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辉
2020-04-16 15:50:35 출처:cri
편집:宋辉

산에서 나는 고기-더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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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삼을 바다에서 나는 인삼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더덕은 산속 모래땅에서 자라는 식물의 뿌리로 인삼에 버금간다고 해 사삼(沙蔘)이라고 부릅니다. 주로 반찬으로 먹는 채소지만 인삼 못지않게 몸에 좋다고 여겼고 육식을 금지하는 사찰에서는 더덕을 ‘산에서 나는 고기’라며 영양식으로 불렀습니다. 예전부터 오래 묵은 야생 더덕은 인삼 정도가 아니라 산삼에 버금가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사삼’이라는 별명이 빈말이 아닙니다.

조선시기 광해군 때 시중에 이런 노래가 유명했다. 아마 의식 있는 선비들이 은밀하게 읊조리던 금지 가요를 철모르는 아이들이 따라 불러서 퍼져났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삼각로 권력이 막강하더니

지금은 잡채상서 세력을 당할 자가 없구나]

각로는 정승이니 ‘사삼각로’는 더덕 정승이라는 뜻인데 광해군 때 좌의정까지 오른 한효순을 일컫는 말이고 ‘잡채상서’는 호조판서를 지낸 이충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한효순의 집에서 만드는 더덕 요리와 이충 집안의 잡체가 그 맛이 특별나고 독특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시중에서는 두 사람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바쳐 광해군의 총애를 받아 출세했다고 비꼰 것이었습니다.

한효순 집에서 만들었다는 더덕 요리는 밀병(蜜餠)이라고 했다. 꿀로 만든 떡이니 아마 더덕을 까서 두드린 후에 참쌀가루를 입혀 기름에 지진 후 다시 꿀로 버무린 더덕강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덕분인지 혹은 더덕이라는 좋은 재료 덕분인지 알 수는 없지만 광해군이 반할 정도의 요리였다니 그 맛이 궁금해집니다. 더덕은 씹는 맛과 향기가 일품입니다. 고추장에 재어놓은 더덕장아찌는 밥도둑에 가깝고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구운 더덕구이 또한 씹는 맛이 쇠고기를 능가하고 향긋하면서 쌉싸릅한 향기는 인삼에 버금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깊은 산속에서 캐낸 더덕은 임금님 수라상에도 오르고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접대용 음식으로 빠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900년전인 고려 때도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1124년 송난라 사신 일행으로 고려에 온 서긍이 한 달 동안 개성에 머물면서 고려의 각종 제도와 풍속 등을 기록한 책이 <고려도경>입니다. 가까운 관계였던 송나라 사신이었으니 고려에서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서긍 일행이 처음 고려 땅으로 들어서자 영접을 담당한 지방 관리가 처음 대접한 음식이 당시에는 엄청 귀한 음식이었던 국수였고 이것이 지금 한국에서 국수를 먹었다는 최초의 기록으로 됩니다.

개성에 도착한 이후에는 관청에서 차리는 밥상에 날마다 더덕이 반찬으로 올라왔다고 기록했는데 서긍은 더덕을 먹으면서 “형체는 크고 살이 부드러워 맛이 있지만 약용으로 쓰는 것 같지는 않다”고 적었습니다. 더덕을 거의 인삼에 버금가는 약재로 생각하면서 먹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맛있는 더덕 요리에 빠진 광해군은 알다시피 인조반정으로 임금 자리에서 쫓겨난 후 처음에는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를 갔습니다. 그곳에서 위리안치, 즉 가시덤불로 담장을 친 집에 갇혀 지냈습니다. 당시 광해군을 감시하던 강화별장은 광해군이 하루아침에 바뀐 처지가 비통해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고 목격담을 기록했습니다.

“광해가 하루 종일 밥을 물에 말아 겨우 한두 수저를 뜰 뿐 다른 것은 먹지를 못해 기력이 쇠약해졌는데 언제나 목이 메어 울고만 있다.”

비록 쫓겨난 임금이지만 인간적인 연민을 느낄 만도 한데 유배지로 따라간 한 계집종이 쫗겨난 임금이라고 함부로 대하자 참다못햏 광해군이 하녀를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녀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따지고 대들었다고 합니다.

“영감이 일찍이 임금 자리에 있을 때 무엇이 부족해 염치없게 아랫사람에게 반찬까지 요구해서 심지어 잡채판서, 더덕정승이라는 말까지 생겨나게 하였소?”

잡채를 잘 만들어 호조판서가 된 이충과 더덕 요리로 총애를 받은 좌의정 한효순, 국수를 별미를 만들어 바친 함경감사 최관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하녀의 패악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영감이 임금의 자리를 잃은 것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지만 우리는 무슨 죄가 있다고 이 가시덩굴 속에서 갇혀 지내야 한다는 말이오?”

하녀의 악다구니를 들은 광해군이 고개를 숙인 채 한마디 말도 못하고 탄식만 했습니다. 더덕, 그리고 더덕으로 상징되는 부질없는 욕심이 무엇이기에 광해군을 나락으로 떨어뜨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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