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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사: 천년의 종소리
2018-05-30 15:45:44 cri

(사진설명: 아름다운 한산사)

개관:

한산사(寒山寺)와 풍교고진(枫橋古鎭)은 은은한 종소리와 나그네의 쓸쓸한 심경을 잘 보여준 1200여 년 전 당(唐) 나라 대 시인 장계(張繼)의 유명한 시 <풍교야박(枫橋夜泊)>으로 인해 더욱 유명하다.

한산사는 절이 세워져서 천 여 년 동안 수차에 걸쳐 화재에 무너졌다가 다시 복구되면서 오늘날까지 그 자리를 지켜오고 오늘날 건물은 청(淸)나라 때 건물이다.

한산사와 이웃한 풍교고진은 운하와 풍강(枫江)의 합수목에 위치해 수상 도시의 운치를 자랑한다. 하얀 담벽에 검정 기와, 돌을 깐 길, 높고 낮게 줄지은 소박한 고건물의 풍교고진은 오늘날 관광과 쇼핑, 레저의 장소로 부상했다.

고찰인 한산사와 오래된 다리 풍강고교(枫江古橋), 고대의 관문 철령고관(鐵鈴古關), 옛 도시 풍교고진, 고대의 운하 등 다섯 가지 옛날 볼거리를 모아 풍교명소를 형성했다.

(사진설명: 한산사의 야경)

역사:

당나라 때인 627년 한산(寒山) 스님이 소주에 자리를 잡았고 700년에 유명한 선사(禪師)인 희천(希遷) 대사가 이 곳에 절을 지었으며 1057년 송(宋) 나라 때 장계의 시를 비석에 새겼다.

1368년부터 1398년까지 한산사는 산하에 절 3개와 암자 4개를 거느렸으나 그 뒤에 점점 몰락했고 일본군이 소주를 강점한 동안에는 일본군의 마구간으로 사용되었다.

1949년 중국 건국 후 한산사는 사원의 기능을 회복, 1979년 제1회 새해 맞이 타종 행사를 가졌으며 대 규모 복구공사를 통해 많은 명소를 복원했다.

1986년, 천년의 사찰 한산사와 운하 기슭의 풍교고진을 중심으로 하고 명(明)나라 때 왜적에 맞서 싸운 유적지 철령고관, 장계의 시에 나오는 고대의 석교 풍교(枫橋)를 묶어서 관광지로 개발했다.

(사진설명: '풍교야박' 시비)

주요명소:

한산사와 풍교고진은 천 여 년 전 당나라 시인 장계가 <풍교야박>을 쓰면서 널리 이름을 날렸다. 운하와 관도(官道)가 경유하는 이 곳은 과거 교통의 중심지였고 남북을 오가는 선박들이 밤이 되면 물길을 봉하면서 이 곳에 닻을 내렸고 그래서 운하에 축조된 석교는 봉교(封橋)라고 불렀다.

그 뒤에 장계가 이 곳에 이르러 한산사의 아늑한 분위기와 은은한 종소리, 나그네의 쓸쓸한 심경을 잘 보여준 명시를 쓰면서 봉할 봉(封)자를 단풍 풍(枫)자로 바꾸어 다리명칭을 풍교라 고쳤다.

장계는 풍교 근처의 물길에 정박한 배에서 밤을 보내면서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시로 썼다. "월락오제상만천 (月落烏啼霜滿天), 달 지고 까마귀 울고 하늘에 서리 가득한데, 강풍어화대수면 (江楓漁火對愁眠), 강가의 단풍나무, 고깃배 등불 마주하고 시름 속에 졸고 있네. 고소성외한산사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 밖 한산사, 야반종성도객선 (夜半鐘聲到客船), 한밤중 종소리가 객선까지 들려오네."

(사진설명: 한산사의 입구)

당나라 때의 유명한 한산 스님이 기거했다고 해서 한산사라 이름한 이 절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꼬불꼬불한 오솔길이 아늑하고 선(禪)실에 꽃나무 가득"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고풍스러운 한산사는 청 나라 때 지은 대웅보전(大雄寶殿)과 장경루(藏經樓), 종루(鍾樓), 비랑(碑廊), 풍강루(枫江樓), 상종각(霜鍾閣) 등 건물들을 거느린다.

한산사의 산문 앞에 놓인 강촌교(江村橋)라는 이름의 석교가 가림벽을 사이 두고 산문과 마주한다. 산문 옆에는 오래된 녹나무 두 그루가 지켜서고 산문을 넘어 노란 색의 담 안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풍강루, 왼쪽에 상종루가 예스러움을 자랑한다.

(사진설명: 한산사의 건물)

한산사는 다른 절과 달리 중심선을 엄격히 지키지 않아 산문과 가림벽은 중심선 상에 위치해 있지만 본전인 대웅전과 장경루는 중심선을 비껴서 자리한다. 최근에 신축한 보명탑원(普明塔院)은 다시 중심선을 유지한다.

방 다섯 칸 너비에 네 칸 길이의 대웅전에는 날아갈 듯한 지붕을 얹었고 황금색의 석가모니 불상이 공양되어 있으며 양쪽에는 명(明)나라 때 주조한 18기의 나한상이 금빛을 뿌린다.

대웅전을 나오면 왼쪽으로 명보탑에 이르고 왼쪽으로 야밤의 종소리로 유명한 종루에 이르며 그 앞쪽에는 장경루가 솟아 있다. 이중 지붕의 육각형 정자로 된 종루에 걸린 종은 구리로 주조했고 무게가 109톤에 달한다.

(사진설명: 한산사의 종루)

종은 높이가 8.588m, 하단의 지름이 5.188m이고 종의 중앙에 불교 경전 69,800자가 새겨져 있으며 주변에 아름다운 선녀를 그린 비천도(飛天圖)가 새겨져 있다.

종루 외에도 한산사의 또 다른 명물은 장계의 명시가 새겨진 비석이다. 높이 3.5m, 너비 1m의 비석에는 1906년 청나라 때 유명한 학자가 쓴 글을 새겨 시도 명시지만 시비(詩碑)의 글자도 문화재이다.

장계가 송나라 때 <풍교야박>을 쓴 뒤에 역대로 많은 서예의 대가들이 그 시를 써서 비석에 새겼다. 송나라와 명나라에도 <풍교야박> 시비(詩碑)가 있었지만 전란과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청나라 때의 것이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풍교)

한산사에서 북쪽으로 얼마 멀지 않은 곳을 경유하는 풍강 위에 조각달 모양으로 드러누운 아담한 석교가 있는데 바로 장계의 시에 나오는 그 유명한 풍교이다.

장계가 시를 쓸 때의 석교는 세월 속에 사라지고 오늘날 그 자리를 지키는 석교는 1867년 청 나라 때 다시 축조한 것이다. 40m 길이에 5m 너비의 석교는 동쪽으로 철령고관과 연결되어 있다.

관광객들은 배를 타고 석교를 흐르는 물에서 뱃놀이를 할 수도 있고 석교에 올라 고대의 관문 철령관과 고대의 도시 풍교진, 고대의 사찰 한산사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며 <풍교야박>이 묘사한 천 여 년 전을 그려볼 수도 있다.

(사진설명: 풍교고진 일각)

풍교와 연결된 철령관은 1557년 명 나라 때 축조되었다. 다리와 관문이 연결된 형식은 고대의 강남에서만 볼 수 있는 교통 중심지의 형식으로 오늘날 까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소주에서 침략한 왜구에 맞서 싸운 유적지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남은 철령관은 운하와 관도의 중심에 위치해 풍교일대의 관문역할을 했다. 현재 철령관의 건물기단은 명나라 때 것이지만 그 위의 건물은 1987년에 새로 지었다.

철령관에 올라 서면 하얀 담벽과 검정 기와의 고건물이 강가에 조화롭게 위치한 풍교진이 한 눈에 안겨 오고 강물에는 불 밝힌 고깃배들이 오가며 거기에 오래된 탑과 석교가 어울려 아늑한 운치를 자아낸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한산사)

키워드:

종교, 역사인문

위치와 교통:

한산사와 풍교는 강소(江蘇, Jiangsu)성 소주(蘇州, Suzhou)시 고소(姑蘇, Gusu)구에 위치, 소주에서 관광버스 3호선과 시내버스 313호선, 6호선, 9호선, 17호선, 21호선, 31호선, 301호선을 이용한다.

(사진설명: 한산사의 타종 행사)

계절:

1년 4계절, 그 중 타종행사가 있는 새 해 전날

설명:

당나라 때 수도였던 오늘의 서안(西安)에 가서 과거시험을 보았으나 낙방한 장계가 낙심해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풍교진에 이르러 정박한 배에서 밤을 보내다가 잠 못 드는 밤 들려오는 한산사의 종소리에 유명한 시 <풍교야박>을 썼다.

오늘날 한산사에서는 양력설 전날 밤과 음력설 전날 밤이면 타종행사를 가지고 종을 108번 울린다. 1년 중 12개월, 24절기, 72개 후(候, 고대 중국에서 5일을 1개 후라고 했음)를 더해서 108번 종을 울리며 그 의미는 지난 1년을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불교 경전에 의하면 중생은 108개의 고뇌를 가지고 있어서 108번의 종소리는 108개의 고뇌를 뜻하며 108번의 종소리를 들으면 모든 고뇌가 사라진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한산사 법사가 108번의 타종을 마친 뒤 관광객들은 스스로 종을 울려 새 해를 기원할 수도 있다. 새 해가 되면 한산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은은한 종소리 속에서 새 해의 평안을 기원한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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