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皇帝)와 염제(炎帝)는 중화민족의 공동의 시조로 불리운다. 세계 대부분 민족의 문명이 신화전설, 또는 서사시에서 기원된 것과 마찬가지로, 염제와 황제도 중국 태고 전설 중의 인물이다. 중국인들은 염제와 황제를 자기의 선조로 높이 모신다. 하지만 염제와 황제의 진실성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현재까지 결핍하다.
일반 설법에 따르면, 염제와 황제는 각기 중국 원시사회중 두 부락의 수령을 가리킨다. 전한데 의하면 염제족과 황제족은 최초 중국 서부의 섬서성 일대에 거주했었다. 이곳은 중국의 모친하로 불리우는 황하의 경유지이다. 이는 세계의 모든 문명이 강의 연안지역에서 기원했다는 것과 일치하다. 그후 황제족은 최종 북방의 하북(河北)성 북부에 정착하고 염제족은 동부의 산동지역에 정착했다.
거듭되는 이전과 전쟁, 합병을 통해 황제족과 염제족은 동방에 거주한 이족과 남방의 리족, 묘족 등과 점차 융합되여 최초의 화족(華族)으로 통일되었다. 당시 중원지역의 민족과 부락 중 황제족이 비교적 강하고 문명정도도 비교적 높아 중원문화의 대표로 되였고 염제와 황제는 한족의 시조로 되였다. 기원전 2세기로부터 화족을 한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중화민족을 흔히 염황자손, 또는 황제자손이라고 부른다.
황제에 관한 신화전설은 매우 많으며 서로 판본이 각이하다. 전한데 따르면, 황제는 태어날 때부터 평범치 않았다. 대지 신의 딸이 낳은 화아제는 태어나서 말을 번졌으며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고 뛰여난 재질을 보였다. 어른으로 된후 황제는 25명의 아들과 만명의 제후를 가지게 되고 제후 중 7000명은 여러가지 사무를 주관하는 신령들이었다. 그리고 자연계의 바람과 우뢰, 비, 번개는 모두 황제가 관리했으며 황제는 하늘의 14가지 조화를 불러올 수 있었다. 황제는 4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어 목을 돌리지 않아도 사면팔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복을 마련하기 위하여 황제는 오곡 파종법을 배워주고 새와 짐승, 벌레를 길들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황제는 또한 천 짜는 방법을 발명했으며 광석을 채취하고 철기와 동기를 제조하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전수했다. 이어 황제는 창힐(倉?)에게 문자, 령륜(伶倫)에게 악률, 대요(大撓)에게 일력, 기백(岐伯)에게 의서를 만들도록 명령하여 사람들의 생활, 생산과 오락에 편리를 제공했다.
황제의 신화전설에 관해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자기의 해석이 있다. 역사학자들은 전설 중의 황제시대에는 인류 석기시대의 기나긴 시기가 포함되여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염제와 황제의 역사 원형에 대해서는 아직도 더한층 고고학 발굴과 역사적 연구를 진행하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