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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능원: 명나라 유적
2018-05-23 11:49:09 cri

(사진설명: 아름다운 성곽)

개관:

명(明)나라 건국 초반의 도읍지인 남경에는 명나라 유적지가 아주 많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명소가 바로 명나라 때 쌓은 성곽과 명나라 개국황제 주원장(朱元璋)이 묻힌 명효릉(明孝陵)이다.

남경에는 명나라 때 쌓은 궁성(宮城)과 황성(皇城), 경성(京城), 외곽성(外郭城) 등 네 겹의 성이 있었으며 현재까지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성은 25.1km 길이의 경성 성곽이다.

산 자락과 물가에 축조된 남경의 명나라 성곽은 중국의 예(禮)와 교(敎) 및 자연과의 접목을 가장 잘 보여주며 세계적으로 길이가 가장 길고 규모가 가장 크며 기존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한 고대의 성곽이다.

(사진설명: 명효릉의 일각)

명나라 개국황제 주원장과 그의 황후가 합장된 명효릉은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제왕의 무덤이다. 명나라 초반의 건축 및 석각 예술의 최고를 자랑하는 명효릉은 그 뒤에 명과 청 두 왕조의 500여년에 걸쳐 20여기의 제왕의 황릉 축조에 영향을 주었다.

베이징(北京)과 호북(湖北), 요녕(遼寧), 하북(河北) 등 지에 위치한 명나라와 청나라의 황제릉은 모두 남경의 이 명효릉을 본 따서 축조되었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성곽)

역사:

남경의 명나라 성곽은 1366년에 새로운 황궁 건설과 함께 공사를 시작했고 이듬해 1기 공사를 마쳤으며 1369년에 성곽 중심의 2기 공사를 시작하고 1386년에 3기 공사를 시작해 27년이 지난 뒤인 1393년에 황궁과 도읍, 그리고 네 겹의 성곽공사를 전부 완공했다.

명나라 성곽은 1956년에 강소성 문화재 보호업체로 선정, 1988년에 전국 중점 문화재 보호업체에 선정, 2012년 중국 세계문화유산 후보지에 등재되었다.

명효릉은 1381년에 축조를 시작해 25년 뒤인 1405년에 공사를 마감했다. 1961년 전국 중점 문화재 보호업체에 선정, 2003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2006년 국립 중점 풍경명소와 국립 5A급 관광지로 선정되었다.

(사진설명: 명나라 성곽의 일각)

주요명소:

제일 안쪽의 궁성으로부터 시작해 순서대로 궁성(宮城)과 황성(皇城), 경성(京城), 외곽성(外郭城) 네 겹으로 된 성곽 중 경성 성곽은 기존 도읍 성곽의 모난 양식을 버리고 육조(六朝)의 성곽을 기반으로 남경의 산발과 하천을 따라 불규칙적으로 축조했다.

수 백 년의 세월 속에서 궁성과 황성, 외곽성 세 겹의 성곽은 모두 사라지고 높이 쌓아 올린 경성 성곽만이 남아 소리 없이 남경의 어제와 오늘을 지켜본다.

(사진설명: 성곽의 일각)

경성 성곽은 남쪽으로 진회하(秦淮河)를 자연적인 해자로 삼고 동쪽에는 종산(鍾山), 북쪽에는 후호(后湖)를 병풍으로 삼으며 서쪽의 구릉을 도시에 끌어들여 성을 방어능력을 갖춘 입체 군사요새로 만들었다.

경성 성곽은 구불구불 35.3km나 뻗어 있어 현재까지 남아 있는 중국의 성곽 중 가장 긴 성곽인 동시에 세계적으로도 최장의 성곽이다. 도읍 외곽을 둘러싼 외곽성은 더욱 길어서 60km에 달하고 역시 세계 최장을 자랑한다.

경성 성곽에는 도합 13개의 성문을 두었고 성문 마다 모두 제일 바깥쪽에 큰 규모의 적루(敵樓, 적의 정세를 살피기 위한 망루)를 세웠으며 그 뒤에 철판을 붙인 두 겹의 나무문을 맞추었다.

(사진설명: 성곽과 도시)

경성 성곽의 성문은 대칭을 이루지 않고 성곽의 모양에 따라 최적의 위치에 두었으며 안팎이 다른 옹성과 옹성의 크기, 모양도 성문마다 서로 다르게 설계되어 있다.

성곽 동쪽에 조양문(朝陽門)을 두고 남쪽에 취보(聚寶)문과 통제(通濟)문, 정양(正陽)문 세 성문을 두었으며 서쪽에 삼산(三山)문과 석성(石城)문, 청량(淸凉)문, 보회(寶淮)문, 의봉(儀鳳)문 등 다섯 성문을 내고 북쪽에 태평(太平)문과 신책(神策)문, 금천(金川)문, 종부(鍾阜)문 등 네 성문을 냈다.

성곽의 정문인 정양문은 안팎으로 다른 복합 옹성을 두었고 13개의 성문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통제문은 구조가 아주 복잡한 물고기형의 옹성을 거느린다.

(사진설명: 성곽과 해자의 야경)

통제문의 성문루에는 말이 성곽으로 오르내리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보도 등 두 갈래가 있으며 세 개의 옹성과 네 겹의 성문은 모두 돌로 쌓았다. 규모가 통제문 버금으로 가는 취보문은 중화문(中華門)이라고도 하는데 이 성문의 문루는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세계적으로 가장 잘 보존되고 구조가 가장 복잡한 옹성을 거느린다.

동쪽을 향한 종부문과 의봉문은 성문 사이의 거리가 가장 짧으며 두 성문의 명칭은 상서로운 용과 봉황에서 기원한다. 성밖에 금천하를 가까이 한 금천문은 해자와 금천하를 통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신책문은 13 성문 중 유일하게 개구부를 두 개 거느린 성문이고 성문과 마주하지 않은 옹성을 둔 성문으로 성문의 구조가 가장 독특하다.

(사진설명: 성곽과 해자)

남경의 명나라 성곽은 성의 바깥에 해자를 거느린다. 남경을 흐르는 진회하와 청계(淸溪), 금천하, 그리고 현무호(玄武湖)의 물을 취해 성밖에 물길을 파서 해자로 사용했다.

성밖에서 바라보면 높게 쌓은 성곽이 해자의 물에 거꾸로 비껴 보기만 해도 다가서기가 저어된다. 해자의 길이는 31m를 넘고 최대의 너비는 334m, 가장 좁은 곳은 9m이다.

성을 둘러 싼 해자가 있기 때문에 성문이 있는 곳마다 해자 위에 다리가 축조되어 조화를 이룬다. 그 중 가장 유명한 다리는 남경의 관문으로 인정되는 상방교(上方橋)이다.

(사진설명: 명효릉의 일각)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위치한 명효릉은 엄청난 규모와 엄밀한 구도를 자랑한다. 효릉은 입구에서 묘실까지의 거리가 2.62km에 달하고 묘실을 둘러 싼 붉은 성의 둘레는 2.25km이다.

600여년의 세월 속에서 효릉의 목조건물은 사라졌지만 능의 구도는 여전히 그대로 보존되어 웅장함을 자랑하고 도굴당하지도 않고 발굴되지도 않은 묘실 지하궁전은 기존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다.

효릉은 하마방(下馬坊)에서 효릉 정문까지의 신도(神道)와 정문에서 보성(寶城)과 명루(明樓)를 거쳐 숭구(崇丘)에 이르는 주요 부분으로 분류된다.

(사진설명: 명효릉의 일각)

명효릉에 들어서면 먼저 하마방이 맞이한다. 7.85m 높이의 하마방은 돌로 쌓은 패방이고 모든 관원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자가 새겨져 과거 이 곳에 이른 모든 사람들은 명의 개국황제 주원장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 말에서 내렸다.

하마방에서 36m 떨어진 곳에는 명 나라 때인 1531년에 세운 신렬산비(神烈山碑)가 있다. 원래는 정자도 있었으나 지금은 4기의 비석만 남아 있고 비석에는 효릉을 배알할 때의 금기사항이 적혀 있다.

하마방에서 750m 떨어진 곳에는 돌로 쌓은 벽만 남은 대금문(大金門)이 있고 그 뒤에 1413년에 주원장의 공덕을 기록한 비석과 정자 신공성덕비(神功聖德碑)가 세워져 있다.

(사진설명: 명효릉의 비석)

원래는 비석을 둘러싸고 벽돌을 쌓아 모난 정자를 세웠는데 현재는 정자의 지붕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네 벽과 외벽마다 만들어진 네 개의 홍예문만 남아 정자라기보다는 성을 방불케 한다.

다시 100m를 더 가면 명효릉의 신도가 펼쳐지는데 이 곳의 신도는 곧게 뻗은 다른 황릉의 신도와 달리 지세를 따라 구불구불하게 펼쳐지고 코너마다 석상을 세워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신도가 끝나는 곳에 기둥 6개가 남은 령성문(欞星門)이 있고 그 뒤에 금수교(金水橋)가 조화를 이루며 금수교를 건너면 효릉의 주요구역에 들어서게 된다.

(사진설명: 명효릉의 건물)

효릉의 정문은 명효릉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진 문무방문(文武方問)이다. 1999년에 명나라 때의 모습으로 복원한 문은 노란 기와에 붉은 칠을 한 문, 붉은 담벽을 하고 있다.

정문 뒤에 위치한 비전(碑殿)에는 키 높은 비석 5기가 세워져 있고 그 중에는 청나라 건륭제가 이 곳에 이르러 어필로 제문이 새겨진 비석도 포함되어 있다.

비전 뒤에 있는 향전(享殿)에 남아 있는 한백옥 건물의 기초와 그 위의 돌기둥 64개, 부조가 새겨진 담 6개는 명나라 유물이고 건물은 청나라 때인 1873년에 개축한 것이다.

(사진설명: 방성의 일각)

비전 뒤에 축조된 방성(方城)은 돌을 쌓아 지은 건물이고 동서 길이가 72.26m, 남북 너비 30.94m, 높이 16.25m에 달한다. 성의 중앙에 난 홍예문에 들어서서 54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명루(明樓)에 이른다.

방성위에 세워진 명루는 이중으로 된 지붕에 노란 유약기와를 얹었으며 건물의 길이는 39.45m 너비는 18.47m나 된다. 명성의 북쪽에 바로 주원장과 황후가 묻힌 묘실 보성(寶城)이 자리한다.

산세를 따라 둥글게 조성한 보성은 하단은 돌로 쌓고 상단은 벽돌로 축조했다. 지름 400m의 보성 안에 봉긋하게 조성된 지하 묘실에 바로 주원장과 황후가 잠들어 있는 것이다.

(사진설명: 명효릉의 금수교)

무덤의 특수한 도난방지 조치와 역사적인 원인, 지리적 위치 등 다양한 원인으로 명효릉의 묘실인 지하궁전은 현재까지 한 번도 도굴된 적이 없이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탐사에 의하면 다른 황릉은 위에서 아래로 깊은 구덩이를 파고 다시 봉하는데 명효릉은 바위산을 가로 파고 들어가 내부에서 지하궁전을 만들었기 때문에 유난히 든든해서 폭발물이 없는 상황에서는 도굴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폭발물을 가진 군대가 도굴을 기획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명효릉은 그런 도적의 목표물이 되지 않았고 청나라가 강남에서 청왕조 반대 사조를 누르기 위해 명효릉을 보호했고 청나라 황제도 강남에 이를 때마다 효릉을 배알했다.

또 하나는 명효릉이 남경과 너무 가까워 조금만 수상한 기미가 느껴지면 남경에서 금방 알 수 있어서 도굴을 계속할 수 없었던 것도 명효릉이 지금까지 도굴당하지 않은 원인의 하나이다.

(사진설명: 성과 해자와 도시)

키워드:

역사문화, 고건물, 풍경

위치와 교통:

명 성곽은 강소(江蘇, Jiangsu)성 남경(南京, Nanjing)시에 위치, 길이가 길기 때문에 사전에 정한 구간이나 장소에 따라 다양한 교통편을 이용한다.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해 중화문역에서 하차하거나 중화문역을 경유하는 버스를 이용한다.

명효릉은 남경시 현무(玄武, Xuunwu)구 자금산(紫金山) 남쪽 기슭에 위치, 남경 도심에서 3호선과 20호선, 202호선 등 버스를 이용하거나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해 하마방역에서 하차한다.

(사진설명: 성곽에 오른 시민들)

계절:

꽃피는 봄과 단풍의 가을

설명:

남경의 명나라 성곽은 구간별로 성곽 위에 올라 갈 수 있게 해서 몇 몇 코스 중 임의로 선택해서 성곽에 올라 남경을 내려다 보거나 성을 거닐며 어제를 느껴볼 수도 있다.

그 중 한 구간은 신책문에서 태평문까지의 5km 구간이다. 자연경치가 아름다운 이 구간에서는 현무호와 자금산, 구화산(九華山), 계명사(鷄鳴寺) 등을 볼 수 있다.

중산문에서 자금로까지의 구간은 월아호(月牙湖)를 볼 수 있고 정회문에서 의봉문까지의 구간은 산마루에 축조된 성곽이며 이 곳에서는 해자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성곽에 오르려면 구간별로 입장권이 구입해야 하는데 성곽에 오르지 않더라도 거의 모든 성곽의 안팎에 그린 벨트가 조성되어 성곽을 끼로 산책하며 무료로 성곽을 가까이 할 수도 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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