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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타임] 명인의 발자취를 따라서- 노신옛집
2016-01-24 16:41:03 cri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으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노신이 쓴 "고향"에 나오는 명구죠. 중국 현대 문학가 노신의 말처럼 애초에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죠. 두발로 두손으로 실천하다보면 또 새로운 희망이 생긴다는 이 명언은 무기력하고 나른했던 일상에 대한 채찍처럼 들려옵니다.

노신은 중국 현대 위대한 문학가이고 사상가, 혁명가입니다. 그는 당시 중국 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사회의 암흑한 현상, 국민들의 열근성을 뿌리깊게 파헤치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유수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대표작으로 "납함", "방황", "아Q정전(阿Q正传)"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저는 노신의 "아Q정전"을 읽으면서 마음속까지 후벼파는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기법과 표현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는데요. 이런 사회 부조리에 대한 풍자는 노신의 실생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노신이 하문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을 무렵, 머리를 깎으러 주변의 이발소를 찾았습니다. 이발사는 소박한 옷차림의 노신을 아래우로 훑더니 돈 몇푼 없는 사람이라고 여겨 노신의 머리를 대충 깎아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노신은 화내는 기색없이 이발사에게 돈을 한웅큼 쥐어주었습니다. 당연히 지불해야 할 금액을 훨씬 초과했죠. 이에 이발사는 온 얼굴에 웃음이 만개했습니다. 며칠뒤 노신은 또 이 이발소를 찾았습니다. 이발사는 그를 알아보고 자신의 온갖 재주를 다 발휘해 열심히 노신의 머리를 깎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가요? 노신은 주머니에 돈을 하나하나 헤어 가격에 맞춰 주었습니다. 이에 이발사는 대발노발하면서 따졌죠.

"지난번에는 그렇게 돈을 많이 지불하더니 왜 이번에는 이렇게 적어졌소?"

이에 노신은 웃으며 답했습니다.

"지난번에는 자네가 대충대충 머리를 깎으니 나도 대충대충 지불한거고 이번엔 꼼꼼히 머리를 정리해주니 나도 꼼꼼히 돈을 세어 준거라네."

노신은 욕설, 비방도 아닌 문인다운 방법으로 용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이발사를 낯뜨겁게 혼낸거죠.

그럼 오늘 "명인의 발자취를 따라서"에서는 베이징시 서성구(西城区) 부성문(阜成门)에 위치한 노신의 옛집을 거닐면서 그의 창작생활을 한번 더듬어볼가요?

이 옛집은 노신이 1923년 연말에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신은 모친께 좀 더 편한 거주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직접 설계도를 그리고 낡은 방을 다시 개조했다고 합니다.

노신옛집은 붉은 기와에 회색벽으로 둘러쌓인 자그마한 사합원입니다. 사합원은 정방(正房) 3채와 도좌방(倒座房) 4채, 동서 상방(厢房) 각각 1채로 구성되었습니다. 여의문(如意门) 열고 들어가면 남쪽을 향한 도좌방이 보입니다.

도좌방은 접대실과 서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책상자들이 정연하게 세워져 있어 소박하면서도 깔끔한 인상을 줍니다. 도좌방은 칸막이로 안채와 바깥채로 나뉘었습니다. 이 방에 가장 많은 것은 바로 책이였는데 안채, 바깥채에 쌓아올린 책상자가 무려 30개나 됩니다.

노신이 책을 아끼는 것은 예로부터 정평이 나있었습니다. 노신은 평생 절약하고 소박하게 생활하면서 책을 구매하는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책을 읽기전에 항상 손을 씻고 더럽혀진 책은 조심스레 닦았습니다. 노신은 평소에 책을 쉽게 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누군가 책을 빌린다면 새로 구입해서 빌려주곤 했습니다.

북으로 향한 정방 3채중 동쪽은 노신 모친의 거실입니다. 노신은 모친을 매우 존경해 식후거나 여가 시간만 되면 어머니 방을 찾아 담소를 나누곤 했습니다. 정방의 중간채는 식구들이 식사하고 세수하는 방입니다. 서쪽 방은 노신의 본처 주안(朱安)의 거실입니다. 주안에 대해 노신은 모친이 준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주안과 사랑이 없기에 공동언어가 없었고 서로 깍듯이 존경하면서 명예상의 부부관계를 유지했다"고 회억했습니다. 주안은 이 옛집의 가장 오랜 안주인으로 남았습니다.

이 정방과 북으로 이어진 작은 방이 있는데 이를 "호랑이 꼬리"라고 불렀습니다. 이 10여평방미터도 안되는 작은 방이 곧 노신의 작업실 겸 거실입니다. 노신은 채광을 고려해 이 방을 특별히 알심들여 설계했습니다. 그는 "북쪽 창녘의 빛은 오전, 오후에 큰 변화가 없다"고 하면서 "북쪽 창가에 책상을 놓으면 온 하루 습작하고 열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호랑이 꼬리" 방의 실내 각종 진열은 노신 선생이 생활했던 원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내부는 특별히 간단한데 책상 남쪽 켠에는 책장이 있고 내부에 다관이랑 간식통 등이 들어있습니다. 책장 옆에는 백피 상자가 놓여있는데 당시 상자우에는 여러가지 간행물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창가에 있는 침대는 긴 걸상에 널빤지 두개를 걸터놓은 간단한 침구였습니다. 침대말에는 남포등과 낡은 알람시계, 후지노선생 사진이 들어있는 작은 액자가 놓여있습니다. 후지노 선생은 노신이 1904년 일본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있을 때의 해부학스승이였습니다. 노신은 후지노 선생에 대해 자신을 가장 많이 격려한 스승이라고 회억했습니다. 노신은 바로 이 소박한 사합원에서 "화개집(华盖集)", "야초(野草)", "방황(彷徨)", "조화석습(朝花夕拾)" 등 작품을 펴냈습니다.

정방의 안쪽으로 작은 길을 지나면 뒤에는 10여평방미터의 작은 정원이 있는데 앞 정원에 있는 정향나무 3그루와 뒤 정원에 있는 매괴화는 노신이 1925년 4월 5일 운송각의 화장을 청해 재배한 것이라고 합니다. 정원 중앙에는 노신이 직접 판 우물이 있습니다. 60여년이 지난 오늘 정향나무는 초목이 무성한 나무로 자라났고 주변의 화초들과 회색기와, 격자창과 어우려져 사합원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이 옛집은 노신이 베이징에서 머물던 마지막 거처로 노신의 생활을 보여주는 축소도와 같습니다.

노신 선생의 작품을 즐겨읽었다면 여러분들도 노신옛집을 찾아 그의 흔적을 느껴보는건 어떨가요?

노신의 명언으로 오늘 "명인의 발자취를 따라서-노신옛집"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희망은 생명과 엮여있다. 생명이 있어야 희망이 있고, 희망이 있어야 빛(미래)가 있는것이다."

번역/편집: 권향화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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