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소개
게시판
조선어부 소개
 
cri korean.cri.cn/
석보채: 기이한 건물의 마을
2017-01-10 16:51:15 cri

개관:

"세계적으로 8대 기이한 건물"에 속하는 석보채(石寶寨)는 강기슭에 솟은 옥인산(玉印山)의 암벽 사이에 축조되었다. 홀로 우뚝 솟은 바위산은 모양이 옥도장 같기도 하고 여와(女娲)가 갈라진 하늘의 틈을 메우고 남긴 돌 같다고 해서 석보(石寶)라고도 한다.

명(明)나라 후반에 무릉왕(武陵王)으로 자처하며 봉기를 일으킨 담굉(譚宏)이 이곳에 산채를 지으면서 석보채로 부르게 되었다. 옥인산을 뒤에 하고 축조된 산채는 날아갈듯한 처마를 떠인 12층 구조에 56m 높이의 천두식 목조 건물이다.

역사:

석보채는 명(明)나라 때인 1572년-1619년사이에 축조되었고 청(淸)나라 강희(康熙)제와 건륭(乾隆)제 때 두 번에 걸쳐 보수했다. 처음에는 절벽에 쇠줄로 사다리를 만들고 그 사다리를 타고 산정에 올라가 산정에 절을 지었다.

그 뒤에 청나라 때 석보채를 보수하면서 산체를 따라 구중천(九重天)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9층 누각을 지어 사람들은 쇠줄 사다리 대신 건물의 계단을 통해 쉽게 산정에 올랐다.

1956년 석보채를 개축하면서 9층 건물위에 3층을 신축하여 오늘날의 12층 건물이 되었고 그로부터 석보채는 저 멀리 장강의 경치를 구경하는 전망대가 되었다.

주요명소:

험준한 산세를 따라 축조한 석보채는 산채문과 산채, 산채 정상의 고찰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50여미터의 건물은 사각형에 한 면은 뒤에 바위산을 업고 삼면만 드러난다.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지은 이 목조건물은 지난 300여년 동안 드팀 없이 이 한 자리를 지켜온다. 3층으로 된 산정의 사찰 천자전(天子殿)에는 현지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문화재와 그림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앞쪽의 산채문에 이르면 산채문 상단에 "석보채(石寶寨)"라는 금박칠을 한 큼직한 세 글자가 새겨져 있고 구리로 주조한 사자 두 마리가 양쪽에 지켜서 있다.

앞산채문을 들어서면 3m 너비의 돌길이 산채를 향해 뻗어 있고 양쪽에 정자와 누각이 아담한 가든이 조성되어 있다. 거기에서 더 앞쪽으로 가면 아아한 절벽에 기대어 선 석보채가 보인다.

돌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첨지재전(瞻之在前)"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진 패방이 나타나고 그 패방을 지나면 어지를 둘러싼 다섯마리의 용과 이 바다에서 장난치는 꼬마선인, 장수와 길함을 나타내는 정교한 부조가 새겨진 산채문이 보인다.

벽돌로 된 산채문은 높이가 6m이고 상단에 "소봉래(小蓬萊)"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전한데 의하면 산동(山東)의 봉래섬에 살던 선인 하선고(何仙姑)가 이 곳에 이르러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되어 며칠 머물었다고 해서 소봉래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층수가 가장 낳은 천두식 목조건물인 석보채는 산채문밖에 서서 올려다 보면 혼연일체를 이룬 바위산과 누각, 사찰이 웅장하고 첩첩하게 느껴진다.

누각을 따라 석보채 정상에 올라서면 발아래로 세차게 흐르는 장강이 한 눈에 보여 장관이다. 장강댐의 수위가 올라가면서 석보채 산자락의 강물 수위도 올라가서 석보채는 강물속에 솟은 아담한 분재를 방불케 한다.

키워드:

고건물, 역사문화

위치와 교통:

석보채는 중경(重慶, Chongqing)시 충(忠, Zhong)현, 장강의 북쪽 기슭, 충현 도심에서 45km 거리에 위치, 다양한 교통편을 이용해 중경에 이른 다음 중경 조천문(朝天門) 터미널에서 충현행 시외버스를 이용하거나 조천문 부두에서 선박을 이용한다.

계절:

1년 사계절

설명:

석보채를 보는 데는 다양한 시각에서 건물을 관상하는 것이 좋다. 멀리서 건물의 외부를 보고 가까이 다가가서 건물의 하단에서 쳐다보며 이어 건물의 계단을 통해 건물의 정상에 올라가면서 체험한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관련기사
중국각지우편번호중국각지전화코드편의전화번호호텔
China Radio International.CRI. All Rights Reserved.
16A Shijingshan Road, Beijing, 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