权香花
2021-01-10 10:21:53 출처:cri
편집:权香花

[청취자의 벗] 2021년 1월 7일 방송듣기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1월의 첫 번째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박은옥(M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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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월

MC:

‘청취자의 벗’ 방송 시간인 금주 목요일 1월 7일은 양력 한해 가운데 일곱 번 째 날입니다. 2021년 새해가 시작된 지 꼭 한주일 째 됩니다.

2. 지명과 연변

이 시간에는 ‘지명으로 읽는 이민사’, ‘연변 100년 역사의 비밀이 풀린다’ 이런 제목으로 지명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 연길시 동쪽의 마을 하룡촌의 지명 이야기입니다.

사찰이 없는 ‘새절’의 동네

“우리 마을의 이름을 ‘새절이’라고 불렀다고 하던데요…” 열다섯 살 때 고향마을을 떠났던 황봉주(1936년 출생)의 기억에는 지난 몇 십 년 동안 그런 이상한 이름이 내내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게 무얼까 하고 궁금했지만 무슨 의미인지 모릅니다.”

‘새절이’는 옛날 부르하통하와 해란강 합수목의 동남쪽에 자리 잡은 마을을 이르던 말이다. 황봉주의 기억에 따르면 ‘새절이’는 바로 상촌上村의 아래쪽에 있었다고 한다. 상촌은 광서(光緖, 1875~1908) 초년 형성된 마을인데 신룡촌新龍村의 상류에 위치한다고 해서 불리는 이름이다. 신룡촌은 광서 말년에 생긴 마을로 원래는 신흥촌新興村이라고 불렸으며 동명의 마을이 있다고 해서 1955년에 새롭게 바꾼 이름이다.

위치적으로 볼 때 신룡촌 아니 신흥촌이 바로 ‘새절이’인 것 같기도 한다. 그렇다고 ‘새절이’에 맺힌 의문이 잇따라 쉽게 풀리는 게 아니다.

예전에 항간에서는 ‘새절이’를 ‘새절’의 변음으로 보는 설이 있었다. 새절은 새 사찰이라는 신사新寺의 한글 명칭으로서 새절이 있었으므로 유래된 지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마을 부근에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정말 사찰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황봉주는 그때 너무 어려서 사찰에 다닌 적 없지만 사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다니던 곳을 그럽니까? 남산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고 하지요.”

해란강 건너 쪽에는 줄레줄레 높은 산등성이가 병풍처럼 남쪽을 막아서고 있다. 해발 601m의 주봉이 보습 날처럼 뾰족하게 보인다고 해서 현지인들은 화첨자산鏵尖子山이라고 부르며 또 소뿔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계에서는 산정에 봉화대가 있다고 해서 연대봉煙臺峰이라고 명명하였다.

옛날 이 산의 북쪽 산비탈에는 사찰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산비탈에서 기와조각이나 토기 따위가 발견되었을 뿐이며 아직까지 사찰 유적지는 판명되지 않고 있다. 마을 부근에 사찰 동래사东来寺가 있지만, 이 사찰은 몇 년 전에 새로 생긴 사찰이다.

옛 사찰이든 아니면 새 사찰이든 나중에 동네방네 소문을 놓은 건 사찰이 아니며 또 마을도 아니다. 동쪽 산비탈에 있는 천년 고송은 이 고장의 대명사로 되고 있다. 고송은 세 그루가 나란히 서있다고 해서 또 삼태송이라고도 불린다.

천년 고송이 처음으로 화제에 등장한 것은 1904년이다. 그때 조선 함경북도 명천의 밀양 박 씨 박중근 형제와 길주의 양천 허 씨 허웅범 삼형제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비로소 발견되었다고 한다. 고송은 푸른 우산처럼 가지를 한껏 옆으로 펼치고 있다.

“숲이 깊으면 새가 날아든다.” 누군가는 고송 기슭의 마을에 새가 유달리 많았으며 마을사람들이 새를 잡아 반찬거리로 소금에 절였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마을 특산인 ‘새절임’이라는 낱말은 나중에 ‘새절이’로 변음 되어 이 고장의 지명으로 고착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을에는 여태껏 ‘새절임’이라는 음식이 있은 적 없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새절이’가 실은 ‘새매’의 함경도 방언 ‘새저리’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새저리’는 매의 일종으로서 백로가 지난 8월 초부터 메추라기 따위를 잡는다. 후문이지만 이 마을에 최초로 정착한 주민들은 함경도에 본적을 두고 있었다. 황봉주 역시 함경도 경원 황 씨로 조부 때 두만강을 건너 이주를 했다고 한다. ‘새저리’가 정말로 시초의 함경도 이민들이 사용했던 방언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이다.

시초에 구경 누가 이렇게 ‘새저리’로 마을이름을 지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기실 ‘새저리’는 상촌이나 신룡 어느 한 마을에 특정된 이름이라고 하기 힘들다. 마을이 형성된 시간이 다르고 또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지만 신룡촌과 상촌은 단지 ‘진펄’을 사이에 두고 있던 가까운 이웃이기 때문이다. ‘진펄’은 습지와 물구덩이가 있는 땅이었는데 지금의 두 마을 사이에 있는 수십 평 부지의 광장자리에 있었다. 이 ‘진펄’이 반도의 '3.8'선처럼 군사분계선이라고 할지라도 땅 아닌 하늘이 무대인 ‘새저리’에게는 그게 날아 넘을 수 없는 경계가 될 리 만무하다.

그런데 진짜 반도의 군사분계선의 철조망처럼 울바자를 두른 마을이 있었다. 해란강 건너 남쪽 마을이 ‘배자마을’이라고 불렸던 것. ‘배자’는 함경도 방언으로 울타리를 이르는 말이다.

‘배자마을’은 광서 초년에 설립, 그 무렵 해란강과 부르하통하의 합수목에 수룡水龍이 있었다고 해서 나중에 하룡河龍이라는 마을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또 1955년 강남과 신룡 두 지명에서 각기 한 글자를 취하여 하룡이라는 지명이 나왔다는 설이 있다. 하룡은 한 마리의 큰 용처럼 나중에 주변의 모든 마을을 삼켜버려 하룡촌 하나에 귀속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하룡촌은 지금 크고 작은 촌민소조가 무려 16개나 된다.

공교롭게 한때 이 고장에 있었던 옛 마을들도 이 촌민소조의 숫자와 비슷하다. 1930년대 해란강 하류지역에는 수침동, 류정촌, 학교촌, 중개동, 하촌, 농골, 로지개팡, 계림 등 십여 개의 자연부락이 있었다. 이런 마을은 대개 해란강의 강기슭에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일명 해란구海蘭區로 불린다. 마을들은 나중에 소실되고 현재로서는 이름마저 현지의 지명지地名志에 남기지 않고 있다. 더구나 부르하통하와 해란강의 합수목 동쪽 골짜기에 있던 화련리는 1930년대 ‘해란강 대혈안大血案’의 중심이었지만 더는 마을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대혈안은 연길 일본영사관이 주도, 민간 자위단이 1931년 10월부터 1933년 2월까지 해란구 지역을 선후로 수십 번 토벌하고 반일인사와 민간인 1,700여명을 학살했다는 사건을 말한다.

1932년, 화련리의 반일지사 김학준이 사망 6일 전 이 혈안과 관련한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아내 김신숙은 그 유서를 비밀리에 보관하며 그로부터 14년만인 1946년 마을에 왔던 중공 연길현공작대에 교부, 이로써 대혈안의 진실이 비로소 판명되었다는 것이다. 뒤이어 연길시 서광장에서 열린 ‘해란강대혈안 청산대회’는 연변에서 일제 주구와 잔재를 청산하는 서막을 열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어느덧 노인들의 기억에 조각조각으로 간신히 남아있을 뿐이다. 학교촌이라는 마을이 있던 고장에 소학교가 사라진지 이슥하며 제일 안쪽에 있던 마을 계림鷄林 일대에는 이름처럼 닭의 수풀이 아닌 큰 골프장이 들어섰다.

정말이지 그 무슨 ‘새저리’가 날아와서 이 고장의 이름과 이야기를 죄다 어디론가 물어간 것 같다. 그때 그 마을은 인제는 동화 같은 옛말이었다.*

 

네,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 연길 동쪽의 마을 하룡촌의 지명 이야기었습니다.

마을 하나에 지명이 여럿이나 있었듯 역사 역시 많고 깊은 마을이었습니다.

[청취자의 편지 사연]

이 시간에는 한국 김연준 청취자님이 보낸 편지 사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2021년 새해의 첫 편지인데요, 청취자 여러 분 모두 축복 받은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2021년 새해를 시작하며 송 휘 아나운서께서 대독한 습근평 주석과 신해웅 중앙방송총국장의 신년사를 잘 청취하였습니다.

습근평 주석께서는 지난해를 돌아보며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을 희생하며 코로나 정복에 앞장선 평범한 영웅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자강불식의 민족정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샤오캉 사회를 건설하는데 역사적 성과를 거두고 탈빈곤으로 부터 완전히 벗어난 해로 더불어 다 같이 잘사는 목표를 향해 착실하게 나가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정의로운 길은 외롭지 않고 천하는 한 집안이라며 중국은 인류 공동체 건설을 위해 앞장서고 당 창건 100주년인 올해는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할 것을 다짐하면서 새해를 축복하며 신년사를 마무리 했습니다

신해웅 중앙방송총국장은 신축년 새해를 축복하며 지난해는 방송기획과 특별제작을 통해 잘못 알려진 코로나의 진실을 바로 잡고 5G와 AI 등을 활용해 상아 5호와 해저탐사 등을 성공적으로 생중계 했음를 자평했습니다.

진실은 언론사의 책임이라며 새해에도 국제 주요언론사로서 책임을 다 하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서 정의로운 목소리와 문명의 아름다움을 전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중국의 윤영학 선생님께서 박철원 회장님을 통해 새해 인사를 전해 주셨습니다.

윤영학 청취자님 내외분께서 질병치료에 고생이 많으신데 새해에는 건강에 차도가 있기를 기원드리며 박철원 회장님 내외분을 비롯한 중국의 CRI 청취자 여러분께서도 축복받는 2021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월 4일 김 연준

네, 지난 2020년은 코로나 사태로 평범하지 않은 한해였습니다. 김연준 청취자를 비롯해서 청취자 여러 분 모두 2021년 새해에 건강하고 만사 순조롭기를 바라겠습니다.

[퀴즈 한마당 코너]

MC: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먼저 지난달에 내드렸던 퀴즈의 답안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38년 6월, 한국 경상남도 합천군과 밀양군 사람들이 중국 안도현 명월구에 도착한 후 '어느 마을'에 정착했다고 하는데요, 지난 달 퀴즈는 이 마을의 이름이 무엇이였을까 하고 물었습니다.

지난달 퀴즈의 답안은 2020년 11월 5일자 방송된 '청취자의 벗'에 있는데요, 길림성 연변 안도의 지명 이야기 "남도 사람들의 외로운 섬"에 답안이 있습니다.

옛날 조선반도 남부의 이주민이 정착했던 마을의 이야기인데요, 그때 이민들이 자리 잡은 곳은 안도 명월구의 도안(島安)이라는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일찍 1881년경부터 인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전하는데요, 이 고장에서 제일 먼저 개발된 지역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마을은 장흥하 두 지류 사이의 언덕에 위치, 흡사 작은 섬을 방불케 하고 있었습니다. 원주민들은 평안한 삶을 기원해서 섬 도(島)와 편안할 안(安)을 합쳐 도안이라고 이름을 지어 부르고 있었습니다. 도안은 새 이민이 정착하면서 단번에 큰 마을로 덩치를 불렸다고 합니다.

네, 이달에도 지명과 관련한 퀴즈를 내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인 연길시의 북쪽 청차관(淸茶館)은 광서(光緖, 1875~1908) 초년에 형성되었다고 하는데요, 산동(山東)에서 이주한 중국인들이 최초로 부락을 이뤘던 오랜 마을입니다. 이름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맑은 찻물을 상기하게 되는데요, 과연 지명 청차관의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연길 북쪽의 지명 청차관은 그 뜻이 무엇이었을까요. ?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MC: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번,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

MC: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은옥(MC), 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취자의 벗]과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취자의 벗]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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