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辉
2020-03-12 15:41:34 출처:cri
편집:宋辉

봄에 먹는 보양식-녹두묵

“옛말 그른 것 하나도 없다.”는 말은 보통 어르신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인데요. 어렸을 때는 잔소리를 정당화하는 근거로만 들렸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갈수록 역시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옛날 어른들이 하신 말씀 중에 “제철 음식이 보약”이라는 말도 예외는 아니다. 계절에 맞춰 먹으면 진짜 보약이 될 수 있는데 청포묵이라고도 하는 녹두묵도 그 중 하나다.

조선 후기 풍속을 적은 책인 <동국세시기>에서는 3월이면 녹두묵을 만들어 먹는 것이 풍속이라 했다. 녹두묵을 잘게 썰어 여기에 돼지고기, 미나리, 김을 넣고 초장으로 양념하면 매우 시원한 것이 늦은 봄에 먹을 만하다고 했다.

지금은 3월이라고 녹두묵을 쑤어 먹는 사람도 없고, 삼짇날이 청포묵 먹는 날이라고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다. 그런데 옛날에는 왜 3월에 녹두묵을 쑤어 먹었으며 봄에 먹는 녹두묵이 몸에 좋다고 여겼을까?

계절적으로 음력 3월은 녹두를 파종하는 시기다. 그러니 씨 뿌리고 남은 녹두로 묵을 쑤어 먹은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봄에 녹두묵이 몸에 좋다고 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음력 3월은 날씨가 본격적으로 따뜻해지기 시작할 때다. 조금 있으면 곧 더워진다. 그런데 녹두는 열을 가라앉히는 식품이다. 우리나라 옛 의학책인 <동의보감>에 녹두는 성질이 차서 열을 내리고 부은 것을 가라앉히며 소갈증을 멎게 한다고 적혀 있다. 이런 녹두로 묵을 쑤어 먹으면 여름철 더위를 잊는 데 안성맞춤이었으니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늦봄, 음력 3월의 계절 음식으로 제격이었을 것이다.

동양에서는 예날부터 여름철 음식으로 녹두를 최고로 여겼다. 중국 송나라 황제는 소화가 되지 않을 때는 녹두로 죽을 쑤어 속을 진정시키고 여름이면 녹두죽을 마시며 열을 식혀 더위를 달랬으니 늦봄, 초여름의 계절 음식으로 녹두묵은 보약이나 다름없었다.

음식 종류가 많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금도 흔적은 남아 있다. 한정식 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전통 음식점에서 막걸리를 마실 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안주로 나오는 밑반찬으로 녹두묵을 썰어 미나리, 김과 함께 무친 것인데 늦은 봄, 다가올 더위에 대비해 녹두묵을 먹은 것처럼, 술로 인해 열이 오를 배 속을 미리 식혀 가라앉히라는 의미다. 일종의 해장 안주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녹두묵은 좋은 안줏거리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해장 음식이었다. 중국 명나라 때 의학서인 <본초강목>에도 녹두탕으로 속을 풀어주는 해장법이 나와 있고, 조선의 <동의보감>에서도 녹두는 열로 인한 독을 풀어주며 술독을 없애준다고 했다.

그러니 조선시대 이래로 최근까지 술상에 녹두묵이 안주로 많이 올라 왔다. 정조 때 시인 이옥의 시에 조선시대 술상에 오른 녹두묵 안주가 그려져 있다.

“안주로는 탕평채가 한가득 쌓였고 술자리에는 방문주가 흥건하다. 하지만 가난한 선비의 아내는 입에 누룽지조차 넣지 못한다네”

여기서 말하는 탕평채는 녹두묵무침이고 방문주는 한국 경상남도 밀양 지방의 명주다. 이옥은 정조 때 과거에 급제했지만 자질구레한 글이나 쓰고 다닌다며 정조에게 찍혀서 핍박을 받은 인물로 양반 사회에서 이단으로 취급받던 기인이다. 그 때문인지 녹두묵무침인 탕평채가 나오는 시도 당시 양반 사회의 시각에서 보면 삐딱하기 짝이 없다.

참고로 탕평채는 녹두묵을 지단과 채소, 김과 함께 무친 음식으로, 탕평채라는 이름은 영조 때 당파 싸움이 심해지자 탕평책을 편 영조가 신하들과 당쟁 중지 방안을 논의하며 사색당파를 상징하는 네 가지 색깔의 녹두묵무침을 먹은 것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확한 유래는 순조 때 간행된 <송남잡지>라는 책에 적혀 있으니, 바로 영조 때의 정승인 송인명이 이름을 지었다고 나온다. 송인명이 젊었을 때 저잣거리를 지나다 갖가지 재료를 섞은 녹두묵 파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사색을 섞는 일로 탕평 사업을 삼고자 녹두묵무침을 탕평채라고 불렀다고 기록해 놓았다.

알아 듣기 쉽게 해석하면 갈등 관계에 있는 사람과 함께 먹으면 화합의 음식이 되고, 늦은 봄에 먹으면 더위를 예방하는 보약이 되는 게 바로 녹두묵무침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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