权香花
2020-07-31 16:58:50 출처:cri
편집:权香花

[청취자의 벗] 2020년 7월30일 방송듣기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7월 다섯 번째 주의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박은옥(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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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월 1일 명절

갑:

모레 즉 8월 1일은 음력 해 213일째 되는 날인데요, 올해 한해가 끝날 때까지 152일 남았습니다.

8월 1일은 중국인민해방군 건군절입니다. 1927년 8월 1일, 주은래, 주덕, 하룡, 엽정, 유백승 등은 북벌군을 영도하여 강서성 남창에서 봉기를 일으키고 무장봉기의 첫 총성을 울렸습니다. 이 총성은 중국공산당이 독립 영도하는 무장투쟁의 시작을 상징합니다.

1933년 7월, 중화소베트공화국 임시 중앙정부는 8월 1일을 중국공농홍군 창립 기념일로 결정했습니다. 중국공농홍군은 중국인민해방군의 전신입니다. 1949년 6월 15일, 중국인민혁명군사위원회는 명령을 발표하고 ‘8.1’ 두 글자를 중국인민해방군 군기와 군대의 표지로 삼았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창립된 후 이 기념일을 중국인민해방군 건군절로 삼았습니다.

1952년 8월 1일, ‘인민영웅기념비’가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정식 착공되었습니다.

이날은 또 중국 역사에 기입되어 있습니다.  894년,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선언했으며 이로써 중일 갑오전쟁이 전면 발발했습니다. 청정부는 매국투항 그리고 뒤떨어진 경제기술로 하여 종국적으로 전쟁에서 실패했습니다. 갑오전쟁 후 중국은 반식민지화의 행정이 빨라졌습니다.

8월 1일은 스위스의 국경일이기도 합니다. 1291년, 스위스의 3개 주 동맹협정이 체결되었으며 스위스는 영구동맹 조약이 체결된 이날을 스위스연방의 건국일로 삼았습니다.

이날은 영국의 수확의 명절입니다.

 1498년의 8월 1일, 콜롬보가 세 번째 항행에서 남미주를 발견했습니다.

(고정 간주 6")

2. 지명과 연변

계속하여 ‘지명으로 읽는 이민사’, ‘연변 100년 역사의 비밀이 풀린다’ 이런 제목으로 지명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중국과 조선 접경지의 도시 길림성 연변 도문의 이야기입니다.

“회막골 어구에 있었던 동경”

옛날 누군가 마을 북쪽 골짜기의 막바지에 가마를 앉히고 석회를 구웠다고 한다. 그래서 골짜기에는 늘 회색의 장막이 안개처럼 드리웠다. 일명 회막동이라고 하는 회막골(灰幕溝)은 그렇게 석회로 도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석회가 마을에 남긴 기억 역시 그 무슨 회색의 장막에 가린 듯하다. 한때 회막골이라는 이름으로 통했던 도문(圖們)에서 회막골 자체가 낯선 이름으로 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실 한정숙 노인이 소학교를 다니고 있던 1940년대 말에도 회막골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고 한다. 1950년, 부근의 여러 부락이 한데 합쳐 합성촌(合成村)으로 되며 이듬해 집중촌(集中村)이라고 개명하면서 차츰 단체기억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그때 한정숙 노인은 회막골의 북쪽에 이웃한 동경동(東京洞)에서 살고 있었다. 지난 세기 30년대 초 양친이 어린 두 언니를 업고 두만강 대안의 종성군에서 이 고장으로 이주했다. 한정숙 노인은 그로부터 얼마 후인 1938년에 동경동에서 태어나지만 한 핏줄인 언니들과는 달리 이민 2세라는 도장을 박게 된다.

한정숙 노인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1956년이다. 현지에 고등학교가 없어서 멀리 타향으로 떠나야 했다. 이 때문에 기억에 유달리 남고 있는 그 무렵의 동경동은 거의 일색으로 조선족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고장에 맨 처음 이삿짐을 내려놓은 사람은 중국인이라고 한다. 지명지(地名志)의 기록에 따르면 산동(山東)에서 조개명(趙開銘)이라고 하는 중국인이 가족을 데리고 처음으로 도문에 와서 이삿짐을 풀었다. 그때는 이미 청나라의 봉금령(封禁令)이 풀리고 있던 1890년경이었다.

그러고 보면 조선인들은 줄곧 누가 이 처녀지에 맨 먼저 보습을 박게 될까 하고 팔짱을 낀 채 강 저쪽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긴 석연치 않은 데가 있다. 이때 조선인 간민(墾民)들은 두만강 연안을 지나 북간도의 종심지역으로 파고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인 간민이 간도를 개척하는 시발점으로 되는 용정은 물론이요, 훗날 연변의 수부로 된 연길의 최초의 정착민도 조선인이 아닌 만족이나 한족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쨌거나 그때부터 조선인들이 연이어 나타나며 점차 회막골을 비롯한 여러 동네를 형성했다고 한다. 이때 도문 벌을 ‘어우벌’이라고도 했는데 두만강 건너 대안의 첫 동네가 바로 ‘어우’였다. 향수에 젖은 간민들이 옛 고향의 이름을 따라 부른 것이다.

회막골 부근에는 시초에 인가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1910년경 회막골, 동경동, 새밭굽, 가는동, 박달봉 등에 모두 수십여 가구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사람들이 여러 갈래의 물처럼 하나로 합쳐지자 사품 치는 큰 강을 이루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31년 ‘9.18’ 사변 후 일본군은 동3성(東三省0을 병탄하였다. 두만강 기슭에 있는 이 고장은 대뜸 열점지역으로 부상하였다. 북쪽으로 동만(東滿)과 북만(北滿)에 잇닿고 남쪽으로 한반도와 연결되어 있어서 둘도 없는 교통 요충지로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33년, 북쪽의 돈화(敦化)에서 이 고장까지 통하는 철도가 개통된다. 종착역은 두만강 기슭에 있던 회막골이었다.

이때 토목건축을 대거 진행하면서 이곳의 인구는 2만여 명으로 급증한다. 당금 도시 명명이 시급한 과제로 나섰다. 이름만큼이나 시골스런 회막골은 국제도시의 위상에 걸맞지 않았던 것이다. 1933년 5월, 회막골 경찰서는 관민官民 대표를 소집하여 지명을 고칠 일을 토론한다. 이해 6월, 여러 단체는 지명을 고칠 결정을 각기 통지하고 회막골을 도문(圖們)이라고 개명하였다.

도문의 이름은 장백산의 천지와 하나로 이어진다. 옛날 천지는 만족 말로 ‘도문써친(圖們色禽)’이라고 불렸다. 도문(圖們)은 일만 만(萬)이라는 의미이며 써친(色禽)은 강의 원류라는 의미이다. 두만강은 천지에서 흘러나온다고 생긴 이름이다. ‘회막골’은 이 두만강 기슭의 유일한 도시로 거듭나면서 물을 떠오듯 강 이름을 그대로 옮겼던 것이다.

각설하고, 회막골이 나중에 집중촌으로 되듯 동경동도 훗날 오공촌(五工村)으로 덩치를 불린다. 오공촌은 8.15 광복 후 만주국 주식회사가 경영하던 공장이 한시기 가동을 멈추고 실업자들이 부근에서 땅을 가꾸면서 생긴 이름이다. 즉 다섯 주식회사의 노동자들이 살던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훗날 공장이 다시 운영되면서 경작지가 점용되고 많은 노동자들이 이웃한 동경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에 따라 동경동도 오공촌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동경동의 이름 역시 회막골처럼 집단기억에서 소실되며 더구나 두터운 베일에 가린다. 현지 태생인 한정숙 노인도 지명유래 이야기가 나오자 아련한 옛 기억을 한겻이나 더듬었다.

“일본인들이 살았다고 지은 이름이 아닐까? 동경이라는 게 일본의 수도이니 말이네.”

지난 세기 80년대까지 동경동의 남쪽에는 일본인들이 살던 옛 가옥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악명이 자자했던 일본헌병대도 여기에 있었다. 헌병대 울안을 두른 수백 미터의 토성은 그 자리에 남아있었으며 옛 건물의 지하실에는 물 감방이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울안에는 또 사람을 콩처럼 갈아서 죽였다고 전하는 맷돌이 있었으며 지하실 벽에는 형구를 걸었던 철제 틀이 그냥 박혀있었다.

1972년 도문 홍광향(紅光鄕) 방송소는 이 지하실을 방송실로 사용하려 했다. 홍광(紅光)은 붉은 빛이라는 의미로, 지난 세기 60년대 지은 인민공사의 이름이다. 그러나 누군가 지하실에 한번 다녀온 후 방송실 설립은 없던 일로 치부되었다. 염라국 같은 지하실의 으스스한 분위기에 질려버렸던 것이다.

일본헌병대의 건물은 도문시 제1중학교의 자리에 있었던 걸로 전한다. 2012년 여름, 우리 일행이 학교를 찾았을 때는 한발 늦은 시점이었다. 헌병대의 지하실 감방이 있던 건물은 불과 1년 전에 허물렸던 것이다. 부근의 일본인 가옥과 그들이 경영하던 옛 상가 건물은 더구나 이를 앞선 20년 전에 벌써 전부 철거되었다.

어쩌면 동경동은 어디엔가 형체를 감춘 일본인들의 유적처럼 한사코 뭔가의 사연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기실 이 고장에 나오는 지명 동경은 일본 수도 도쿄와 동일한 의미가 아니라고 현지의 지명지가 밝히고 있다. 동경동은 벌써 한정숙 노인의 양친이 도착하기 오래전인 광서(光緖) 23년(1899)에 형성된 마을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벌써 사람들에게 동경동이라고 불리고 있었으며 일본인들은 아직 이 고장에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고 있었다.

동경이라는 이 동명의 이름은 도문 시가지의 서남쪽 산골짜기에도 있다. 이 동경동과 동경촌은 회막골 부근의 동경동을 앞선 광서(光緖, 1875~1908) 초년에 벌써 골짜기에 나타나며 타민족이라곤 하나 없는 알짜배기 조선족마을이었다. 그런데 지명지의 기록에 따르면 ‘동경’은 물소리 혹은 시냇물을 이르던 만주족 말이라고 한다. 왜서 그렇게 조선족마을의 지명을 지어야 했는지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회막골 부근의 일광산(日光山)도 마찬가지이다. 일광산은 원래 회막골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산이라고 불렸다. 1915년 조선의 고승 수월스님이 이곳에 ‘수월정사(水月精舍)’를 짓고 수행을 하였다. 이 무렵 사람들은 남산을 햇볕이 잘 든다는 의미의 일광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 1932년 남산에 사찰을 지었던 일본인 스님이 바다 건너 고향의 산 ‘닛코야마(日光山)’의 이름을 남산에 갖다 붙였다고 하는 설이 있다.

얼마 전 일광산에는 또 사찰이 하나 섰다. 불전(佛典) 화엄경에서 이름을 따온 ‘화엄사(華嚴寺)’이다. 일부러 산에 허위허위 올랐더니 일행의 논쟁은 보전 앞의 향불처럼 다시 연기를 올올이 뿜어냈다. 그게 볼썽사나웠던지 웬 신자가 다가와서 한마디 참견하는 것이었다.

“이보세요, 일광日光은 결국 불성(佛性)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그의 말에 따르면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오듯 만고의 번뇌에서 해탈하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 일광산은 시초부터 불교 사찰로 유명했으니 그럴 법 한다. 정말이지 산 이름의 진실한 내력은 사찰에 모신 부처님만 알고 있을지 모른다.

일광산의 어구에는 석물 하나가 서서 옛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1930년대 두만강에 나룻배를 띄우던 나루터의 기념비이다. 노래 “두만강의 노 젓는 뱃사공”은 바로 여기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러나 푸른 물에 노를 젓던 뱃사공은 더는 없었다. 새로 복원된 나루터 부근에서 관광용 기계배가 괴성을 퉁퉁 지르며 강을 오르내린다.

잠깐, 나루터의 이름은 ‘도문강관광부두’로 되어있었다. 두만강은 이상하게 웬 ‘도문강’으로 이름을 바꿨던 것이다. 백두산이 장백산으로 불리듯 우리말 지명은 언제부터인가 이처럼 엉뚱한 이름으로 탈바꿈을 하고 있었다.

옛 지명은 “눈물 젖은 두만강”처럼 어느덧 흘러간 옛 노래로 되고 있는 것이다.*

갑:

네, 연변의 지명과 이 지명에 깃든 이야기이었습니다. 노래 한곡 듣고 다음 코너로 이어가겠습니다. “눈물 젖은 두만강”

(코너 고정 간주)

[청취자의 벗 편지 사연]

갑: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개해드리는 ‘편지가 왔어요“ 시간입니다.

오늘은 먼저 중국 길림성 연길의 박철원 청취자의 편지 사연을 들어 보겠습니다.

[청취자의 벗] 편성자 선생님:

안녕하세요!

짧지만 열정으로 넘치는 편지 감사히 받아 보았습니다. 뜨거운 고무에 감사드립니다.

편성자 선생님과 만난 적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김동광 주임, 한창송 아나운서, 송휘  아나운서, 이명란 아나운서 등 분들과 인연이 깊어요.

우리말 방송의 애청자로서 CRI를 즐겨 들으면서 거친 글이지만 가끔 연변소식을 전해 드리군 합니다. 고맙게 받아주고 알뜰히 다듬어 전파에 태워주니 감사한 마음입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귀 방송이 체제개혁 후 현재 연변지역에서 (연길 아리랑방송) 중계가 중단, 지금껏 재개 되지 않아 많은 청취자들의 의견이 많습니다. 조선족 집거지역에서도 국제방송 조선말방송을 들을 수 없다니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중앙인민방송은 지금도 ‘연변방송’에서 한시간씩 중계되고 있습니다. 국제방송도 계속 중파로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인터넷으로 시청하고 때론 라지오 단파로도 청취하면서 기본상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노인 청취자들은 의견이 많습니다.

저도 이런 상황을 몇번 반영했지만 아직 소식은 없고요. 가불간 중파방송 재개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1944년 출생으로 중국상공은행 연변지사에서 경제사로 있다가 퇴직했습니다.  앞으로 방송을 매개로 많이 연계하면서 방송국과 좋은 정보를 자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박철원 올림

네, 중국국제방송 조선말방송을 계속 중파로 들었으면 좋겠다는 박철원 청취자의 말씀인데요, 중파 방송 중단으로 연변지역 청취자들에게 불편을 끼친 점을 사과하면서 청취자들의 이런 의견을 상부에 잘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중파 방송이 중단되었지만 단파나 온라인으로 계속 우리 방송을 관심해 주시고 청취해 주시는 현지 여러 청취자 분들에게 거듭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네, 이번에는 중국 길림성 왕청 지역에 도시항공 터미널이 설립된다고 현지의 이강춘 청취자가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소식 내용 말씀드리겠습니다.

[연길공항의 왕청 도시공항터미널 계약식 진행했습니다.]

2020년 7월 22일, 연길공항회사와 연변신항운수집단유한회사는 왕청 전역 관광업을 추진하고 왕청 관광서비스의 수준을 높이고 항공 여객의 외출 수요를  만족하기 위해 연길조양천국제공항 왕청 도시공항터미널 프로젝트에 대한 합작 의향을 달성하고 계약식을 가졌다. 연길공항 당위서기 소동위, 연변신항집단유한회사 리사장 고립 등 관련 인원들이 계약식에 참석했다.

왕청 도시공항터미널의 성공적인 계약과 함께 연길공항을 중심으로 한 도시공항터미널의 지상 교통서비스 네트워크 국면이 현실화되였다. 왕청-연길공항 직행 셔틀버스도 곧 사용에 투입돼 여객들은 "집 앞'에서 공항까지 가는 "원스톱 서비스"를 향수할 수 있게 된다.

네, 벽지에도 도시공항터미널이 설립되어 관광업이 활기를 띄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이강춘 청취자는 현지의 소식을 보도기사 형식으로 꾸준히 우리 방송에 보내오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이런 기사가 청취자들에게 좋은 정보로 되길 바라겠습니다.

이번에는 길림성 장춘시의 김수금 청취자가 보내온 소식인데요, 장춘 제1자동차그룹 조선족노인협회는 7월 1일 당 창건 명절을 경축하여 온라인 행사를 가졌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 읽어드리겠습니다.

“온라인 공연으로 7.1 명절을 경축했습니다.”

장춘 제1자동차그룹 조선족노인협회는 코로나19사태로 협회활동을 중지한 상황에서 7월 1일의 당 창건 99년에 즈음하여 '온라인 7.1 특별행사'를 조직하여 건당 99주년을 열렬히 경축했습니다. 회원들은 모두 자체로 준비한 다채로운 종목을 사진 혹은 동영상으로 협회의 위쳇 대회방에 올렸습니다. 컴퓨터와 핸드폰 기술에 능숙한 한단희 회장이 이 작품들을 편집하여 아름다운 음악과 평어와 함께 위쳇 대화방에 올렸습니다.

위쳇 대화방에는 윤영선 부회장의 노래 '산 노래 불러 등에 드리네', 김인선 현금숙 두 노인의 노래 "공산당의  은덕일세' 등과 윤정희 노인의 양걸춤, 오애화 노인의 부채춤, 전기순, 이명희 노인의 무용 '붉은해 변강 비추네', 박영희, 방태식, 김해순 노인의 무용이 올려졌으며 또 광장춤, 건강무용 등도 있었습니다. 일부 서예작품과 사진도 등장했습니다.

현종옥 노인의 미술작품 '모란꽃",  '두루미', 윤영선 회장의 사진 '새둥지', 강균숙 노인이 무와 채소로 만든 공예품 아키시아꽃은 대화방에 이채를 더해주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양두봉 노인은 태극권을 표현하여 건강 장수의 풍채를 자랑했습니다.

오예화 소조는 전국 이직, 퇴직 간부 선진인물로 당선된 김영자(88세) 노인을 방문한 단체사진을 올려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편 박룡익 노인은 시사 '심원춘, 당의 생일 감상"을 한문으로 올렸으며 김수금 회장은 한문 7언 시 '7.1 유감'을 올려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명기하자고 거듭 표명했습니다.

회원들은 영화를 보듯 회원들이 대화방에 올린 정채로운 종목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다들 경축대회 현장에 참가한 기분이었습니다.

김수금 올림

네, 풍부한 여가 활동으로 생활을 아름답게 꾸미는 협회 여러 분들과 더불어 장춘 제1자동차그룹 조선족노인협회의 '온라인 7.1 특별행사' 현장에 함께 하는 기분입니다.

방송해 드리는 편지사연과 더불어 장춘의 전정남 청취자, 김춘실 청취자가 7월의 퀴즈 답안을 보내왔습니다.

[고정 간주]

[퀴즈 한마당]

갑: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이달에는 지명과 관련한 퀴즈를 내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무엇’과 ‘무엇’이 있다.”

여기서 ‘무엇과 무엇’은 어느 도시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여기서 ‘무엇’과 ‘무엇’은 어느 도시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네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갑: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번,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말]

갑: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성에 진행에 박은옥, 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취자의 벗]과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취자의 벗]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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