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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별산 깊은 골짜기 기이한 경관 
2016-08-12 15:48:57 cri

지난해 7월 우리는 대별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나전현(羅田縣) 하포진(河鋪鎮) 패형지촌(簰形地村)을 찾았습니다. 차로 이동하던 일행은 산허리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습니다. 산골짜기의 거대한 회백색 화강암 우에서 굽어보니 눈앞이 확 트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청산이 마주한채 우뚝 서있고 골짜기 아래로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목을 끈 것은 하천 속 기암괴석들이 웅장한 기세로 솟아 가관을 이룬 것이였습니다. 그중 어떤 바위는 흐르는 물속에 끄덕없이 우뚝 서있고 어떤 바위는 달리는 면양과도 같았으며 어떤 바위는 졸고 있는 코끼리와 같았습니다. 크기도 자태도 모두 다르지만 이 바위들은 하나같이 윤기있고 부드러워 조각가의 손을 거친 예술품을 연상케 했습니다. 바위마다 우에는 직경과 깊이가 다른 원형 혹은 타원형의 구멍들이 나있었는데 마치 벌레가 좀을 쏠고 간 듯했습니다. 이때 지인이 한켠에 널린 바위들을 가리키며 우물이랑 가마 같지 않냐고 넌지시 묻습니다. 자세히 보니 과연 그곳은 행군 도중 임시로 구덩이를 파서 아궁이를 만들고 밥을 짓던 부뚜막 같았습니다. 마치 천군만마가 떠나고 남긴 우물, 가마, 웅덩이들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듯 했습니다. 일행 중 다른 한명은 천완(天完) 황제 서수휘(徐壽輝)가 대별산에 주둔한 10만 천완병사들이 밥을 지어 먹던 곳이 아닐가고 추측했습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가 지금 구름안개로 되어 이 깊은 산골짜기를 휘감고 있는 것이 아닐가? 게다가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이곳에는 말이 울어대는 소리가 가끔 들려 기암괴석 경관에 신비한 색채마저 더했습니다.

이렇게 천연적으로 생겨난 우물, 가마, 웅덩이 형태의 바위들은 가까이에서 보니 옛날 시골에서 쌀을 찧던 돌절구들 같았습니다. 아가리가 작고 몸통이 크며 바닥이 납작하고 아가리에는 갈았던 흔적이 뚜렷했습니다. 어떤 돌절구 형태의 바위는 양귀비 욕조처럼 바닥까지 보이는 맑은 물이 듬뿍 담겨져 있고 또 어떤 돌절구 형태의 바위는 메마른채 모래와 자갈들이 남겨져 있는데 그 속에에서 식물이 자라나 있었습니다.

기암괴석들이 가득한 이곳은 걸음마다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져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대체 이런 신기한 경관은 어떻게 형성된 걸가요? 동행한 지인의 소개에 따르면 거대한 물줄기가 수백만년간 바위에 끊임없이 충격을 가하고 세탁하고 마찰해 절구형태의 바위들이 형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대자연의 조화로 만들어진 신기한 자연경관은 우리에게 그저 놀라움을 선사할 따름이였습니다. 자연이 빚어준 선물을 한껏 감상하고 나서 발길이 향한 곳은 유명한 인문경관 오씨효자사(吳氏孝子祠)였습니다.

독존산(獨尊山) 고인돈촌(古人墩村)에 위치한 효자사는 명나라 오씨 후손이 원나라 때 세운 패방을 기초로 지은 것입니다. 효자사는 전목구조이고 지붕의 네 귀퉁에 채색 꽃무늬가 그려져 있습니다. 패방은 네 돌기둥이 지탱하고 있고 문이 총 3개며 4층으로 되었는데 높이가 5.12미터, 넓이는 4.52미터입니다. 돌기둥마다 용, 봉황 부조가 새겨져 고풍스러우면서 장엄합니다. 패방의 가운데는 "오씨효자사"란 글자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효자사의 가운데는 2미터 높이에 1미터 넓이의 청석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비석에는 "효자 오대중 정표"란 문구가 적혀져 있습니다. 이 비석은 원나라 인종황제가 오대중을 효자로 봉하고 오대중의 효행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 비문을 적었던 것입니다.

전한데 의하면 오대중의 부친 오계익(吳季益)은 원나라 항쟁 실패 후 망국의 아픔으로 늘 우울해 있었습니다. 부친의 마음을 달래고 부친이 편히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오대중은 모든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결국 부친은 지병으로 돌아갔고 오대중은 부친의 묘 옆에 오두막집을 지어 모친 진씨를 모시면서 효심을 다했습니다. 그러다 모친이 90세를 넘어 지병으로 돌아가자 그는 또 모친 묘 옆에서 15년을 지켰습니다. 이 일은 조정까지 전해졌고 인종황제는 황경원년(皇慶元年) 즉 기원1312년에 성지를 내려 오대중을 "오씨효자"로 칭하고 그에게 한림원 시제(侍制) 봉의대부(奉議大夫) 직책을 봉했습니다. 연우(延祐)5년 즉 기원 1319년 오대중이 세상을 떠나자 조정에서는 어장(禦葬)에 쓰일 임금을 지급했고 관리들에게 령을 내려 장례식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그 후 효자사와 패방을 세워 그의 효심과 효행을 널리 알렸습니다. 오대중의 효심과 효행은 지금까지도 전해져 하포인들에게 좋은 귀감으로 되고 있습니다.

하포진을 돌아보면 독특한 형태의 기암괴석과 효행을 숭상하는 오씨효자사가 한데 어울려 자연과 인문이 통일을 이룬 진귀한 풍경구라는 느낌이 듭니다. 하포진의 기암괴석 경관이 우리의 마음을 탄복시켰다면 오씨효자사 경관은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었습니다.

번역/편집: 권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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