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멱라강: 호남문화의 뿌리
2018-12-25 15:29:18 cri

(사진설명: 아름다운 멱라강)

개관:

253km를 흘러 동정호(洞庭湖)에 흘러 드는 멱라강(汨羅江)은 고대 중국의 유명한 정치인이자 시인인 굴원(屈原)이 생의 마지막을 보냈고 강물에 몸은 던진 것으로 인해 더욱 유명하다.

멱라강 기슭에는 굴자사(屈子祠)와 소단(騷壇), 굴원의 무덤 등 많은 명소들이 있고 그 중 굴자사는 중국에서 유일한 굴원의 기념물이자 호남문화와 중국 시문화의 뿌리이기도 하다.

(사진설명: 굴자사의 일각)

역사:

굴자사는 한(漢)나라 때 세워졌으나 후에 무너지고 원래의 자리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오늘날의 굴자사는 청(淸)나라 때인 1756년에 옥사산(玉笥山) 산정에 개축한 건물이다.

1979년 갈주패(葛洲坝) 댐을 만들면서 건물을 증축했고 1980년 굴자사의 뒤쪽 건물에 굴원의 동상을 새로 세웠으며 굴자사는 2001년 중국 중점문화재 보호업체에 선정되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멱라강)

주요명소:

호남의 젖줄인 상강(湘江)의 가장 큰 지천인 멱라강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정치인이고 고대 중국의 대표시인인 굴원(屈原)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은 강물이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귀족들의 배척을 받은 굴원은 강남으로 좌천되었고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가 이 곳 멱라강 기슭에서 발길을 멈추고 생의 마지막 9년을 보냈다.

기원전 278년 초(楚)나라 도읍인 오늘날의 호북(湖北)성 강릉(江陵)현이 진(秦)나라에 함락되자 나라를 구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굴원은 멱라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사진설명: 굴자사의 일각)

후세 사람들은 굴원을 기리기 위해 멱라강 기슭에 굴자사를 세웠고 청(淸)나라 건륭(乾隆)제 연간에 옥사산(玉笥山)에 옮겨 지었다. 굴자사의 건물은 56개의 기둥에 받들려 있고 홀과 연못, 복도, 누각 등 다양한 건축양식이 어울려 엄밀한 구도와 정교한 조각을 자랑한다.

굴자사의 앞쪽에는 돌을 쌓아 넓은 단을 만들었고 그 남쪽으로는 119개의 계단을 통해 멱라강과 연결된다. 굴자사의 외벽은 단단한 청색의 벽돌로 쌓았고 지붕에는 노란 유리기와를 얹었다.

굴자사의 정문은 네 개의 기둥에 받들려 있으며 중문(中門)은 하단에 다섯 마리의 용이 조각되고 상단에 굴자사라는 세 글자가 새겨진 패방(牌坊) 식으로 되어 있다.

(사진설명: 굴자사의 건물)

굴자사의 세 채의 건물과 건물사이에는 정자가 세워지고 두 건물의 사이에는 중정이 조성되어 있다. 중정에는 수령 2.3백 년이 넘는 목서나무가 자라는데 앞쪽 중정에 금목서 나무 두 그루, 뒤쪽 중정에 은목서 나무 두 그루가 자란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에는 후세사람들이 굴원을 기리기 위해 쓴 시문이 새겨져 있는 비석이 많이 세워져 통로를 오가면서 굴원의 일생을 돌이켜본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푸른 기와를 얹고 날아갈듯한 지붕을 한 본전에 있는 사마천(司馬遷)의 <굴원렬전 (屈原列傳)>의 목각물과 그 위에 걸려 있는 "광쟁일월 (光爭日月)'액자이다.

(사진설명: 굴자사의 일각)

본전 뒤의 건물에는 3m 높이에 금박칠한 굴원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남쪽을 향한 굴원의 동상은 우울한 눈길로 쉬지 않고 흐르는 멱라강을 마주하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본전의 동쪽과 서쪽에 위치한 곁채는 현재 8개의 진렬실로 사용되어 굴원의 일생과 작품, 영향력 등을 소개하며 역대 화가들이 그린 굴원의 화상 등이 전시되기도 한다.

본전의 주변에는 또 옥사산 8경으로 불리는 "독성정(獨醒亭)"과 "소단(騷壇)", "도화동(桃花洞)", "음마당(飮馬塘)", 탁영교(濯缨橋), 전도지(剪刀池), 수화돈(繡花墩), 수성대(壽星臺), 등 명소들이 산재해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굴자사)

굴자사 앞에 세워진 독성정은 1756년에 개축된 육각형의 정자이다. 붉은 기둥에 푸른 기와를 얹은 독성정은 천정에 용 두 마리가 보석을 가지고 노는 채색의 그림을 그렸다.

굴자사의 동쪽에는 1995년에 정원형식의 굴원비림(碑林)을 조성했다. 노란 기와에 붉은 기둥의 비림에는 300여명의 중국 서에대가들의 작품인 356점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런 비석에는 굴원의 시작품 25수가 새겨져 있는데 해서체와 행서체, 초서체, 예서체, 전서체, 위비(魏碑)체, 갑골문 등 거의 모든 서체로 새겨져 한자문화를 느낄 수도 있다.

(사진설명: 굴자사의 정자와 복도)

키워드:

고건물, 역사인문, 풍경

위치와 교통:

굴자사는 호남(湖南, Hunan)성 멱라(汨羅, Miluyo)현 옥사산정에 위치, 다양한 교통편으로 악양(岳陽)에 도착한 다음 악양역에서 멱라행 열차를 이용, 30분이면 도착이 가능하다.

(사진설명: 굴원의 화상)

계절:

5-10월

설명:

대략 기원전 340년에 태어나 278년에 세상을 떠난 굴원은 전국시대의 초나라 사람이며 유명한 시인이고 정치인이다. 초나라에서 많은 관직을 지냈으나 귀족들의 배척을 받아 좌천되어 초나라가 멸망한 후 멱라강에 몸을 던진다.

(사진설명: 멱라강의 용주놀이)

멱라강에서는 멱라강의 아름다움을 구경하고 굴자사의 예스러움을 보는 동시에 용주(龍舟)놀이도 빼놓을 수 없다. 2천 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용주놀이가 바로 이 곳 멱라강에서 발원했다.

2 천 여 년전 나라를 잃은 굴원이 멱라강에 몸을 던지자 많은 현지인들이 배를 타고 멱라강을 오르내리며 굴원을 찾았고 대나무잎에 쌀과 육류를 싸서 찐 종자를 던지며 "물고기야 물고기야, 나의 가족을 다치게 하지 마오"라고 외쳤다.

그 때로부터 음력으로 5월 초닷새 날이면 사람들은 멱라강에 배를 띄우고 굴원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그 행사가 오랜 세월 전해지면서 오늘날의 단오절이 되었다.

(사진설명: 단오날의 종자)

오늘날도 단오가 되면 사람들은 용주놀이를 하고 종자를 먹으며 황주(黃酒)를 마시고 문에 쑥을 걸면서 고대 중국의 위대한 시인 굴원을 기린다.

멱라강의 용주놀이는 다른 곳과 다르다. 용주선수들이 촛불을 밝히고 용주를 들고 먼저 굴자사에 가서 굴원에게 제사를 지낸 다음 폭죽을 터뜨리며 배를 강물에 띄우고 경기를 시작한다.

강물에서는 용주가 살같이 달리고 강기슭에서는 사람들이 폭죽을 터뜨리고 환호하며 들끓는다. 용주경기가 끝난 뒤에는 또 굴원을 기리는 시를 짓기도 하고 가장 맛있는 종자를 선별하는 용주문화 행사도 가진다.

용주문화에는 또한 용등놀이를 하고 높은 나무다리를 하고 걸으며 연극을 보는 등 지방특색이 다분한 문화오락활동도 망라되어 모두가 즐거운 명절을 보낸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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