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물에 담긴 이야기] 뿔도끼 이주사의 ‘증인

cri2019-11-13 08: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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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도끼는 우리 선조들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땅이 비옥하고 배를 곯지 않는다’는 중국 동북땅에 들어와 삶의 새 터전을 개척하던 이주 역사를 생생하게 반영해주는 생산도구이다. 
뿔도끼의 날은 땔나무를 패는 데 사용하는 일반 큰 도끼와 다를 바가 없으며 다만 다른 한쪽 부분이 도끼날이 아니고 소뿔처럼 생긴 것이 특점이다. 
“여보 정수아버지, 종자만 챙겨서 가지고 가면 됐지 뿔도끼는 뭐라고 무겁게 갖고 가려고 해요. 그 쪽에 가서 얻으면 안돼요?”
“당신은 몰라서 그래. 두만강 건너편에 가서 땅을 일구려면 이게 없으면 안된단 말이야. 말도 통하지 않는데 누구한테서 빌린다고 그래. 내 나가서 알아보니 뒤집 용팔이네도 갖고 가구 삼동이네두 가지고 떠난다고 하더라구. 좀 무거우면 뭘하나.”
한국 전라남도 완주군 정남구에서 살던 김종근은 1937년 일제가 강점한 조선땅에서 살길을 찾아 장백산 아래에 자리잡은 길림성 안도현 삼도향 남도촌으로 이주할 당시 조상들이 사용하던 뿔도끼를 이사짐과 함께 가지고 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소개에 의하면 이 뿔도끼는 188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뿔도끼의 사용 용도를 보면 관목이 우거진 산비탈이나 들판의 황무지를 일굴 때 괭이나 호미, 삽으로 파낼 수 없는 것을 뿔도끼날로 먼저 관목을 쳐서 제거하고 뾰족한 도끼 등으로 뿌리까지 파내려간 다음 걸어서 힘껏 당기면 잡목의 뿌리를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도 뽑을 수 있다. 
이렇게 뿔도끼는 우리 선조들이 과거 중국에 건너와서 황무지를 개간해 삶의 새 터전을 마련할 때 사용하던 중요한 생산도구였으며 그런 원인으로 괴나리보짐에 뿔도끼를 넣어가지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혹시 가지고 오지 못했을 경우에는 대장간에 찾아가서 새로 만들었다. 
뿔도끼 한자루에는 조선족들이 동북의 황무지를 논과 밭으로 개간한 역사가 담겨져있다. 얼핏 보기엔 투박해서 진귀한 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자세히 알아보면 그 속에 조선족의 지나간 이주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뿔도끼, 지금은 박물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역사유물로 되었다.

출처: 길림신문 
편집/기자: 리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