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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루: 호수와 누각
2018-12-24 11:41:08 cri

(사진설명: 아름다운 악양루)

개관:

동정호(洞庭湖) 기슭에 솟은 악양루(岳陽樓)는 북쪽으로 장강(長江)을 바라보고 남쪽으로 호수를 마주하면서 웅장함을 자랑하며 옛 성과 산, 호수가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호수 밖에 호수가 있고 호수 속에 산이 있는 동정호는 수면이 하늘과 잇닿아 있고 일년 사계절 다양한 경관을 자랑하며 하루에도 경치가 천변만화한다.

(사진설명: 악양루의 일각)

역사:

서기 220년에 신축된 악양루는 초반에 파릉성루(巴陵城樓)라 불렀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李太白)이 파릉성루에 오를 때 파릉성은 악양성이라 불리게 되었고 이태백은 시에 파릉성루를 악양루라 썼으며 그로부터 악양루라는 명칭이 전해져 오늘날에 이른다.

그 뒤에 역대에 걸쳐 악양루는 전란이나 화재로 무너졌다가 다시 개축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으며 개축이나 증축 과정에 누각 주변에 다양한 축조물을 지었다.

1950년부터 악양루를 명소로 정하고 복구 작업을 시작했으며 1958년 악양루 관리소가 설립, 1984년 악양루가 대 규모적인 공사를 거쳐 명소로 오픈되었다.

2001년 악양루 명소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가는 관광지 급별인 4A급 관광지가 되었고 2011년 군산섬과 함께 중국에서 가장 급별이 높은 5A 급 명소가 되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악양루)

주요명소:

지금으로부터 1700 여 년 전에 신축되었다가 1045년에 개축되고 북송(北宋) 때의 유명한 문학자 범중엄(范仲淹)이 악양루기(岳陽樓記)"를 쓰면서 악양루는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동쪽을 바라보는 악양루는 구조가 소박하면서도 특이하다. 누각은 화강암으로 조성된 17.24m길이에 14.54m 너비, 0.65m 높이의 단위에 세워져 더욱 웅장해 보인다.

악양루의 특징은 3층 건물, 기둥 네 개, 투구 모양의 지붕 등으로 말할 수 있다. 순 목조 건물인 악양루는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목조 구조물이 서로 맞물려 누각을 지탱한다.

(사진설명: 가까이에서 본 악양루)

누각 중앙의 네 개의 굵은 기둥이 1층에서 3층의 천정까지 뻗어 있어 건물의 하중을 받고 복도에는 4의 3배수인 12개의 기둥이 있으며 처마기둥은 4의 8배수인 32개이다.

서로 견제하면서 완전한 하나를 이루는 이런 기둥들은 누각에 아름다움을 가미하는 동시에 건물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악양루는 지붕 받침인 두공(斗拱) 또한 정교함의 극치를 자랑한다.

복잡한 구도와 정교한 공법을 자랑하는 악양루의 두공은 고대 장군의 투구처럼 둥글면서도 네 귀퉁이가 건듯 들린 세 겹의 지붕을 받들고 있다. 이런 지붕을 사용한 고건물은 현재 악양루밖에 없어서 더욱 높은 가치를 자랑한다.

(사진설명: 악양루의 일각)

악양루에는 또한 선매정(仙梅亭)과 삼취정(三醉亭), 회보정(懷甫亭) 등 축조물이 딸려 있다. 회보정은 이름 그대로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 두보(杜甫)를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악양루의 남쪽에 위치한 선매정은 악양루를 사이에 두고 북쪽의 삼취정과 마주한다. 6각형의 선매정은 2층에 세 겹의 지붕을 하고 있으며 처마의 귀퉁이가 날아갈 듯 건듯 들려 있다.

지붕에 녹색의 유리기와를 얹은 선매정은 명나라 때인 1639년에 신축했으며 청나라 때인 1775년 악양루를 개축할 때 원래의 자리에 선매정을 다시 지어 오늘날에 이른다.

(사진설명: 악양루와 동정호)

선매정과 마주하는 악양루 북쪽의 삼취정은 청나라 때인 1775년에 신축했고 처음에는 선매정과 마주 바라본다고 해서 망선각(望仙閣)이라 이름했으며 1839년에 다시 짓고 삼취정이라 개명했다.

삼취정은 중국 민간에서 전해지는 여덟 선인의 한 명인 여동빈(呂洞濱)이 악양루에서 세 번 술에 취했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2층에 두 겹의 지붕을 얹은 삼취정은 붉은 기둥에 푸른 기와가 조화롭다.

목조 건물인 삼취정의 창틀에는 꽃이 정교하게 조각되고 정자 곳곳에는 온갖 이야기들이 조각되어 눈을 어지럽히며 1층의 병풍에는 여동빈의 와상이 새겨져 있다.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악양루와 동정호)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 두보는 노후에 악양에 와서 살았고 <악양루에 올라> 등 불후의 시편을 남겼으며 악양에서 생을 마감했다. 1962년 두보 탄신 1250주년을 기념하면서 세계평화이사회는 두보를 "세계 4대 문화명인"으로 선정했고 악양시민들은 두보를 기리기 위해 악양루 옆에 회보정을 세웠다.

네 개의 굵은 시멘트 기둥에 받들려 있는 회보정은 사면에 난간을 세웠고 정자의 윗부분은 목조로 되어 있다. 정자에는 정면에 두보의 화상과 두보가 쓴 <악양루에 올라>라는 시가 새겨지고 후면에 두보의 일생이 기록된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정자 북쪽의 처마 아래에 걸려 있는 녹나무 편액에는 "회보정(懷甫亭)"이라는 세 글자가 힘 있는 필치로 새겨져 유난히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동정호)

고대에 운몽택(雲夢澤)이라 불렀던 동정호는 중국 제2의 담수호로 팔 백리 동정호라 부르기도 한다. 호수의 남쪽에 호남성을 두고 북쪽에 호북성을 둔 동정호는 상강을 망라한 네 줄기의 강물을 받으며 악양성 근처에서 장강과 연결된다.

바다처럼 넓은 동정호는 수려한 자연 경치를 자랑한다. 동정호는 호수 밖에 호수가 있고 호수 속에 섬이 있으며 수면에는 어선이 점점이 수를 놓고 하늘과 수면이 연결되며 푸른 갈대밭에 새들이 날아옌다.

동정호는 일년 사계절 다양한 경관을 자랑하고 하루에도 경치가 천변만화한다. 옛 사람들이 말하는 "소상(瀟湘) 8경"에서 "동정호의 가을 달빛"과 "돌아오는 어선", "백사장에 내린 기러기", "어촌의 석양", "호수의 설경" 등이 바로 동정호의 경치를 말한다.

(사진설명: 동정호의 일각)

아름다운 호수의 기슭에는 악양루와 군산(君山), 두보의 무덤, 이비묘(二妃墓), 약용탑(躍龍塔), 문묘(文廟), 용주(龍州)서원 등 많은 문화명소들이 산재해 있다.

동정산이라 불렀던 군산은 동정호의 작은 섬이다. 악양성에서 15km 거리에 위치한 군산은 호수를 사이에 두고 악양루와 마주한다. 타원형의 산이 양쪽에 높고 가운데가 낮은 군산은 72개의 크고 작은 산봉으로 구성되어 있다.

군산에는 중국에서 발견된 마애석각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석각과 신석기 시대의 유적 등이 있으며 이태백과 두보 등 유명한 시인들이 남긴 유적도 아주 많다.

(사진설명: 악양루에서 본 동정호)

군산에는 또 대나무와 차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며 특히 나한죽과 반죽(斑竹), 방죽(方竹), 자죽(紫竹), 용죽(龍竹), 매화죽(梅花竹) 등 온갖 종류의 대나무가 모여 있다.

이 섬에서는 또 중국 10대 명차의 하나인 군산은침(君山銀針)이라는 이름의 녹차가 나는데 이 녹차는 당 나라 때 공물로 황궁에 진상되기도 했다.

동정호의 또 다른 섬인 청산도(靑山島)는 모양이 거대한 킹크랩을 방불케 한다. 남북길이 약 1만 m, 동서 너비 1 천m의 청산도는 철새들의 비행선상에 위치하고 좋은 지리적 여건 및 우월한 습지 환경으로 많은 철새들이 이 곳에서 월동한다.

(사진설명: 동정호의 철새)

겨울과 봄이 되면 철새들이 날아와 알을 까서 청산섬은 새들이 하늘을 덮을 정도로 장관을 이룬다. 호수에 물고기가 많은 청산섬은 또한 중국에서 세 개 밖에 남지 않은 어촌의 하나이고 호남에서 마지막 남은 어촌이기도 하다.

동정호에는 많은 아름다운 전설도 전해진다. 전한데 의하면 순(舜) 임금의 두 왕비인 아황(蛾黃)과 여영(女英)이 이 곳에서 한동안 살았고 죽은 뒤 상수여신(湘水女神)으로 불리며 이 곳에 묻혔다.

굴원(屈原)이 이 두 왕비를 상군(湘君)이라 불렀고 따라서 후세 사람들은 이 섬에 군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되었다. 현재 이 곳에는 두 왕비가 묻힌 이비묘와 상비사(湘妃祠), 유의정(柳毅亭), 전서정(傳書亭), 랑음정(朗吟亭), 비래종(飛來鍾) 등 유적들이 남아 있다.

(사진설명: 동정호의 철새)

키워드:

고건물, 역사인문, 풍경

위치와 교통:

악양루는 호남(湖南, Hunan)성 악양(岳陽, Yueyang)시에 위치, 다양한 교통수단으로 장사에 도착한 다음 열차나 시외버스를 이용해 악양에 도착, 악양에서는 15선 관광버스를 이용한다.

(사진설명: 동정호의 여름)

계절:

5-10월

설명:

1046년 악양루를 개축하면서 989년에 태어나 1052년에 타계한 북송의 문학가 범중엄(范仲淹)이 산문 <악양루기>를 썼고 그로부터 악양루는 문화적 함의를 가지고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범중엄은 <악양루기>에서 악양루의 아름다운 경치를 쓰고 흐린 날과 개인 날의 다른 느낌을 적었으며 산수와 인간의 느낌을 접목해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의 대조, 명암의 조화, 간결한 어휘로 명문을 남겼다.

범중엄은 <악양루기> 서두에 악양루를 개축하게 된 과정을 간단하게 서술하고 현지 태수(太守)의 초청에 의해 자신이 글을 쓰게 된 경과를 적는다.

그리고 직접 악양루의 경관을 묘사한다. <악양루기>의 일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보기에 파릉군의 비경은 모두 동정호에 있다. 저 멀리 펼쳐진 산발은 장강의 물을 뿜는 듯 호호탕탕하고 수면은 끝없이 넓다. 이른 아침이면 밝은 햇살이 수면을 비추고 황혼이면 수면이 어두워져 그야말로 변화무쌍하다. "

"훈풍이 불고 화사한 봄날에는 수면이 거울처럼 고요하고 하늘빛과 호수가 어울려 끝없이 넓다…가끔 호수에는 물결이 찰랑이고 수면에 비낀 달빛이 부서진다…그 때 어부의 노래 소리가 들려오면 그야말로 즐거움이 무궁무진하다! 이 때 악양루에 오르면 마음이 트이고 기분이 즐거워 영광도 굴욕도 다 잊게 된다. 시원한 바람 속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그 기분은 즐거움의 극에 달한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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