权香花
2021-03-05 18:52:57 출처:cri
편집:权香花

[청취자의 벗] 2021년 3월 4일 방송듣기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3월의 첫 번째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박은옥(MC)입니다.

--------------------------------------

1. 3월

네, 이달이 시작된 3월 1일은 황포군관학교를 중앙군사정치학교로 확장한 날입니다. 1926년 3월 1일, 황포육군군관학교는 정식으로 여 군관학교와 합병하여 중국 국민혁명군 중앙군사정치학교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황포군관학교를 학교 장소로 삼았습니다. 이날 중앙군사정치학교는 창립 행사를 가졌습니다.

3월 1일 이날은 또 한국의 국경절입니다. 1919년 3월 1일, 한국인들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해 365일 날마다 명절이 아니면 행사가 있는 날인 것 같습니다.

3월 1일은 국제 바다표범의 날이기도 합니다. 바다표범구조 기금회가 이날을 기념의 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라마다 바다표범을 기념하는 날이 약간씩 다릅니다. 미국에서 국제 바다표범의 날은 해마다 3월 22일이며 캐나다는 바다표범의 포획을 반대하는 날을 해마다 3월 15일로 정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청력 장애인은 장애인 총 숫자의 첫 자리를 차지한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중국 위생부와 교육부, 중국노령협회, 중국장애인협회 등 10개 부문은 해마다 3월 3일은 ‘전국에서 귀를 사랑하는 날‘로 정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인 3월 5일은 ‘뢰봉 따라배우기의 기념의 날’입니다. 1963년 3월 5일 모택동 주석이 친필로 “뢰봉동지를 따라배우자”라는 글을 썼습니다.

뢰봉은 중국인민해방군 전사입니다. 1962년 그는 22세의 나이로 순직했습니다. 뢰봉이 후세에 미친 제일 큰 영향은 뢰봉정신입니다. 뢰봉정신은 한마디로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신입니다. 뢰봉정신은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고정 간주 6")

2. 지명과 연변

이 시간에는 ‘지명으로 읽는 이민사’, ‘연변 100년 역사의 비밀이 풀린다’ 이런 제목으로 지명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의 마을 청산리의 지명 이야기입니다.

‘평양전투’가 벌어졌던 시골마을

지명지의 기록에 따르면 이 마을은 원래 ‘평양평平壤坪’이라고 불렸다고 전한다. 기실 마을은 앞뒤가 산에 꽉 막혀 있으며 평야라고 할 만한 큰 벌은 아니다. 광서(光緖, 1875~1908) 연간 평양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기왕 말이 났으니 말이지 ‘올방자’는 ‘책상다리’를 이르는 방언이다.

촌장 최경렬 씨는 평양마을의 태생이 아니었으나 역시 반도 북쪽의 말씨가 다분한 방언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는 1964년 가족을 따라 서쪽의 백리평百里坪에서 이 고장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백리평은 화룡 현성까지 백리길이 된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진짜 시내와 백리나 떨어진 심산벽지의 마을이었다. 예전에는 시골에서 모두 바퀴가 아닌 두발로 시내 행차를 했다고 한다. 와중에 동지섣달의 추위를 무릅쓰고 현성에 다녀오던 촌장이 귀가 길에서 동사하는 사고가 터졌다. 1955년경 백리평 남쪽의 석인촌石人村에서 벌어진 이 일은 지금도 현지에서 노인들의 화제에 자주 오르고 있었다.

그때 동사 사건의 주인공은 이곳에 들려서 저녁식사를 하고 밤길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의 수장으로 있는 최경렬 씨는 이런 비화秘話는 물론 시초의 마을이름인 ‘평양평’도 처음 듣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기억에는 언제인가 들었던 이야기가 몇 조각 남아있을 뿐이었다.

“옛날 주변의 산에 모두 소나무가 꽉 들어섰다고 해서 ‘청산리靑山里’라고 불렀다고 하던데요.”

아닌 게 아니라 청산리는 이름처럼 청청한 산에 병풍처럼 둘려 있다. 산 사이의 골짜기에는 또 쪽빛 같은 하늘을 비껴 담은 푸른 강이 흘러 지나고 있었다. 산에 무성한 소나무의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소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에 하늘의 달이 당금이라도 강물에 떨어질듯 흔들흔들 춤을 춘다.

그야말로 천상에서 ‘송풍나월松風羅月’의 그림이 문득 땅 위에 떨어져 내린 듯하다.

예전에 도성都城에서 살던 평양사람들이 넓은 벌을 버리고 오지의 이 산속에 이삿짐을 풀게 된 연유를 조금이라도 알 것 같다.

실제 맨 아래쪽의 송월촌松月村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지은 이름이었다. 원래 부근의 산에 소나무가 많다고 해서 ‘송림평松林坪’으로 불렸다. 1945년 후 나월평과 송림평을 합병하면서 ‘송월촌’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나월평羅月坪은 청산리 바로 동쪽에 위치하는데 역시 이 때문에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솔직히 누구라도 이 마을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노라면 부지중 옛 가요 “청산별곡”의 정취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그러고 보면 타향에서 서러움이 많았던 간민墾民들은 삶에 대한 애착과 꿈을 지명에 실어 내고 있는 것 같다.

어찌어찌하여 뒷북을 치는 바람에 청송이요, 명월이요 하는 운치 있는 글자를 모조리 빼앗긴 마을 하나는 푸른 강물을 이름자에 넣어 ‘녹수평綠水坪’이라고 작명했고 또 이 때문에 푸른 강물마저 잃어버린 마을 하나는 아예 나월평에서 불과 십리도 되지 않는 곳에 있다는 의미의 ‘십리평十里坪’이라고 이름을 달았다.

미구에 여기저기 산재한 마을들은 강박적으로 한곳에 집결된다. 일본은 1932년 3월 괴뢰 만주국을 세운 후 현지의 항일세력을 소멸하기 위해 치안숙정治安肅正의 조치를 내오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집단부락과 자위단이다. 그 무렵 화룡에는 청산리를 비롯하여 10여개의 집단부락이 생겨났으며 또 집단부락마다 무장자위단이 조직되었다고 한다.

청산리 집단부락의 무장자위단 단장은 김일노(金日怒, 1896~?)였는데 그는 또 청산리 경찰분주소警察分駐所 소장이기도 했다.

훗날 김일노는 화룡현 신선대(新選隊. 神仙隊)에 가입하여 부대장으로 있었다. 신선대는 연변 장백산 일대의 항일무장을 소멸하기 위해 세워진 친일 무장부대였다. 1940년, 김일노는 신선대를 거느리고 경찰토벌대의 선견대로 앞장을 섰다가 홍기하紅旗河에서 항일부대의 매복습격을 받는다. 홍기하는 청산리 북쪽의 증봉산甑峰山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두만강에 흘러드는 강이다. 증봉산은 그 모양새가 베개 같다고 해서 일명 베개봉산이라고 불린다. 김일노는 전투에서 돌격을 부르짖다가 총알이 벌린 입을 통해 목을 관통, 하마터면 저승으로 갈 뻔 한다. 이번 전투에서 화룡현 신선대는 전멸되다시피 했지만 요행 살아남은 김일노는 이른바 ‘영예의 상처’ 때문에 친일 주구로 세상에 더구나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정작 청산리라는 이름이 세상에 소문을 놓게 된 건 서쪽의 백운평白雲坪에서 벌어졌던 전투 때문이다. 백운평은 청산촌에서 골짜기를 따라 베개봉으로 7,8㎞ 올라가는 좁은 개활지에 있던 마을이다. 1920년 10월, 일본군은 시름을 놓고 골짜기를 들어가다가 항일군의 매복에 들어 많은 사상자를 내게 된다.

그때 일본군은 참패를 당한 분풀이를 부근의 백운평 사람들에게 했다고 한다. 그들은 여자들을 밖으로 나오게 한 후 남자들을 노소 불문하고 집안에 가둬놓고 불을 질렀다. 집에서 누군가 뛰쳐나오면 총을 쏘아 눕혔다.

20여 가구가 살고 있던 백운평은 드디어 이름자에 박힌 흰 구름처럼 종적을 감춘다. 뒤이어 부근에 있던 북골北溝과 쟈피거우夾皮溝 등 마을도 사라졌다. 그 후 골짜기 어구에는 집단부락과 더불어 느닷없이 청산리라는 새로운 지명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백운평에서 벌어진 전투는‘청산리전투’라는 이름으로 집단기억에 자리하게 된다.

도성 ‘평양’도 무명의 나무처럼 이 ‘청산’에 형적 없이 잠겨버렸다.

최경렬 씨는 이 고장에 부락이 적지 않았다고 하면서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았다. “우리 마을의 남쪽에는 수개골이 있었고 서쪽에는 또 왕개골이 있었지요.”

수개골隋家溝은 수隋 씨가 살던 동네라는 의미이고 왕개골王家溝은 왕王 씨가 살던 동네라는 의미라고 한다. 예전에 청산골靑山溝에는 이런 자연부락이 10여개나 되었다고 한다. 청산골은 송월평부터 청산리까지 내처 수십 리를 이어지는 큰 골짜기를 이르는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산에는 나무가 듬성듬성해졌고, 뒤미처 마을도 눈자리 나게 줄어들었다.

예전에 청산리에는 중학교까지 있었다고 한다. 마을 한복판에 있었던 소학교에는 업간 체조시간이 되면 운동장에 아이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그러나 중학교는 지난 세기 60년대 폐교되었고 소학교는 10여 년 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청산리는 전성기에 아홉 개 촌민소조가 있었으며 인가가 3백 가구를 넘었다. 개혁과 개방 초기만 해도 200여 가구에 달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인구가 얼마 남지 않는다. 그나마 대부분 노인과 병약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정말이지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대여섯 가구 밖에 살지 않았던 시초의 부락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나 싶었다.

흰 구름 아래 소나무가 푸르던 그 골짜기에는 분명 사람들이 살았었다. 생로병사의 희노애락이 하늘의 구름처럼 일어나 산골짜기의 물처럼 흘렀던 것이다.

어쨌거나 지명 ‘평양’처럼 천리 밖의 먼 고장에 있는 옛 이야기였다.*

네,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의 마을 청산리의 지명 이야기었습니다.

마을은 이름처럼 청청한 산에 병풍처럼 둘린 듯합니다. 마치 천상에서 ‘송풍나월松風羅月’의 그림이 땅 위에 지명으로 떨어져 내린 듯합니다.

 

[청취자 내신]

이 시간에는 먼저 한국의 김연준 청취자의 편지 사연입니다. 김연준 청취자는 저희 방송국과 오랜 인연을 갖고 있는데요, 이번에 봄날에 즈음하여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네, 편지 사연을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노오란 산수유를 시작으로 백목련도 조금씩 꽃망울이 올라와 봄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연일 300명대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추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부터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는데 국내 제약사가 계약에 의해 국내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정부가 구매하여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입소자와 종사자를 대상으로 접종을 실시하고 이어서 토요일부터는 수입한 제품을 코로나 치료시설 종사자와 의료진에게 접종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9월말 까지 전국민 70% 이상 접종을 마쳐 연말에는 일상샐활로 회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CRI 홈페이지를 통해 중국 중앙방송총국과 한국 공영방송인 KBS간 협력협정을 체결한 내용을 잘 봤습니다.

뉴스와 콘텐츠, 미디어기술, 산업 경영 등 다방면에서 협력과 인문교류를 촉진해 우의와 신뢰를 증진하고 중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한 차원 향상시키는 역할을 방송이 함으로써 한중문화교류의 해를 내실있게 만들 것 입니다.

최근 미국 유명대학 교수가 위안부를 부정하는 논문을 발표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해당 교수는 일본정부와 기업에 매수된 자로 일본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논문을 지속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미국 내 양심 있는 지식인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 다행이지만 위안부로 끌려가 치욕을 당한 당사자가 살아 증언을 함에도 일제 시대 저지른 만행에 대해 반성은 커녕 부정하고 거짓으로 역사를 치장하고 있습니다.

한중 양국 정부와 사회단체가 공동으로 대응해 일본의 잘못을 지적하고 세계인이 올바른 역사를 알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네,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는 소식 반가웠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영국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이 백신 접종에 들어가면서 코로나19 종식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는데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잡아서 우리 모두의 일상이 회복되길 바라겠습니다.

얼마 전 중공 만주성 위원회 옛터 기념관이 중공 만주성 위원회의 1백명 영웅들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홍색 3분' 시리즈의 미니 영상물을 출범했다.

'홍색 3분'은 중공 만주성 위원회 옛터 기념관이 알심들여 구축한 시리즈의 미니 영상물프로젝트이다.

현재 이 시리즈 영상물은 '항일민족 여성 영웅 조일만', '동북항일연군의 창시자 노등현', '쇠소리가 쟁쟁 울리는 영웅 조상지 장군' 등을 내놓았다. 이 시리즈 영상물은 연이어 100기를 내놓고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한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하여 각 지역에서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길림성 연길시 북산가두에서는 퇴역군인 좌담회가 있었다고 연길의 이성복 청취자가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관련 소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길림성 연길시 북산가두에는 공화국 창건을 전후한 퇴역군인이 도합  3018명있다 . 이날  좌담회는 가두 판사처 리금자 부주임의 주재로 퇴역군인들은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서로 교류하는 등 열렬하게 진행되였다 . 퇴역군인들은 우리는 부족한것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당과 정부는 당장,학습자료를 공급하고 생활상에서는 보조금을 주고 있다면서 이렇게 정치와 생활에서 으뜸가는 혜택을 받고 있으니 미안하고 감사할 뿐이라고 표했다 . 로병 주성귀로인은 "혁명선배들은 목숨으로 나라를 지켰는데 살아있는 저는 그들의 정신을 본받아 끝까지 당과 인민을 위하여 충성하겠습니다"라고 표했다.  로병들은  노래 '영웅찬가'를 우렁차게 부르면서 좌담회를 마감했다. ”

[퀴즈 한마당 코너]

MC: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먼저 지난 달의 퀴즈 답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 연길이 서북쪽에 석인구라는 마을이 있는데요, 석인구는 한자 그대로 뜻풀이를 하면 돌사람의골짜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석인구는 과연 어떻게 생긴 이름일까요?

네, 그곳의 무덤 앞에는 파수꾼 모양으로 돌사람이 있었다.

돌사람은 석관과 함께 구전되면서 언제인가부터 더는 무덤 앞이 아닌 석관에 들어 있었던 것으로 와전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돌사람 때문에 석인구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네, 이달에도 지명과 관련한 퀴즈를 내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에는 광서 연간에 간민들이 세운 복동(福洞)이라는 마을이 있는데요, 복동은 한자 그대로 뜻풀이를 하면 복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복동은 과연 어떻게 생긴 이름일까요?

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지명 복동은 어떻게 생긴 이름일까요?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MC: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번,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

MC: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은옥(MC), 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취자의 벗]과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취자의 벗]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공유하기:

댓글달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