호텔에 입주하였습니다. 가이드에 소개에 의하면 조선은 특급호텔, 1급 호텔로 나누는데 우리가 입주한 청년 호텔은 1급 호텔로써 중국의 5성급 호텔에 맞먹습니다. 한방에 침대 두 개이고 깨끗하고 각종 시설이 완비되어 일본에 갔을 때보다 방이 더 넓어서 환하고 시원했습니다.

5월 10일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평양시에서 김일성 광장,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우의 탑, 평양 대극장, 천리마 동상, 만수대 기념비 등 곳을 지나며 많은 사진을 남겼습니다.

평양시는 현대화 고층건물들이 높이 줄지어 있고 깨끗하고 아름다웠으며 시내는 유궤도전차, 무궤도전차, 버스, 지하철 등 교통이 아주 발달하였고 택시는 드문드문 보였으나 너무 비싸 타는 사람이 적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은 자가용차가 적어서 길은 넓고 차는 적어 큰 길이 매우 훤했습니다. 특히나 예쁜 교통경찰 아가씨들이 독특한 풍경선을 이루었습니다. 평양시는 그야말로 손색없는 현대화 대도시입니다.

평양에서 6시간을 달려 조선에서 제일 큰 항구도시인 원산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습니다.

우리 버스에는 3명 가이드가 배동하였는데 1명은 중국에서부터 우리와 동행한 남성 가이드, 다른 두 명은 조선의 가이드였습니다. 그 중 조선의 가이드 한 명은 전주 김씨의 김일성 종합대학 러시아어 학부 졸업생이고 다른 한 명은 김해 김씨인 평양 외국어대학 러시아어 학부 졸업생이었습니다. 두분 모두 외모도 예쁘장했을 뿐만 아니라 은방울 같은 순 평안도 말씨를 사용해 평안북도 태생인 저의 귀에 정답게 안겨왔습니다. 그들은 조선어는 물론이고 중국어도 매우 잘했습니다.

이번 우리 여행팀에 합류한 길림대학 천정남교수는 감개무량 하여 13년 전인 2006년에 처음 조선에 왔을 때는 심지어 기차에 유리도 없어 추워서 혼이 났고 평양 시내도 고층건물이 적었고 사진도 마음대로 찍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진도 마음대로 찍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속 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두 가이드 처녀가 번갈아 가면서 웃기는 말을 하면서 자신들이 먼저 깔깔대고 웃는 모습이 참으로 기특하고 귀여웠습니다.

그들은 쉴새 없이 번갈아 가면서 노래도 부르고 조선의 형세도 소개하고 생활상, 풍속 습관도 자세히 소개해 주었습니다. 가이드에 따르면 조선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유치원으로부터 대학교 졸업까지 모두 무료이고 병 치료도 무상입니다. 그러나 생활 용품은 모두 식량 표, 고기 표, 천 표를 씁니다. 식량 배급은 공무원은 매일 700그람, 직업에 따라 800그람 900그람 공급하며 모자라면 자유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살 수 있습니다.

또 여성들은 출산 전에 3개월 출산 후에 5개월 휴가가 있습니다. 아이 7명 이상 낳으면 영웅 어머니 칭호를 수여합니다. 그리고 군 복무 기한은 여성은 3년, 남성은 5년입니다. 조선의 남녀 비례는 1:1.1 로 여성이 좀 더 많습니다.

조선에서는 또 결혼 할 때 남자는 집을 배분 받고 여자 측에서는 가구 등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여자 측 부담이 더 많다고 합니다. 가이드에 따르면 조선의 남성들은 1년에 세 번 밖에 밥을 하지 않습니다. 즉 3.8 여성의 날, 어머니의 날, 부인의 생일 날에 세 번 밥을 짓습니다.

가이드 두 분은 아직 시집을 안 갔는데 신랑은 세가지 조건을 요구 한다고 소개했습니다. 첫째는 로동 당원, 둘째 대학졸업생, 셋째 전역 군인 입니다. 전역 군인을 요구하는 주요 원인은 전역 군인들이 많은 고생을 겪었기 때문에 밥도 할 줄 알고 아이도 볼 줄 알며 심지어 빨래까지도 할 줄 알아 앞으로 집안 일을 잘할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조선에서는 또 결혼할 때 국수를 먹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국수는 길고 질겨서 결혼 후 기나긴 세월을 검은 머리 백발이 되도록 오래오래 살아 간다는 의미에서 입니다. 가이드 두 분은 자신들이 올해 안으로 꼭 국수를 먹어야 하겠는데 그렇게 마땅한 사람을 찾자니 쉽지 않다면서 우리 들이 국수 먹을 때 여러분을 청할 테니 꼭 오시길 바란다고 농담을 했습니다.

이처럼 차 안에서는 웃음소리, 노래 소리, 박수소리로 들끓었으며 열렬한 분위기 속에서 어느새 금강산에 도착하였습니다. 금강산 호텔도 1급호텔이어서 아주 훌륭했습니다.

우리는 이튿날 7시부터 등산을 시작하였습니다. 금강산 1만 2천봉 절승 경계가 세계에서 유명한 유람지라는 것은 여러분도 다 잘 아시기 때문에 더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세시간을 올라 4킬로미터 높이의 구룡 폭포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 팀 17명 중 남성 5명, 여성 4명 모두 9명 밖에 정상까지 올라가지 못했는데 영광스럽게도 83세인 제가 제일 먼저 올라 갔습니다. 우리 9명은 너무도 기쁘고 감개 무량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 목이 터지도록 만세를 외쳤습니다.

저녁에는 청년호텔에 되돌아와 소고기 불고기와 조선에서 제일 유명한 대동강 맥주를 마시면서 술잔을 높이 들고 건배하며 오늘의 승리를 축하하였습니다.

5월 12일에는 개성 판문점에 가서 '정전협정 조인장'을 구경하고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악수한 곳에서 기념사진을 남겼습니다. 오후에는 1912년 4월 15일 김일성 수령이 탄생한 만경대를 참관하였습니다.

저녁에는 세계에서 제일 깊은 지하철을 탔습니다 평균 깊이 100미터, 제일 깊은 곳은 120미터였으며 총 길이는36킬로미터이고 17개 역으로 구성되었습니다.

5월13일 아침 8시에 우리는 손녀, 외손녀와 같이 귀엽고 기특한 가이드들과 섭섭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포옹하면서 "잘 가세요"."또 오세요","잘 있거라","다시 만나자"라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비록 나흘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 정이 들어 두 처녀는 눈물까지 흘렸고 우리 노인들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평양에서 9시간을 달려 단동 국제여행사호텔에서 하루 밤 묵고 5월 14일 8시에 고속열차로 3시간 달려 10시에 장춘역에 도착하면서 이번 조선여행은 원만히 마무리됐습니다.

이번 걸음은 나의 인생에 잊지 못할 가장 뜻 깊은 길이었습니다.

꿈이 살아 숨쉴 때 가장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1937년 조선에서 태어나 82년 만에 오매에도 그리던 고향 땅을 찾아가 보았으니 이제 저는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장춘애청자애독자클럽록원구분회 김석찬 올림   2019.5.17.

남: 네, 김석찬 청취자의 조선 여행기 참 잘 들었습니다. 마치 김석찬 청취자의 안내로 조선 방방곡곡을 여행하고 온 느낌입니다. 그것도82년만에 고향 땅을 밟아보았으니 감회가 얼마나 남달랐을까요? 이명란 아나운서도 조선에 몇 번 다녀오셨잖아요? 그 당시하고 어떤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여: 네, 일단 김석찬 청취자의 여행기가 이후 조선여행을 떠나시는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남: 네, 저도 실무방문으로 예전에 평양을 한번 갔었는데 너무나 좋은 인상을 받았어서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ㅋㅋ

여: 네, 그래요. 김석찬 청취자의 인생에서 너무나도 뜻 깊은 여행기를 저희도 너무나도 감명 깊게 들었고요. 계속해 장춘의 이신숙, 최병성 청취자의 사연 만나 보겠습니다.  

(청취자 편지) 리신숙, 최병성 청취자 편지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앞:

송휘, 리명란 아나운서 선생님들 안녕하셨습니까? 선생님들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매주 빠짐없이 잘 듣고 있지만 편지는 자주 쓰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저는 오늘  "한국 울산에 계시는 CRI 애청자 김대곤 선생을 만난지 1년이 되는 날을 되새겨"란 글을 적어 올리려 합니다

지난해 5월 19일 우리 부부는 둘째 사위의 배동 하에 장춘에서 중국남방항공회사 여객기에 몸을 싣고 헤어 진지 약 30년이 다 되어가는 아들 며느리를 만나러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물론 아들 며느리를 만난다는 것도 더없이 기뻤 지만… 울산에 가게 되면 CRI 우리말 방송을 열심히 청취하시는 김대곤 선생을 만나 보고 문안을 전해 달라는 장춘 애청애독자클럽 김수영 회장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의 당부를 생각하며 인천공항에 서서히 착륙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마중 나온 아들 며느리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였고 아들 며느리의 자가용에 편하게 앉아 한국 동남방향 쪽 산을 바라보며 다섯 시간 달려 밤11시경에 아들 집에 도착하여 봇짐을 풀었습니다

5월 20일은 일요일이어서 마침 아들이 일하는 회사가 공휴일이라 그들의 안내로 젊은 시절에 늘 부르던  '울산 큰 애기' 가사를 마음 속에 되새기며 울산--고개 넘어 바닷가 기슭 밤나무 그늘 아래 옹기종기 다정히 모여 사는 농어촌 마을과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다층 빌라 음식점들이 줄지어 늘어서고 현지 특산물인 조개, 바다 우럭, 미역 그리고 방금 가마 솥에 쪄낸 구수한 반계찜으로 밥상이 풍성해지는..이 곳을 돌아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검은 땅에서 물길 따라 벼농사만 지으며 80여생을 살아 온… 우리에게는 너무나 다른 고장이었습니다.

                       동해나 울산에 밤나무 그늘

                       경치도 좋치만 인심도 좋구

                       큰애기 마음은 열두폭 치마

                       실백자 언저서 전복삼일세

울산 큰 애기들의 곱고 넓은 마음을 바닷가 참솔 나무 그늘에 기대어 망망한 동해를 바라보며 조용히 흥얼거려 봤습니다

울산자연공원 '10리 대나무' 숲에 갖가지 화초들이 활짝 핀 태화강 대공원도 둘러보면서 스마트폰에 기념 영상도 남겼습니다

김대곤 선생 부부와의 첫 만남은 5월 22일(음력으로 4월 8일)에 이루어졌습니다. 김대곤 선생네 거처는 3층빌라 건물로서 울산시 시청과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시청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바로 내려 돌아서니 김대곤 선생 부부가 우리 일행을 주차장 어구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CRI 방송을 통해 김대곤이란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으나 대면은 처음이었습니다.

뜻 깊은 초면 인사를 나누고 김대곤 선생 부부의 안내로 3층으로 올라가 객실 소파에 몸을 기대어 앉은 후…울산까지 오게 된 자초지종과 CRI장춘애청.애독자클럽 김수영 회장님과 회원들이 김대곤 선생에게 드리는 정에 넘치는 따뜻한 문안도 전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장춘 애청자애독자클럽 윤영학 전임 회장과  '두망강반에 설인 한 박씨 일가의 100년 이민사'를 쓰신 대련에 계시는 박남권 선생이 보낸 약간한 선물들을 김대곤 선생에게 전달하였습니다. CRI 한 가족으로서 첫 만남의 즐거움을 마음 속에 새겨두기로 서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서투른 서예 솜씨로 중국 송나라 때 시인 왕안석(王安石)의 시구(岁老根弥壮, 阳骄叶梗阴:세월이 흐를 수록 뿌리는 더 단단하고 햇빛이 더 강할 수록 잎은 더 무성하다)를 쓴 족자 한쪽을 김대곤 선생의 서재에 걸어 올렸습니다

이는 너무 간단하고 보잘 것 없는 선물이지만 CRI 장춘애청자분들과 한국울산애청자 김대곤 선생과의 국제적 우의를 돈독히 하는 뜻 깊은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는 사이 김대곤 선생의 부인이 우리들을 위해 푸짐한 점심 밥상을 차렸습니다.

식사 후 김대곤 선생의 안내로 각국의 우리말 방송을 청취하는 그의 청취실을 돌아봤습니다. 벽에는 세계지도와 한국지도가 나란히 걸려 있었고 세계 각 국 우리말 방송시간표 시간에 따른 FM. MW. SW1. SW2 등 주파수들을 적은 프린트 물이 정연히 붙어 있었습니다.

수신 라디오만 10여대 넘게 테이블에 놓여 있었는데 여기에는 60~70년대 외곽이 크고 목질로 조립된 전자관 구식라디오도 있었습니다.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한국 등 각국 수신기들은 거의 다 비교적 사치스럽게 만들어진 반도체 라디오들로 수신도는 높지만 음색(音色)이 부드럽지 않아 전자관(电子管)라디오를 좋아한다고 김대곤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미국의 한국어 방송, 중국국제방송 조선어방송, 러시아의 KOREAN 방송 청취 후 음질과 주파수를 기록한 노트, 그리고 모니터보고 서류들이 서랍에 꽉 차있었습니다.

빌라 옥상 바닥에는 여러 가지 남새들을 크고 작은 화분에 심어 싱싱히 키우고 각국 전파 수신안테나들이 이리저리 뻗어 있어 또 거미줄(蜘蛛网)을 방불케 했습니다.

전자 작동 수신방향 조절안테나로 방송 청취실에서 방향을 조절한다고 소개해주었습니다.

지난해 정년 퇴직한 70세를 넘은 분이 각국 우리말 방송을 열심히 청취하며 소감을 적어 제때에 방송국에 보낸다는 것은 모든 CRI 방송청취자들의 모범이 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오늘 이만 줄이면서 송휘 리명란 아나운서와 CRI 전체 임직원들의 건강을 진심으로 비는 바입니다

더불어 퀴즈 풀이 답을 보냅니다.        

장춘애청.애독자클럽관성구소조

리신숙 최병성

2019년 5월 19일

여: 네, "한국 울산에 계시는 CRI 애청자 김대곤 선생을 만난지 1년이 되는 날을 되새겨"란 장춘의 이신숙, 최병성 청취자의 편지 사연을 잘 들었습니다.

남: 네, 마침 지난주에 중국의 박남권 청취자 내외분이 한국 울산에 거주하는 따님 댁에 가셨다가 김대곤 청취자 댁을 방문하고 그 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도 하고 한국 전통 차 시음잔치 한마당 축제에 참가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사연을 보내 왔었는데요. 이번 주에는 이신숙 최병성 청취자가 김대곤 청취자와 만난지 1주년을 회억하면서 사연을 보내오셨네요.

여: 그 동안 저희 방송의 모니터 요원으로, 열성 애청자로 활약해오고 또 지금도 활약하고 있는 김대곤 청취자와 김연준 청취자를 중국에 사시는 청취자들도 잊지 않고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 만남을 갖고 또 김대곤, 김연준 청취자도 기꺼이 매번 만남을 가지면서 청취자간의 우정이 더욱 돈독해지고 청취자의 교류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 네, 저희 또한 청취자들의 더 활발한 교류와 돈독한 우정을 위해 가교 역할을 더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이어서 왕청의 이강춘 청취자 만나 보겠습니다.

(청취자 편지) 왕청의 이강춘 청취자

문물을 수집하는 젊은이-류덕무씨의 이야기

길림성 왕청현건축회사 종업원 류덕무씨는 21년래 연변대지를 누비며 1만 여건의 각종 문물을 수집해 50여건의 홍색문물을 왕청현 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에 무상으로 헌납해 사회에 미담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흑룡강성 철력시(铁力市)에서 태어난 올해 51세의 류덕무씨는 1992년에 길림성 왕청현에 와서 건축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했던 아버지한테서 어려서부터 혁명선렬들의 영웅사적을 들으면서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홍색문물 수집에 짙은 흥취를 가졌던 그는 홍색문물을 수집하는 것은 나라에 대한 기여이고 후대들에 대한 정신적 재부라고 생각하였다.

1998년부터 류덕무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 저곳 다니며 홍색문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에서 그곳에 있는 항일전쟁 노병사와 노인들을 찾아 문물에 깃든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더욱 많은 역사를 알게 되었다. 항일노병들이 당년에 목숨바쳐 피흘려 싸운 항일전쟁경력은 문물수집에 대한 그의 결심을 더 확고히 하였다. 문물수집과정에 그는 선후로 현 서류국, 현 문물관리국 등 부문을 찾아가 연변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보았다.

문물수집은 그렇게 수월한게 아니다. 경제조건이 넉넉치 않은 류덕무씨는 여름엔 건축공지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겨울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문물수집에 나섰다. 21년래 그가 수집한 만 여건의 문물에서 항일전쟁 역사를 반영한 문물이 4000여건에 달했다.

다년래 외지의 민간수집가들과 관련 부문에서 찾아와 배의 가격으로 문물을 사려해도 그는 완곡히 거절했다. 전국 '시대의 본보기'이며 왕청현 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이 81개의 열사기념비를 세운 고상한 정신을 어려서부터 들어오면서 경모를 금하지 못하던 그는 2015년 이래 자신이 수집한 항일전쟁시기의 문물을 무상으로 왕청현 동장영기념관에 기부했으며 왕청현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에 홍색 및 민속문물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2016년에 왕청현 관련부문 인원들은 류덕무씨네 집을 방문해 그가 수집한 문물이 수량이 많고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문물들인 것을 보고 그에게 저장실을 제공해 주어 만 여건의 문물들이 널찍한 새 집으로 이사하도록 했다.

지금 이 저장실은 이미 왕청현에서 이름있는  '홍색박물관' 으로 되어 참관객들에게 홍색문화와 애국주의 교양을 진행하는 훌륭한 장소로 되었다.

"문물을 수집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고 문물을 보존해 후세 사람들이 역사를 알게 하는게 꿈"이라고 말하는 류덕무씨이다.   

리강춘

남: 21년동안 무려 1만 여건의 각종 문물을 수집하고 50여건의 홍색문물을 왕청현 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에 무상으로 헌납한 류덕무씨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여: 네, 많은 문물들을 수집해 홍색문화와 애국주의 교양에 이바지하고 있는 류덕무씨에게 큰 박수 보내드립니다. 그의 꿈이 꼭 실현되기를 바라면서 노래 한 곡 보내 드리겠습니다. 노래 듣고 계속해 [퀴즈한마당] 코너로 이어 가겠습니다.

<평북녕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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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한마당]

남: '퀴즈한마당' 코너에서는 매달에 한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지식경연과는 달리 방송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내용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정답을 찾아나서야 된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여: 네,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퀴즈 답안을 보내 오셨는데요.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리면서 계속해 5월의 퀴즈문제 내어 드리겠습니다. 올해 중국인들은 4일 간의 5.1절 황금연휴를 맞아 항공편이나 고속철도를 이용해 관광을 하거나 또 자가용을 이용해 가까운 도시를 여행했습니다.  그래서 5월의 퀴즈는 도로와 관련된 내용으로 준비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는 어느 도로입니까?”

남: “중국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는 어느 도로입니까?” 네,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여: 편지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면 되고요, 우편 번호는 100040번입니다.

남: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시고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여: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성에 송휘, 진행에 송휘, 이명란이었습니다.

남: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희는 다음주 같은 시간에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남녀: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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