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도시건설은 중국 문명의 중요한 구성부분이다.
한 문명의 발원지를 도시로 간주할수 있는가 하는 것은 거기에 고정된 주민촌과 방어적인 시설, 그리고 수공업작업소와 상업시장이 있었는가를 보아야 한다.
2002년 중국 중부 안휘성에서 발굴된 함산릉가탄(含山凌家灘)원시부락유적은 중국에서 일찍 5500년전에 벌써 도시가 나타났다는것을 증명해주었다. 현재 넓은 면적의 곡식에 뒤덮인 릉가탄은 원고시기 번화하고 들끓는 도시였다. 160만평방메터나 되는 릉가탄은 대형궁전과 사묘 등 표식적인 건물과 분포가 정연한 살림집과 묘지, 호성도랑, 수공업작업소, 시장, 많은 례기(禮器)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그 당시의 양식업과 목축업, 수공업이 초보적인 규모를 형성하였다는것을 말해준다.이에 앞서 중국의 제일 이른 도시는 산동(山東)성 일조(日照)시 오연(五蓮)현 단사(丹士)마을에 있었는데 현재까지 40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고학인원들의 발견에 의하면 릉가탄은 대체로 3개 구역으로 구성되었다.첫번째 구역은 보통부락성원의 거주구역과 정원으로서 현저한 도시계획과 알뜰한 설계흔적을 가지고 있다. 이 구역에서는 대량의 도자기조각이 출토되었다. 두번째 구역은 3000평방메터나 되는 붉은 도자기흙덩어리광장으로서 부락수령들의 궁전구역과 부락회맹과 제사, 훈련장소였다. 고고학전문가들은 이것은 부락의 정치와 군사. 문화센터이며 옛성의 중심이라고 하면서 이것은 그 당시 고도의 문명과 강한 세력을 보여준다고 했다. 세번째 구역은 대형묘지구역으로서 한 가운데는 높이 약 한메터나 되는 제단과 순장품인 옥기와 석기, 도자기 등이 있다.
기원전 2000여년의 중국 상주시기부터 대규모적인 도시건설활동이 벌어졌다. 지난 세기초 하남(河南) 안양 (安暘)에서 발견된 은허(殷墟)는 상조후기의 도읍유적이였다. 유적에는 계선이 분명한 궁전구와 주민구, 수공업구와 묘지구, 호성하 등 방어시설이 있다. 이것은 그 당시 상도성은 이미 상당히 발전한 도시였다는것을 말해준다. 1983년 하남 언사사향구(偃師尸鄕溝)에서 발견된 상(商)나라조기도시유적은 그 면적이 200만평방메터나 되고 도시내에는 규모가 비교적 큰 궁전기반유적이 있다. 1999년 중국 고고학인원들은 안양에서 또 네번째 상나라도읍인 환북상성(洹北商城)을 발견하였다. 환북상성궁전기반유적군은 25개의 다진 단체(單體)흙기반으로 구성되었다. 그중 1호기반유적은 동서길이가 170여메터이고 남북너비는 90메터이며 총면적은 만6천평방메터이다. 기반유적과 기둥,동굴, 계단 등은 모두 완벽하게 보존되여있다. 이것은 현재까지 발견된 규모가 제일 큰 상나라 단체건축기반유적이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시키고 중국을 40여개 군, 1000여개 현으로 나누었다.이때로부터 중국도시건설이 진일보 발전하게 되었다. 지금 중국의 많은 도시들은 그 당시의 군과 현소재지로부터 발전해왔으며 지금까지 그당시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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