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20-07-08 16:10:14 출처:cri
편집:朱正善

(시골 제1서기들의 이야기) 화훼로 가난 구제...땀 방울로 '치부의 꽃' 키워

가난 구제 간부 천화(陳華)는 올해 61세이다.

2006년부터 그는 자신의 가난 구제 생애를 시작했다. 그는 선후로 흑룡강성의 7개 시와 현의 8개 마을에서 가난 구제 업무에 진력해왔으며 마을 사람들로부터 '라오 천(老陳)'이라고 친절히 불린다.
농촌에서 나서 자란 라오 천은 기층 가난 구제 간부로 파견되기 전 흑룡강성 기관사무관리국 공회(工會) 주석이었다.
2015년 9월 라오 천은 수능(綬棱)현 고산(靠山)향 고산(靠山)촌의 마을 주둔 제1서기로 파견되었다.
고산촌은 성급 빈곤촌이다. 고산촌에 와 맞춤형 가난구제를 맡게 된 라오천,  고산촌은 그가 가난 구제를 맡아온 여덟번째 마을이다.
라오 천은  항상 위장복 차림에 신발에 흙을 가득 묻힌  모습이다. 얼굴이 거멓게 탄 그는 얼핏 보면 현지 농민과 다를바 없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陈华带领工人种花

해마다 6,7월은 라오 천이 가장 바쁜 시기다. 마을 촌민들이 반년간 화훼를 열심히 재배한 경제수입이 그가 이 두달 동안 할빈에서 매출액을 얼마 올리는가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판매 계약서 몇개를 손에 쥔 라오 찬은 아침 일찍 할빈시에서 마을로 돌아와 화훼운송에 들어간다.
라오 천은 화훼를 판 돈을 마을 사람들의 손에 쥐여줄 때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자신에게 가장 큰 위안이라고 말한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陈华开车运花去城里卖

화훼를 운송하는 라오 천

7만 그루의 경관용 화훼를 차에 다 실으니 오후 네시가 넘는다. 라오천은 화물차와 함께 이 화훼를 밤도와 할빈에 운송해야 한다. 차안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한 그는 이내 잠이 들었다. 이 화훼들을 빨리 옮겨 심기 위해 다음날 새벽 4시에 그는 근로자들을 이끌고 화훼 심기에 나섰다. 하루에 5만그루를 심어야 한다. 라오천은 빨리 일을 끝내면 빨리 집에 돌아갈 수 있다고 일군들에게 사기를 불어넣는다.
이러한 강도로 라오 천은 수 년간 쉴새없이 돌아쳤다.
힘을 합치면 태산도 옮길 수 있다. 다년간의 가난 구제 경험에 의거해 라오 천은 촌민들이 재배구조를 변경하도록 이끌어 화훼 가난 구제 산업을 발전시겼다. 그는  '농기계 경작대'를 조직해  마을의 만여묘의 땅에서 '대리 경작 대리 관리'를 실현했고 태양광 발전소를 신축해 빈곤가정들의 가난 구제를 도왔다. 마을 업무팀의 인솔하에 올해 고산촌은 대롱(大聾) 다수확밭 재배를 시도했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村民曹金英

촌민 조금영(曺金英)

촌민 조금영(曺金英)은 손에 일감이 끊기지 않는다며 생활도 날에 날따라 꽃펴나 아주 기쁘다고 얘기한다.
2018년에 고산촌은 '가난의 모자'를 철저히 벗어던졌다. 마을 사람들의 1인당 소득이 1만원 이상에 달했고 마을의 집체 자산은 581만여만에 달해 일약 전 현 선진촌으로 도약했다.
2019년 12월 23일 라오 천은 퇴직통지를 받았다.
촌민들은 다 함께 빨간 손 도장을 찍은 청원서를 내어 라오 천이 계속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부유의 길로 나아갈 것을 희망했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村民们做了请愿书,按上红手印,希望老陈继续留下
마을 사람들의 간곡한 만류로 라오 천은 마을에 계속 남게 되었다.
라오 천은 자신은 퇴직 했으나 여전히 한 명의 공산당원이라며 "여생에 가난 구제를 위해 일말의 힘이라도 이바지 할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고 얘기한다.


번역/편집:주정선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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