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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타임]명인의 발자취를 따라서- 섭이옛집 
2016-05-05 15:17:22 cri

1년 365일 해가 떠오를 무렵이면 천안문광장에 울려퍼지는 웅장한 곡조, 다가오는 리우올림픽에서 중국 건아들의 멋진 경기로 장내에 울려퍼질 짜릿한 선율, 전주만으로도13억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그 곡조 바로 중국 국가 "의용군행진곡"입니다.

전한(田漢)이 작사하고 섭이(聶耳)가 작곡한 "의용군행진곡"은 일본제국주의침략을 물리치던 전쟁년대에 탄생했습니다. 그때 작곡가 섭이는 다큐멘터리영화 "풍운의 아들딸(風雲兒女)" 주제가를 창작하던 중 동북항일의용군 군가 "의용군서사가(義勇軍誓詞歌)"를 듣고 영감을 얻어 오늘 날의 "의용군행진곡"을 작곡했습니다. 1949년 "의용군행진곡"은 중국 국가(國歌)로 잠정되었고 2004년 3월 14일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2차회의에서 국가로 공식 지정되어 "중화인민공화국헌법"에 기입되었습니다.

오늘 "명인의 발자취를 따라서"에서는 이 국가를 탄생시킨 중국 현대 작곡가 섭이의 옛집을 찾아 노크해봅니다.

섭이의 옛집은 운남성(雲南省) 옥계시(玉溪市) 홍탑구(紅塔區) 섭이로(聶耳路) 북문가(北門街) 3호에 위치해 있습니다. 섭이옛집 거리 양옆은 편액과 갖가지 깃발, 궁등 등 전통장식으로 꾸몄고 주변의 가게에서는 악기나 수공예품, 도서, 문방사우 등 문화용품을 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섭이옛집의 문화적 함의와 잘 어우려져 자연스러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섭이옛집은 증조부 섭련등(聶連登)이 청나라 말기 세웠고 부친 섭홍의(聶鴻儀)가 물려받았습니다. 이 옛집은 섭이의 조상들이 대대로 살던 곳입니다.

섭이옛집은 고색이 창연하면서 현지 특색이 다분한 토목구조의 2층건물입니다. 1층건물의 지붕에는 지금도 어렴풋이 보이는 부조도안이 새겨져 있습니다. 옛집실내는 기존의 구조와 모습을 거의 보존하고 있습니다. 1층은 섭이 부친의 진료실과 주방, 전람실로 되어있고 2층은 섭이 가족의 거실입니다. 주방의 벽에는 바구니며 키, 수저통이 걸려있고 책상에는 여러 가지 식기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습니다. 중의였던 부친의 진료실에는 약절구와 약재를 담는 작은 사물함 서랍들이 층층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2층 섭이 모친 거실에는 3면이 난간으로 둘러쌓인 침대와 옷궤, 책상이 놓여져 있고 벽에는 모친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섭이와 형이 함께 사용하던 거실에는 목조식 침대와 책상, 걸상들이 놓여져 있고 침대 머리맡에 있는 작은 창문 사이로 따스한 해살이 들어와 방의 흔적을 고스란히 비춰줍니다.

1층 진열실에는 섭이가 옥계옛집에 머무는 동안 사용했던 생활용품이며 그의 생활과 학습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약 120여 점의 문물자료사진과 110여 실물 그리고 소중한 친필원고도 있습니다.

백여년이 지난 옛집은 짧지만 휘황했던 작곡가 섭이의 일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대한 남다른 흥취가 있었던 섭이는 선후로 가족들과 이웃들에게서 민족악기의 연주방법을 배우면서 민간음악도 접촉하기 시작했습니다. 4세 때 부친을 여의고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학창시절 섭이는 우수한 성적으로 모든 학비를 면제하는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는 학교 과외음악활동 시간에 적극적으로 활약해 학생음악단 지휘 등으로 뽑혔고 학교 제1호 학생상장을 수여받았습니다.

그 뒤 섭이는 려금휘(黎錦暉)가 이끄는 명월가무단에 들어갔으나 민족의 생사존망이 걸려있는 시기에 시대와 결부되지 않는 공연을 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가무단을 홀연 떠났습니다. 1932년 4월 섭이는 상해에서 좌련극작가연맹의 책임자 전한을 만났고 그때부터 음악의 발전과 혁명사업을 결부시켜 그의 예술생애에서 새로운 막을 장식했습니다. "의용군행진곡"으로 후세에 섭이라는 이름을 남겼지만 기실 그의 본명은 "섭수신(聶守信)"입니다."섭(聶)"씨 성에 "귀 이(耳)" 로 이루어진 다소 특이한 이름 뒤에는 이런 비화가 있습니다.

젊었을 때 섭이는 워낙 음악에 민감한 터라 주변에서 그의 귀에 흘러든 음악은 모두 입으로 부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그를 "귀"라고 불렀답니다. 어느 모임에서 섭이는 춤과 노래는 물론 다른 사람이 말하는 흉내도 내고 두 귀를 앞뒤로 움직이는 묘기까지 보여주자 주변 사람들은 섭이의 다재다능에 연신 감탄했습니다. 현장에서 유심히 보던 책임자는 섭이에게 선물을 건네면서 "섭이박사"라고 불렀고 섭이는 이 이름이 맘에 들어 후에 섭이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현지에서는 섭이를 기념하기 위해 옥호(玉湖) 호숫가에 섭이기념관을 세웠습니다. 기념관은 섭이도서관, 기념관, 연예홀, 노인대학 등 건물로 이루어졌고 그 중 기념관은 홀과 본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홀에는 섭이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데 조각상 좌대에 23개 오각별이 상감되어 있습니다. 이 23개 오각별은 23년간 섭이의 짧고 위대한 일생을 상징합니다. 본관은 섭이의 일생을 "성장의 요람", "시대의 용광로", "인생의 단련", "전투의 세월", "영생 해연", "영원한 기념" 등 6부분으로 나뉘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섭이의 유년시절을 간직하고 있는 옛집, 그 옛집을 품고 있는 옥계, 이곳에는 오늘도 작곡가의 선율을 담아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글/권향화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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