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凤海
2019-08-12 14:32:43 출처:cri
편집:林凤海

윤영학 청취자

송휘 리명란 선생님께:

무더운 삼복더위에 수고 많으십니다.오늘 우리 양로원 당소조와 애청자애독자 소조에서는 "8.1" 건군절 92주년 기념활동 모임을 조직하였습니다.
해방군가로 시작된 오늘 활동은 매우 소박하면서도  한결 정중하였습니다. 우선 촌 당지부 조운희 서기께서 오늘 활동의 의의를 천명함과 동시에  노인들이 시대의 맥박을 짚어가며 이런 기념활동을 조직하는데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뒤이여 애청자애독자소조에서 "8.1" 건군절 유래와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2만 5천리장정을 간단하게 소개했고 장정길에서 최후까지 살아 남은 우리겨례의 빛나는 인물  양림과 무정장군의 장정길에서의 업적을 간단히 소개했으며 양로원 두 전사께 경의의  붉은꽃을 달아드렸습니다. 그분들도 감개무량하여 끝까지 혁명적 지조를 잘 지키는 것으로써 당과 인민의 배례와 관심에 보답하겠다고 다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고향 영웅인물 최동춘 동지가 양로원 노인들께 전자 우편으로 보내 온 자기의 사적보고를 감명깊이 청취하였습니다. 아래의 문장은 그의 서한사적보고입니다.

장춘 애청자애독지클럽 음마하소조
2019.  8.  1
윤영학입니다.
 

음마하양노원 전체 노인님들께:
안녕하십니까! 수일전 귀 양로원  노인님들이 전화로 “8.1” 건군절 92주년을 맞으며 저의 사적보고를 요청한 일이 있습니다. 저는 몇년 안되는 군령으로 크게 해놓은 일도 없는 것으로 하여 사절하였는데 저를 고향땅에 이름 없이 숨어사는 인민공신이라 칭하면서 기어코 고향사람들께 널리 알려야 한다면서 노인님들이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에 할수없이 그 전날 한단락의 군인생활을 고향 노인님들께 회보합니다.
저는 1983년 구태구 룡가포 수향 1 대에서 입대하여 심양군구 81213 부대에 소속되었습니다. 2년 후 1985년 8월말 우리부대는 군구로부터 요녕성 반금시(盘锦) 특대홍수방지전투에 투입하라는 전투령을 받고 반금시로 출동하였습니다.
목적지에 도달한 우리는 준엄한 홍수사태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온 시내가 물바다로 변했는데 옥수수밭은 물에 잠겨 수수대끝만 물우에서 한들 거렸습니다. 우리 부대는 모래주머니(编蓆台子)를 화물기차에 싣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지면으로부터 화물차바구니까지 사선으로 두터운 널판자를 고정시키고 물에 젖은 모래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화물차바구니위로 옮긴다는 것은 실로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숨이 가쁘다 못해 목구멍은 불에 타는듯 했고 두 다리는 기진맥진해 지탱하기 어려웠습니다. 사품치는 홍수는 순식간에 큰 집 한채씩 삼켜버렸습니다. 반금은 요녕성의 곡창이고 유전(油田)과 화학공장은 요녕성의 중점보호 대상에 속하였습니다. 하여 우리는 생명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사수해야만 했습니다. 홍수방지 일선에서 밤잠도 휴식도 잊고 분초를 다투며 연속 삼주야 긴장한 투쟁을 견지하였습니다.
저도 신체가 좋은 축에 속하였기에 이 운반대에 편입되였는데 마지막 날에는 기진맥진하여 다리가 비틀거려 좁은 널판자우에서 중심을 잡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홍수방지 전투가 승리적으로 결속될 무렵, 최후 한 두 시간을 앞두고 우리는 승리의 신심으로 더더욱 힘을 쏟아부었습니다. 나는 지칠대로 지친 두 다리로 가까스로 전신의 균형을 잡으며 화물차 꼭대기로 날랐는데 그 순간 그만 균형을 잃어 근 100근되는 모래주머니(砂袋)를 어깨에 멘 채로 4m 높이에서 땅에 굴러떨어지며 정신을 잃었습니다.
저는 척추골절 전신마비로 수개월 병원에서 구급치료를 받아 몸은 비록 전신불구가 되였지만 요녕성의 중점신흥도시인 반금시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보위하는 사업에 자기의 자그만한 힘이라도 이바지한 것으로 하여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자호감을 느낍니다.
저는 해방군전사로서 응당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뿐인데 심양군구는 저에게 ”硬骨头战士(튼튼한 골격 전사 칭호)”라는 크나큰 영예를 안겨주었는데 과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제대되여 지방으로 돌아온 후에도 부대와 지방정부는 백방으로 저에 대한 관심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경치좋은 길림시 풍만구의 새로 지은 아파트에서 저를 마냥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부인과 금년에 연변대 학화학부를 졸업한 딸까지 세 식솔이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내 고향 양로원 여러 노인님, 저는 사지 마비로 걷지 못하는 실정이기에 여러분을 찾아뵙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저는 비록 사지마비가 된 장애인이 되였지만 우리군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계승 발양하여 언제나 초심을 잊지 않고 인민군대의 정치적 사명을 가슴깊이 명기하면서 인민에 유리한 일이라면 모든 것을 다 바치며 바르게 살아가려고 결심합니다.
날 따라 번영발전하는 내 고향과 함께 여러 노인님들 부디 건강장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길림시 풍만구에서      
최동춘  올림    
2019.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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