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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타임] 명인의 발자취를 따라서- 매란방옛집 
2016-03-02 10:51:20 cri

[음악- "딩거룽둥창"]

일전에 중한 스타들의 중국 전통극 도전기를 그린 문화교류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 "딩거룽둥창"이 CCTV3채널에서 인기리에 방송되면서 중국 전통극 경극도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경극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죠? 바로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분, 매란방(梅蘭芳)입니다.

매란방은 중국 유명한 경극대가이며 여자 역을 소화해내는 4대 경극가 중 최상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8세에 연기를 배워서 11세부터 무대에 선 매란방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와 고운 목소리, 섬세한 손짓으로 지난 50년간 대량의 진실되고 감동되는 예술형상을 부각했습니다. 또한 그는 1919년부터 1960년까지 일본, 러시아, 미국을 다니면서 경극공연을 펼쳐 최초로 경극예술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특히 매란방이 창시한 매파(梅派)는 "세계3대공연체계"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경극은 "귀비취주(貴妃醉酒)", "패왕별희(霸王別姬)", 곤극(昆劇)은 "유원경몽(遊園驚夢)", "단교(斷橋)" 등입니다. 매란방의 저서로는 "매란방문집(梅蘭芳文集)", "매란방연출극본선집(梅蘭芳演出劇本

集)"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베이징시 서성구(西城區) 호국사거리 (護國寺街) 9번지에 위치한 매란방옛집을 찾아 그의 만년생활을 진맥해볼가요?

매란방옛집은 앞뜰과 뒤뜰로 나뉜 전형적인 사합원입니다. 매란방은 1950년에 이곳에 입주해 생의 최후10년을 보냈습니다. 1984년 매란방옛집을 베이징시 제3차 문물보호단위로 지정하고 1986년 10월 27일에 "매란방기념관"이 개관됐습니다.

매란방옛집의 주칠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청석과 기와로 된 가림벽입니다. 가림벽 앞에 심은 청죽속에는 매란방의 백옥조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조각은 유개거(劉開渠) 조각가와 그의 제자 백란생(白瀾生)이 공동창작한 것입니다. 이 공간은 현재 제1전람실로 사진과 자료를 전시해 매란방 일생의 주요 예술생활과 사회활동 경력을 간략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림벽을 에돌아 나오면 뒤뜰의 동, 서, 북방(北房) 세면을 둘러싼, 주칠 기둥이 세워진 복도가 보입니다. 주칠 기둥 상단에는 채색화가 덧붙여져 고전적이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북방은 응접실이었고 북방의 동쪽에 붙어있는 안채는 매란방과 부인 복지방(福芝芳)의 거실, 서쪽 곁채 이방(耳房)은 서재였습니다. 동쪽의 사랑채 상방(廂房)은 식사와 주방 공간으로 사용했고 서쪽의 사랑채는 자녀들의 거실이었습니다.

북방의 실내구조는 기존의 모습을 기본상 유지하고 있습니다. 소박하면서도 세련되고 실내 곳곳에서 이 예술대가의 수양과 취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응접실에 들어서면 오랜 목식 가구와 가죽소파가 보입니다. 문의 정면에 놓인 긴 책상에는 강희(康熙)왕조시기의 옛병이 몇점 놓여져 있고 소파앞에는 매란방이 다년간 애용했던 자단목 찻상이 있습니다. 소파 맞은 켠에는 홍목으로 된 큰 거울이 있는데 거울 테두리는 조가비로 상감한 "팔선과해(八仙過海)"도안이 새겨져 있습니다. 경극계의 베테랑이었지만 매란방은 몸짓, 표정이 더 완벽해질 수 있도록 만년에도 이 거울을 보면서 아침 저녁으로 기예를 연마했다고 합니다.

매란방의 이런 노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몸에 밴 습관과도 같았습니다. 경극 명배우인 조부와 경극 배우로 활약했던 부친, 경극 반주를 했던 숙부 등 집안의 영향을 받아 그는 어렸을 때부터 경극을 접하게 되었고 또 즐겨 보았습니다. 8세에 매란방은 경극에 입문했지만 스승으로부터 "너의 조상님들은 너에게 이 밥그릇을 전해주지 못했네"라는 혹평까지 받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을법도 한데 매란방은 피타는 노력으로 스승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버렸습니다. 그는 다른 학도들이 6,7번에 한마디를 배워내는 것도 20번씩 불러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했습니다. 나중에 그의 음역대는 더욱 넓어지고 음색은 청아해져 사람들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목소리를 연마해냈습니다.역시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있죠.

그럼 계속해서 응접실의 서쪽벽을 보면 청나라 화가 심용포(沈蓉圃)의 "동광13절(同光十三絕)"그림이 걸려져 있습니다. 반대편의 동쪽 장지에는 김동심의 "쌍합도(雙鴿圖)"가 걸려있고 그 아래 참대, 조롱박, 상아로 조각한 비둘기모양의 호루라기가 놓여져 있습니다. 비둘기에 대한 매란방의 애착은 그의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렸을 때 매란방은 근시안이었고 눈꺼풀이 아래로 처져 눈동자에 정기가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난 경극은 특성상 배우들의 눈길이 가장 중요하기에 매란방에게는 이런 눈이 치명타였습니다. 그는 고민끝에 비둘기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창공을 날아예는 비둘기를 보면서 그의 눈동자는 비둘기의 날개짓을 따라 움직였고 멀리 나면 날수록 그의 시선도 점차 먼곳을 향했습니다. 이렇게 오랜 기간의 훈련을 거쳐 그의 근시안도 교정되었고 특히 눈길에 정기가 돌았습니다. 매란방은 생전에 이 두가지 물품을 매우 아꼈다고 합니다.

발길을 옮겨 작은 응접실로 가면 방 가운데 무늬를 새긴 8각 모양의 책상과 아담한 둥근 의자 4개가 보입니다. 책상에는 라디오가 놓여져 있는데 매란방은 매일 이곳에서 라디오를 듣고 신문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 방의 벽에는 서비홍(徐悲鴻) 화백의 "묘도(貓圖)"와 제백석(齊白石) 화백의 "나팔꽃"그림이 걸려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두 거장이 매란방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이외에도 서제로 사용되었던 서쪽 곁채는 현재 제3전람실로 매란방이 국내외 지인들로부터 선물받은 서예, 회화와 기념품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매란방의 옛집을 보면 매란방이 특히 회화에 흥취가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중국 연극에서 필요한 의상이나 도구, 분장, 연기는 종합하면 움직이는 수묵화라고 말했습니다. 매란방은 회화에서 연극에 도움되는 자양분을 섭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그의 생각은 미술계 거장 제백석과의 인연으로 이어집니다. 매란방은 회화를 학습하려고 유명화가들을 찾아 도움을 청했는데 그중 한명이 바로 제백석입니다. 제백석 또한 매란방의 연극을 즐겨보았기에 그는 매란방의 스승이자 벗이었고 매란방은 제백석을 줄곧 공경해왔습니다. 한번은 매란방이 어느 정월말에 열린 "귀비취주"공연에 제백석을 초대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제백석은 분잘실로 매란방을 찾아갔습니다. 자리에 앚은 제백석은 순간 다리가 저려옴을 느꼈고 이를 눈치챈 매란방은 "오랜 시간 앉아 있어 발이 언 것 같다"고 하면서 분장도 지우지 않은채 제백석의 신발을 벗기고 두발을 감싸안었습니다. 그때 매란방의 행동에 크게 놀란 제백석은 감동되어 그 심정을 이루다 표현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매란방은 유명인이었음에도 늘성근하고 겸손한 자세로 사람을 대했기에 그의 응접실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문화계인사, 연극계 동료, 친구, 제자들이 찾아오면 매란방은 항상 편안하게 대해주고 꼭 식사를 접대했습니다. 그런 연고로 주방과 식사공간으로 사용되었던 이 동쪽 사랑채는 항상 흥성흥성했습니다.

오늘날 이 떠들썩했던 동쪽 사랑채는 매란방의 아끼는 서예와 회화, 서적들을 진열한 제6전람실로 변모했고 자녀들이 생활했던 서쪽 사랑채는 매란방의 무대의상과 공연도구, 소장자료들을 진열한 제2전람실로 변모했습니다.

이 한적한 옛집을 거닐면서 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로 평생을 바친 경극대가의 삶의 흔적을 느껴보는 것도 참 좋은 체험이 되지 않을가 싶은데요.

지금까지 명인의 발자취를 따라서- 매란방옛집 편이었습니다. 다음회에는 매란방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서화예술계 거장 제백석옛집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앤딩음악 영화 "매란방"OST 黎明"是我"]

번역/편집: 권향화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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