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이 지면 구름은 저 하늘가에 발길을 머물고 바다물은 백사장 깊이까지 들어온다. 숨을 죽이고 귀를 곤두세우면 조수속에서 천지만물의 미세한 숨소리가 들린다. 눈을 들어 저 멀리 바다기슭의 하늘가를 바라보며 우리는 어둠의 장막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공기속에서는 야성적인 바다의 숨결이 익숙하고도 신선한 비릿내를 안고 우리를 향해 날아든다. 하여 귀방울과 양미간은 온 천지에 가득한 물방울에 젖어 습하고 시원하고 조금은 차지만 온 몸이 날아갈듯, <반약삼매경(般若三昧經)>을 금방 읽은 듯, 그 정교하고 미묘하고 깊은 흔연함을 느꼈다. (사진설명: 어둠이 깃든 보타산의 바다)

야색이 천지의 광활함을 감싸고 달이 벌써부터 공중에 걸려 온 천지에 우주의 맑음과 찬란함이 가득해서 하늘을 가로 지난 옅은 은하가 보이고 바람속에서 움직이는 아득히 먼 천체(天體)가 느껴진다. 이 때면 귀가에는 제멋대로 시끄러운 소리와 지지배배 소곤거리는 소리만이 한 단락씩, 한 구간씩 들려와 혹은 격정을 혹은 부드러움을 안겨준다.

뒤에는 낮에 관광객들로 붐비던 불정산이 검은 그림자만 남기며 온 하늘에 가득한 별을 배경으로 조용히 솟아 있다. 밤 바람이 지나는 곳에는 파도가 수림처럼 일어서고 우렁찬 파도가 서로 부딪쳤다가는 헤어진다. 암흑속에서 무거운 힘이 우리의 마음을 억누른다. 이 것이 혹시 인생의 한 가지 경지이리라?

우리는 말없이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진 바닷가에 앉아 있었다. 무엇을 깨달은듯한 평화와 조용함이 거대한 우렁참을 안고 떨리는 마음에 스며든다. 떠들썩함속에 더 깊은 정막과 조용함의 극치가 있어서, 즉 적막이 없고 평범한 조화만이 있어서 천지간 무물(無物)무아의 공간에 빠져들게 한다.

거대한 조수가 마음의 잡념을 가셔주어 마음은 파도를 따라 선양하고 별빛과 달빛이 마음속에 빛과 그림자를 던져주어 끝간데 없는 불교 교리로 선(善)의 다른 의미를 보여주는듯 하다. 속세에 이렇게 깨끗하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경지가 있을까? 아마도 불교의 교리가 속세에 전해지는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리라. 파도소리로 넘치는 백보사의 밤에 나는 끝내 그런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은듯한 모든 창상지변이 보여주는 그런 영원함과 순간의 유혹을 느꼈다.

밤이 점점 깊어져 하늘은 더 공명하고 맑은 파도소리는 이 남쪽 나라 불교의 밤에 속세를 벗어난듯한 신비함과 안온함을 더해주었다. 암초사이에 기생하는 연체동물들은 부드럽고 둥근 몸체를 유유히 펴면서 파도의 애무를 기다린다. 크고작은 게들은 무거운 껍데기를 이고 조금은 찬 달빛속을 걸어간다. 정교한 게의 껍데기는 비스듬히 저 파도속을 가리키고 반은 투명한 게의 발은 백사장에 알지도 못하는 글을 쓴다. 마음이 닿는 곳에서 심경이 이루어지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생명의 흔적은 줄곧 이어지는 이 천지우주 만물의 호흡속에서 영원함으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