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중국고대 저명한 정치가, 군사전략가였던 강태공(姜太公) 탄신 3145주년이 되는 해이다. 제3회 국제 제(齊)문화관광 축제가 최근 열렸다. 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중국 대만 등지와 대륙 각지의 강태공의 후손대표 수천명은 12일 제나라 옛도읍인 산동성(山東省) 치박시(淄博)의 림치(臨淄)에 모여 공동의 선조 강태공에게 제를 올렸다.
역사기재에 따르면 강태공은 성이 강(姜), 이름이 상(尙)이었으며 자가 자아(子牙)로 동해 해빈(海濱) 출신었다. 서주(西周) 초년, 주문왕(周文王)은 강태공을 "태사"(太師)로 봉했으며 강태공은 선후하여 주문왕과 주무왕을 보좌해 상나라를 멸망시켰다. 혁혁한 공훈으로 강태공은 제나라를 분봉받았으며 주조시기 제나라의 개국 국군으로 되었다. 국가를 다스리는 과정에 강태공은 현명한 자와 공신을 두루 중용했고 유능한 자를 발탁해 그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했으며 의례를 간소화하고 각지의 실제에 맞게 적절한 대책을 세웠으며 상공업을 크게 격려해 제나라의 국력을 급속히 신장시켰다. 이는 제나라가 이후 "춘추오패"(春秋五覇), "전국칠웅"(戰國七雄)으로 군림하는데 든든한 기초를 닦아주었다.
강태공의 후손들은 몇십개의 성씨로 나뉘어 국내외 각지에 수천만명으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그중 구(邱)씨성을 가진 후손만 5백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날 제사행사는 세가지 의례로 진행되었다. 현대식 제례, 한국민간의 전통 제례의식과 중국 및 해내외 중국인화교들의 전통 제례의식(타이) 등이다. 현지 정부는 각 나라와 각지의 문화형태를 존중해 차례대로 세가지 의식을 진행했는데 이번 행사를 거쳐 전통문화속에 아직 잊혀지지 않은 강태공의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이번 제례행사 사회는 한국진주(晉州)중앙강씨종친회 회장 강현송(姜顯松)씨와 중화구(邱)씨종친 연의회 회장 구가유(邱家儒)씨가 맡았다. 그들은 강태공의 혈맥을 이은 후손으로 조상이 창조한 중화문명에 대해 특수하고도 "언어로 다 표현할수 없는 혈육의 정감"을 느낀다고 말하며 이같이 위대한 인물의 후손인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대만과 국외에서 온 강태공 후손들이 제를 올리고 있다.

사진설명: 한국에서 온 강태공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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