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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란: 사막에 묻힌 왕국
2018-01-10 09:02:17 cri

(사진설명: 아름다운 루란 유적지)

개관:

고대 신강의 문명을 상징하는 루란(樓兰) 유적지는 "실크로드"에서 동서간 무역의 중계소로 동서양간 물질문화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발휘했다. 과거 중국의 실크와 엽차, 서역의 말과 포도, 보석이 바로 루란에서 거래되었고 오고 가던 카라반들도 이곳 루란의 오아시스에서 쉬어갔다.

하지만 오늘날 뤄부호가 마르고 기원전 176년에 건국해 기원 630년까지 이어진 왕국 루란은 모래 속으로 사라져 터만 남아 네모난 성터에 나뭇가지에 흙을 발라 쌓은 성터와 그 속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루란의 어제를 보여준다.

(사진설명: 루란 유적지의 벽화)

역사:

뤄부호와 루란 유적지에서 발굴된 돌 도끼와 돌 칼, 옥 도끼, 옥패 등 문화재에 의하면 이 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살았고 지금으로부터 6천년전의 신석기 시대 유물이 가장 많이 발굴되었다.

기원전 176년부터 기원 630년까지 지속된 루란은 서한(西漢)때 서북지역 36개 왕국의 하나였고 고대 실크로드를 따라 양관(陽關)을 벗어난 후 도착하는 첫 역참이었다.

번성하던 루란이 4세기부터 사서에 기록되지도 않고 이름도 없이 갑자가 세상에서 사라졌고 7세기에 삼장법사가 서천에 가서 불교 경전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성곽은 여전하나 인적은 없는" 루란을 보면서 루란의 신비로움이 오늘까지 이어진다.

루란이 사라진 것은 물 부족 때문이라고 하는 설도 있고 전염병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아직까지 답을 찾지 못하고 한 때 눈부신 모습을 자랑하던 왕국이 오늘날 사막 속에 묻혀 미지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사진설명: 루란 왕국의 모형)

주요명소:

뤄부호 서쪽 기슭의 야르당 지형에 위치한 루란 유적지는 거의 모두가 모래에 묻혀 있다. 루란 유적지는 성곽과 절 두 개, 묘지 하나로 구성되어 있고 성곽과 절의 담벽 근처에 크고 깊은 웅덩이가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루란유적지는 불규칙적으로 네모난데 동쪽의 성곽길이는 333m, 남쪽의 성곽의 길이는 329m, 서쪽과 북쪽의 성곽길이는 모두 327m이다. 남쪽 성곽과 북쪽 성곽 가운데 빈 공간이 남아 있어 성문으로 추정되며 루란 성안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성의 동쪽에 위치한 10.4m 높이의 불탑이다.

(사진설명: 루란 유적지 일각)

나무에 흙을 섞어 쌓은 탑은 사면의 길이가 19.5m에 달하는 정방형 구조이고 탑의 남쪽에는 넓은 면적의 건물유적지가 펼쳐져 있으며 쌓여 있는 목재는 모두 가공한 흔적을 보인다.

성의 북서쪽에서 5km 거리에는 점토와 나무를 섞어서 축조한 12m 높이의 봉화대가 남아 있다. 성의 남쪽에는 목조건물의 유적지가 남아 있고 건물에서 나무에 쓴 편지와 동전, 실크와 모직물, 생활용구 등이 발견되었다.

루란 성을 가로 지른 운하 기슭에 규모가 큰 세 채의 건물 유적이 있는데 그 건물에서 많은 서류가 발견되어 관아유적지임을 알 수 있다. 키 높은 흙벽이 세워진 이 삼간방(三間房) 중 가운데 방이 상대적으로 크고 양쪽의 방이 작으며 건물 앞에는 구멍이 뚫린 말뚝이 대량으로 산재해 있다.

(사진설명: 흙으로 쌓은 벽)

관아의 서쪽에는 관리의 저택인 듯한 정원이 있고 남쪽에는 작은 나지막한 일반 가옥 유적이 펼쳐져 있는데 건물의 규모가 어렴풋이 보이고 벽을 쌓는데 사용한 나무들이 오늘날도 그 자리를 지킨다.

모든 건물은 높은 단위에 세워지고 저지에는 검붉은 도자기 조각이 쌓여 한 때 눈부신 번영을 구가했던 루란의 어제를 보여주는 듯 하다. 관아의 북쪽에는 야르당의 지형을 방불케 하는 3m 높이의 흙 둔덕이 있다.

루란 근처의 작은 산 언덕에서는 미라와 해골, 모직물이 발견된 무덤도 발견되었다. 그 중 배 모양의 관에서 완전하게 보존된 여인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관을 열자 원단이 바람에 가루로 사라지고 두 눈을 감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묘령의 처녀가 잠들어 있는 듯한 모습이 드러났다.

(사진설명: 루란 공주의 미라)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눈이 크며 콧대가 상큼하며 턱이 살짝 들린 이 미라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작은 몸집을 자랑하여 "루란 공주", 혹은 "루란 미인"으로 불린다.

"루란 공주"는 양피 상의를 입고 모직 담요를 덮었으며 역시 양피 바지를 입고 발에는 모피신발을 신고 머리에 깃털을 꽂은 펠트 모자를 썼다. 양피에 대한 검증을 통해 이 미라는 3800년전의 사체임이 증명되었다.

루란에서는 10기의 고대 무덤이 모여 있는 태양묘(太陽墓)도 발견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38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태양묘는 무덤마다 묘혈을 중심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굵은 말뚝을 7겹으로 박아 태양의 빛이 사방으로 비쳐 나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진설명: 루란 유적지에서 출토된 문물)

이 곳에서는 또한 돌 공과 수제 도자기 조각, 청동기 조각, 짐승 뼈를 비롯한 가공 유물도 출토되었고 인도의 문화를 보여주는 날개 달린 천사 벽화와 티베트문으로 나무에 씌어진8,9세기의 토번국 시기 편지 등 루란왕국의 흥망성쇄를 밝히는 중요한 유적이 발견되었다.

고고학 연구에 의하면 신석기 시대 후반과 청동시대, 한나라 전까지 루란은 물이 맑고 풀이 푸른 살기 좋은 곳이었다. 루란은 한 때 대외개방 수준이 가장 높은 중국의 상업도시였고 루란 사람들은 밀을 재배하고 소와 양을 키웠다.

(사진설명: 루란 박물관 건물앞에서)

키워드:

고건물, 탐험

위치와 교통:

루란유적지는 신강(新疆, Xinjiang) 바인궈러(巴音郭楞, Bayinguole) 몽골족 자치주 약강(若羌, Ruoqiang)현, 약강현에서 300km, 신강 성도 우루무치(烏魯木齊, Wulumuqi)시에서 900km 거리에 위치한다.

루란유적지는 국가급 문화재 보호구역에 속하기 때문에 자체로 하는 관광이 불가능하고 현지의 여행사나 문화재 보호업체에 연락해서 단체로만 관광이 가능하다.

(사진설명: 뤄부호의 염호)

계절:

1년 4계절

설명:

루란왕국을 가장 처음에 발견한 사람은 스웨덴 탐험가 스벤 헤딘이다. 1900년 3월 헤딘의 탐험대가 뤄부호의 황야를 횡단하다가 어느 날 삽을 그 전날 야영지에 버리고 출발했다.

헤딘은 자신의 보좌를 시켜 야영지에 돌아가 삽을 찾게 했고 그 보좌는 삽을 찾아온 동시에 목각조각을 함께 가져왔다. 그 조각을 본 헤딘은 그 곳이 도시의 폐허임을 알고 1901년 1월부터 3월까지 사이에 발굴을 시작해 루란 유적을 발견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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