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19-06-04 16:46:28 출처:cri
편집:朱正善

타지크족의 역사

图片默认标题_fororder_塔吉克族是中国唯一的白种人

(타지크족은 중국의 유일한 백인종)

중국의 타지크족은 신강위구르자치구 서남부의 타스쿠얼간 타지크 자치현에 집중 거주하고 있고 소수만이 이 현 동부의 타림분지 서부 변두리 지역에 산재해 있다.

2010년 제6차 전국인구보편조사에 따르면 중국경내의 타지크족은 약 5만1천명으로 중국의 소수민족 중 그 인구규모가 37번째이다.

타지크족은 인도 지중해의 백인종에 속한다. ‘타지크’란 타지크족의 언어인 ‘Tajik’를 현대 한어로 음역한 것으로서  타지크의 민간전설에 따르면 ‘왕관’이라는 뜻이다.

타지크인들은 평원 타지크와 고산 타지크로 분류되는데 평원 타지크인들은 주로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 이란 경내에 분포되어 있고 인구가 적은 고산 타지크인들은 대부분 파미르 고원과 그 부근 지역에 살고 있다.

중국의 타지크족은 고산 타지크족의 한 갈래이며  그 족원은  기원전 수세기 전에 파미르 고원 동부에서 이란어를 사용하며 생활했던 여러 부락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런 부락들은 일찍 중국의 천산이남의 많은 지역에 분포해 있었다. 서기 11세기 경, 돌궐 유목부락은 이란어를 사용하고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중앙아시아의 이 민족을 ‘타지크’라고 지칭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자고로 신강의 광활한 대지에서 자손만대 생활해온 타지크인들과 각이한 시기 파미르 서부에서 동부로 이주해 타스쿠얼간 일대에 정착한 타즈크인들이 바로 중국 타지크족의 선민이다.

2천여년전, 장건(張騫)이 서역에 다녀가면서 서한 왕조가 서역에 ‘서역도호’(西域都護)를 설치했다. 당시 이란어를 사용하는 파미르 동부의 부락과 중앙왕조는 행정적으로 종속관계를 확립했다. 장건이 서역에 다녀온 뒤 대월씨(大月氏), 안식(安息) 등 나라로 가는 사절과 상인들이 파미르지역을 경과했는데 이때부터 파미르는 중국 고대 ‘실크로드’ 동서교통의 필경지가 되었다. 따라서 타지크족과 한족 등 민족간의 경제, 문화교류가 날로 빈번해지고 타지크족 고대 사회도 크게 발전했다.

서기2,3 세기에 파미르 고원에서 생활하던 타지그족 선민들이 ‘걸반타국’(朅盤陀國)을 창건했다. ‘걸반타’란  동부 이란어로 ‘산길’ 또는 ‘산간평지’라는 뜻이다. 실크로드의 요충지에 위치해 동서방의 경제와 문화교류에서 가교적 역할을 논 걸반타국은 중국의 타지크족 역사에 심원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및 기타 사료에 따르면 걸반타국은 당시 타스쿠얼간 및 주변지역에서 물길을 내고 관개농업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역참을 수건해 오고 가는 행객들에게 무료 주숙지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걸반타국은 남북조시기 국력이 최대로 강대해졌으며 10여개의 사찰을 짓고 승려도 500여명 두어 이 일대의 소승불교(小乘佛敎)의 중심지로 되기도 했다.

약 500여년간 존속한 걸반타국은 당 나라 개원(開元)연간 투르판 세력이 파미르 일대에 이르며 투르판에 귀순했다. 그 뒤  당나라가 이 지역에 대해 행정관리를 실시했으며 송나라와 원나라 때에 타스쿠얼간은 사리콜리(色勒庫尔)로 불렸고 걸반타의 후손들은 사리콜리인으로 불렸다.

원나라 때 몽골인들이 중아시아를 정복한 뒤 사리콜리는 중아시아의 땅과 함께 찰합태한국(察合台汗國)에 귀속되었으나 전란으로 사리콜리의 타지크족 인구가 급감했다.

명나라  때에도 전란으로 타스쿠얼간 지역의 많은 타지크인들이 고향을 등지게 되었다.  

타지크족 인민들은 조국 보위의 영광스러운 전통이 있다. 1891년부터 1894년까지 제정러시아가 영국과 결탁해 파미르를 분할하고 타스쿠얼간을 점령하려고 시도하자 타지크족 인민들은 침략자에 맞서 고향 보위전을 진행했다. 당시 많은 타지크족 축민들이 자발적으로 타스쿠얼간 남부 지역에 이주해 장기간 그 곳에 남아 변방을 지켰다.

1938년부터 1940년까지 기간에는 중국공산당의 2명의 공작대원이 타지크족 인민들을 인솔해 제국주의 반대투쟁을 전개하고 현지의 경제문화 발전을 이끌었다.

1952년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민족지역 자치실시 요강>을 반포했다. 당시 타스쿠얼간에는 타지크족과 키르기스족, 위구르족, 한족 등 6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타지크민족이 타스쿠얼간 인구의 약 78.1%를 차지했다.   

1954년 중앙인민정부는 타지크족 인구의 60%가 집거하고 있는 타스쿠얼간을 타지크자치구로 반포했으며 이듬해에는 자치구를 타스쿠얼간 타지크자치현으로 개명했다.

오늘 날 타스쿠얼간자치현은 이미 중아시아와 남아시아, 중동으로 통하는 중국 서부의 중요한 요충지가 되었으며 국경무역도 날로 번창해지고 있다.

타지크족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이란어계를 사용하는 민족이다. 중국의 타지크어는 두가지 방언이 있는데 하나는 사리콜리 방언이고 다른 하나는 와한(瓦罕)방언이다. 다수의 타지크인들이 사용하는 사리콜리 방언은 사용자가 약 3만명으로 타스쿠얼간 자치현의 주요한 교제언어이다. 반면 와한 방언을 사용하는 타지크인은 약 1만명 밖에 되지 않는다.

타지크족은 장기간 위구르족 등 돌궐민족과 가깝게 보낸 관계로 돌궐어 특히는 위루그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 타스쿠얼간의 60%이상의 목축민들이 각이한 정도로 위구르어를 겸용하며 사천 등 일대의 타지크 농민들은 장기간 위구르지역에서 생활한 탓으로 위구르어를 주로 사용한다.

중국의 타지크족은 본 민족의 문자가 없다. 20세기 30년대 전에는 페르시아 문자를 사용했지만 후에는 타지크족들이 위구르학교에 다니면서 위구르문자를 배워 지금은 주로 위구르문과 한문을 겸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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