权香花
2020-07-08 16:41:52 출처:cri
편집:权香花

[청취자의 벗] 2020년 7월 9일 방송듣기

[청취자의 ]

2020년 7월 9일 두 번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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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시곡 1'02" 혼합)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7월 두 번째 주의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박은옥(약칭 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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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월 7일

 

: 7월 7일 하면 역사적으로 이날 발생한 제일 중대한 사건인 '7.7사변' 즉 '노구교 사변'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이 사변은 1937년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이 발동한 사변을 말합니다. 일본은 이때부터 중국침략을 전면 시작했으며 전민의 항일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1937년, 7월 7일 저녁, 일본군 주둔군은 중국 지방당국에 통지하지 않은 상황하에서 중국 주둔군 진지 부근에서 이른바 군사연습을 진행했으며 일본군 병사가 실종되었다는 이유로 북평 서남의 완평 현성에 들어가 수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중국 주둔군은 당연이 이 무리한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일본군은 중국 주둔군을 습격했습니다. 중국 주둔군 제29군단의 소속부대는 이에 반격했습니다. 완평성의 총소리는 전민 항일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 전민 항일의 이 서막을 쓴 기사가 있습니다. 그럼 이어서 "노구교의 돌사자에 깃든 옛 이야기"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간주)

 

2. ‘7.7사변’

 

"노구교의 돌사자에 깃든 옛 이야기"

 

사실 노구교(卢沟桥)의 이 이야기는 황당한 일로부터 시작된다. 노구교의 저쪽에서 일본군이 훈련을 마치고 귀영하던 도중 병사 한명이 뒤를 보러 가면서 그만 락오를 했다. 나중에 일본군은 이 병사를 찾는 소동을 벌이며 사건은 급기야 중국과 일본 두 나라 군대의 교전으로 치닫는다. 1937년 7월 7일, '노구교 사변'은 그렇게 중국 전면적인 항일전쟁의 꼭지를 떼는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똥을 잘(잘못) 누면 역사를 만든다."는 말귀가 저절로 떠오른다.

  정말이지 사관이 기록한 정사(正史)가 아니라 민간의 여담을 기록한 야사(野史)처럼 들리는 이야기이다. 세상을 진감한 8년 항전의 총소리가 이처럼 우스꽝스럽게 울렸다고 하니 어딘가 수긍하기 어렵다.

  일본군병사의 실종사건이 실은 웃지도 울지 못할 그런 일에서 기인되였다고 하니 거짓말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영화처럼 미리 각본을 맞춘 그럴 듯한 이야기여야 할까…

  노구교는 베이징시 도심에서 서남쪽으로 약 20㎞ 상거, 수나라 개황(开皇) 간에 설계하고 금나라 대정(大定) 29년(1189) 시공을 했으며 명나라 정통(正统) 9년(1444) 중수(重修)했다. 베이징시의 현존하는 제일 오랜 석조 아치형 다리이다. 이 다리는 길이가 267m이며 아치형 다리구멍이 11개로 양쪽 난간에는 망주(望柱)가 각기 140개나 된다. 그러나 이런 일목요연한 수치와는 달리 망주 위에 조각된 돌사자는 도대체 몇 개가 되는지 아무도 정확한 수자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친구는 겨드랑에 숨어서 머리 반쪽만 내민 새끼 돌사자를 미처 셈에 넣지 못했던것이다.

  1962년, 해당 부문의 요원은 사자마다 번호를 달면서 전문조사를 진행했는데 나중에 크고 작은 돌사자가 485마리라는 것을 밝혀냈다. 돌사자의 수자는 이로써 미스터리가 풀리는 듯 했다.

  그런데 1979년 재조사에서 또 17마리가 발견되며 돌사자는 502마리로 된다. 현재 노구교 문물보호부문이 제공한 수치에 따르면 노구교의 돌사자는 도합 501마리이지만 실제로 누구도 이 수자에 마침부호를 찍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노구교의 이름 역시 서로 다른 각본이 존재한다. 항간에서는 갈대 골짜기의 다리라는 의미의 노구교(卢沟桥)라고 부른다. 옛날 이 지역에 갈대가 무성하다고 해서 로구하(卢沟河)라고 강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다리 이름은 이 강의 이름으로 명명되였던것이다.

  그런데 강의 이름으로 다리 이름을 만든 게 아니라고 하는 설이 있다. 민간에 구전되는 전설은 이와 전혀 다르다.

  예전에 이곳에는 다리가 없었고 나루터만 있었단다. 로(卢)씨 성의 사람이 부근에서 가게를 꾸렸는데 장사가 잘 되였다고 한다. 어느 해 가을, 로씨는 그동안 모은 은자를 소지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다. 이때 배로 그를 싣고 강을 건너던 전(田)씨 성의 배사공은 은자를 보자 갑자기 흑심이 생겼다. 전씨는 로씨를 영정하에 밀어뜨려 죽이고 그의 은자를 가로챘다. 이듬해 전씨는 아들을 보았다. 그런데 아들은 성장한 후 날마다 전씨더러 그의 뺨을 치게 했으며 뺨을 치지 않으면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전씨는 부근 사찰의 늙은 스님을 찾아가서 그 영문을 물었다. 스님은 전씨에게 이 아들은 로씨가 전세(传世)한 것으로 그를 살해한 전씨에게 복수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스님은 전씨가 이 업보에서 벗어나려면 겁탈한 은자를 모두 보시하여 다리를 만들고 길손의 도하 위험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전씨는 기술자들을 불러 강에 다리를 놓은후 또 스님에게 다리 이름을 뭐라고 달아야 할지 가르침을 청했다. 그러자 스님은 로씨의 빚을 갚는 다리이니 로씨 성을 달아야 한다고 하면서 노구교라고 작명해줬다는 것이다.

  기왕 강 이름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로구하는 청나라때부터 수로가 영원히 안정하라는 의미에서 영정하(永定河)라고 불리고 있다. 상류지역은 또 옛날부터 뽕나무 상(桑), 마를 간(干) 자를 넣은 상건하로 불리고 있다. 이 이름은 특정시기의 강의 수위를 기슭에 자라는 뽕나무에 연계시키고 있다. 실제로 해마다 뽕나무의 열매가 익는 4월이면 강바닥이 말라서 붕어 잔등처럼 허옇게 드러난다고 한다.

  장편소설 '태양이 상건하를 비춘다(太阳照在桑干河上)'는 배경이 바로 이 강의 유역이라고 전한다.

  장편소설 "태양이 상건하를 비춘다"는 중국의 유명한 작가 정령(丁玲)의 작품으로, 1946년 화북에서 토지개혁을 둘러싸고 벌어진 농민과 농촌 투쟁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이 소설은 후날 소련 스탈린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러고 보면 이 강은 원래 이야기를 만드는 곳이 틀림없는 것 같다.

  일행은 오랜만에 한 물곬으로 화제를 이끌어갈 수 있었다. 로구하라고 하든 아니면 영정하라고 하든 그리고 상건하라고 하든 정말로 이야기가 많은 강이였다.

  계절적으로 마르는 상건하는 산과 들을 지나는 천연적인 통로를 만들고 있었다. 적어도 5천년 전에는 중국 대륙에서 유일한 인간 대통로였다. 이 시기의 인간은 아직 길을 닦을 능력이 없었으며 다만 천연 통로를 이용하여 이동했기 때문이다.

  상고시대 황제와 치우가 전쟁을 벌였던 탁록(涿鹿)은 바로 이 통로 부근에 위치한다. 황하 상류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던 황제는 이 옛 통로를 진공로로 리용하여 북방의 연산(燕山) 기슭까지 거침없이 진군하여 치우와 마지막 대결을 벌였던 것이다.

  상건하에 얽힌 천년의 이야기가 현세의 중일 양국의 대전으로 윤회를 했을까… 아무튼 영정하는 이름과는 달리 영원히 안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전면항전은 영정하에서 시작되었고 이때부터 중국과 일본은 완전히 전쟁상태에 처했지만 당시의 국민정부는 '자위항전 성명서'를 발표했을 따름이다. 일각에는 중국에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해상 운수로가 일본에 의해 두절될까 우려했고 또 화교 철수와 보호의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등등의 설이 있다. 그래서 "전쟁을 하면서도 선전포고를 하지 않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후 미국정부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때에야 국민정부도 정식으로 '중국정부의 대일 선전포고 문서'를 발표하고 "정식으로 일본에 전쟁을 선고"한다.

  사실상 항일전쟁은 이미 1931년 동북 땅에서 불길을 지피고 있었다. 1931년 9월 18일 밤, 일본 관동군의 배치 하에 철도 '수비대'가 심양 유조호(柳条湖) 부근의 일본이 부설한 남만철도 철길을 폭파한다. 관동군은 이 사건을 중국 군대가 조작했다고 무함하고 북대영(北大营)의 중국군을 무장 진공하며 이어 동북 전역을 대규모로 침략한다.

  중국 전 지역을 강점하기 위한 전주곡은 이렇게 철길에서 기적을 울리고 있었다.

  훗날 일본군 병사의 실종이 아니더라도 '노구교 사변'의 빌미는 언제 어디서든지 나타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전쟁은 베이징의 다리가 아니라 심양의 철길에서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8년 항전을 그냥 중국 항일전쟁의 대명사로 착각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8년 항전'은 1937년 노구교에서 일어난 '7.7사변'으로부터 1945년 8월 일본이 투항을 선포하기까지의 기간을 이르는 말로서 전면 항전을 지칭한다. 중국의 항전은 실은 1931년 '9.18' 사변부터 1945년 '8.15' 해방까지 옹근 14년 동안 진행되었다.

  노구교는 동쪽으로 완평성(宛平城)과 이어진다. 완평성은 명나라 때 둔변(屯兵)을 위해 설립한 작은 위성(卫城)이다. 완평성에는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이 설립되여 있다.

  중국인민의 14년 항전은 최근 국가적인 공감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 기념관 광장에는 높이 14m의 국기 게양대가 세워져 있는데, 바로 중국인민의 14년 항전의 여정을 상징한다. 중축선 양쪽에 각기 펼쳐진 7개의 잔디밭은 '7.7사변' 즉 전 민족의 항전이 일어난 곳에 이뤄진 녹색의 평화와 14년의 항전이 이룩한 평화의 성과를 의미하고 있다.

  노구교에서 최초로 일본군과 접전했던 부대는 당시 베이징과 천진 지역을 수비하던 국민군 제29군단이다. 항일전쟁 시기 중국 대륙에서 널리 불리던 노래 "대도진행곡(大刀进行曲)"의 부제는 바로 "제29군단 대도대(大刀队)에 드림"이다. 지금까지 알려진데 의하면 이 군단에는 조선인 장교가 2명 있었다. 김자렬(金子烈, 1897~1961)이라고 하는 조선인이 소속 180사단에서 소장급 참모로 있었으며 강석훈(姜锡勋1896~?)이라고 하는 다른 조선인은 소속 113여단의 상교급의 부관으로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놀라운 사실은 베이징에 살던 김자렬 아들의 기술에 의해 밝혀졌다.

  "중국 항일전쟁의 첫 총소리를 울린 조선인 장교"라는 말은 어딘가 이상하지만 그렇다고 황당한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노구교의 채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는 돌사자뿐만 아닌 것이다.

 

 

네, ‘7.7 사변’과 이 사변에 깃든 이야기이었습니다. 노래 “대도행진곡‘ 듣고 다음 코너로 이어가겠습니다.

 

(노래 한곡)

 

코너 [청취자의 편지]

 

:

갈림성 왕청현 신문보도 센터에서 특약기자로 있는 리강춘 청취자가 보내온 내용입니다.

 

“길림성 왕청현 계관향 제1회 목이버섯축제가 4일 현지에서 열렸다. 오전에 있은 이 개막 행사에 약 8천명이 참석했다.

왕청현 계관향의 목이버섯의 재배역사는 약 50년에 달한다. 현재 목이버섯 산업은 계관향의 기둥산업으로 부상했다.

개막식에서 치부 인솔자와 목이버섯의 규모급 재배가구를 표창했다. 현지 은행과 농산물기업은 또 계관향 정부와 가난구제 ,빈곤탈출의 합작협의를 체결했다. 목이버섯의 채집과 포장 경연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져 축제에 이채를 더 했다.”

 

이강춘 청취자는 또 왕청현의 복지원에 있는 82세의 양종범 노인을 대필하여 노인의 복지원 생활 정경을 글로 보내왔습니다.

글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나 양종범은 올해로 여든 둘인데 아내가 의외의 사고로 별세한 몇 년 후인 2018년말 복지원에 입주했습니다.

 

이 복지원은 길림성 왕청현 민정국에서 투자해 지었는데, 밝고 넓은 거실 그리고 넓고 조용한 정원이 있으며 또 배구장과 게이트 볼 구장이 있고 헬스 기자재가 구전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병풍산을 등에 업고 있는 등 공기가 맑고 환경이 좋아서 연변에서 손꼽히는 복지원으로 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행복한 노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생활은 절주 있고 즐거웠습니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30분씩 도보 운동울 했고 점심에는 30분씩 오침을 했습니다. 정기적으로 글쓰기와 노래 연습 등 취미생활을 계속했습니다.

 

복지원은 서예를 가르치고 붓 글씨와 만년필 글씨 등으로 노인들의 손놀림 동작을 영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활동에도 꾸준히 참가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컴퓨터로 글을 작성하며 원고를 신문 "연변노인의 벗" 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와, 소식보도 등 글들을 자주 신문지상에 발표했습니다. 시와 소식보도는 주로 복지원과 간호사를 주제로 삼았는데, 지금까지 20여편이 여러 매체에 발표되었습니다. 이 가운데서 "복지원의 노래", "복지원 원장의 이야기", "복지원은 내 마음속의 노래" 등 작품은 많은 독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나는 또 특별히 민간 작곡가를초청해 가사 복지원은 내 마음속의 노래"에 곡을 달았습니다. 이 노래는 지금 복지원에서 널리 애창되고 있습니다.

나는 고령의 노인들에게 알 맞는 체조를 창작했습니다. 이 체조는 7절로 되어있는데, 복지원의 노인들에게 보급했습니다.“

 

총적으로 만년생활은 매일 다양하고 쾌활하며 건강하게 보내고 인생을 향수하고 사회에서 노인들에게 주는 쾌락을 향수하며 오래오래 살아가고자 합니다“

:

다채로운 만년생활을 보내고 있는 양종범 노인의 생활 일상을 적은 편지사연이었습니다. 양종범 노인이 이곳에서 행복한 노후생활을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 다음으로는 한국 대구의 구원모 청취자가 7월 7일자로 보내온 편지 사연입니다.

“CRI 한국어 관계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먼저 항상 좋은 방송을 송출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 07. 07일자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지역의 코로나19 현황을 알려드립니다.

2020. 07. 07일자 대구광역시 지역의 코로나19 현황입니다.

 

확진자 수는 6925명, 완치(격리해제)자는 6802명, 치료(격리)중인 자는 31명, 사망자는 185명입니다.

경상북도 지역의 코로나19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확진자 수는 1351명, 완치(격리해제)자는 1284명, 치료(격리)중인 자는 9명, 사망자는 58명입니다.

확진자 수는 질병관리본부 공식 발표자료에 의함으로 참고 바랍니다.

 

4월 13일부터 대구광역시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한 자릿수나 한 명도 나오지 않았으나, 7월 3일에 14명이 확진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14명이 나온 이유가 9명이 한 여고 확진자 학생이 다녔던 연기학원의 수강생들이라고 합니다.

특히 일부 확진자의 전파력이 높은데다가 학원이 도심 한 가운데에 있어 추가 확진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경상북도에서 간헐적으로 1명 정도 발생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빨리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종식되었으면 합니다.

이만 코로나19 소식을 줄입니다.

고맙습니다.

 

구원모 청취자 드림”

 

[퀴즈 한마당 코너]

 

: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이달에는 지명과 관련한 퀴즈를 내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무엇’과 ‘무엇’이 있다.”

여기서 ‘무엇과 무엇’은 어느 도시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여기서 ‘무엇’과 ‘무엇’은 어느 도시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네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번,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

:

지금까지 [청취자의 벗]과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성에 진행에 박은옥, 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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