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섭
1
쪽방촌 골목길로 한물 간 빨간 승용차가 빵빵ㅡ 요란스레 경적을 뽑아 주위를 시끄럽게 굴었다. 언녕 나설 차비를 하고 문턱에 나앉아 있던 지순이 인츰 일어나 밖을 나왔다.
ㅡ 아따, 빨랑 와!
조수석에 앉은 남자가 차창으로 숫사자처럼 텁수룩한 머리를 쑥 뽑아들고 짜증어린 호령을 내질렀다.
지순이 달음박질로 뛰여가 승용차 뒤좌석에 들어앉았다. 남자는 지순이를 힐끔 보고 머리짓으로 운전수녀자를 가리켜 내 친구야 하고는 신난듯 어깨까지 으쓱했다. 지순이 오늘 이 녀자신세를 입게 되는구나 싶어 미안쩍게 고개를 끄덕여 안녕하세요? 수고 끼치겠네요 공손히 인사를 건네는데 녀자는 얼굴을 반쯤 돌려 응대를 하는둥마는둥 하고는 부르릉ㅡ 차를 앞으로 내몰았다.
지순의 립장에선 전번처럼 남자와 둘이서 기차 타고 가기보다 호사스러운 점은 있다만 피차간 한 남자와의 관계가 애매한 낯선 녀자의 신세를 입는것이 못내 거북했다.
매년 외국인등록증년검수속을 밟을때마다 지순은 필수 동행자인 "남편"이 이탈저탈 쉽게 나서주질 않아 애간장이 탄다. 한국 남자와 결혼수속을 밟고 한국 땅에 발을 들여놓기 바쁘게 지순의 본남편은 브로커에게 맡겼던 칠만오천원이 든 저금통장의 비번을 넘겨주었다. 지순은 계약서대로 그걸로 돈거래가 마감되는줄로 알았는데 와보니 그게 아니였다. 한국서 부부관계가 유지돼야만 무시로 닥치는 출입국관리국의 검문을 무사통과해 합법체류가 보장되는만큼 지순은 한국 "남편"에게 의뢰해야 일이 늘 있었고 그래서 울며 게자먹기로 그의 "와이프"흉내도 가끔내야 했다.
지순은 남자와 외국인등록증수속을 밟으러 가자고 청들었다. 남자는 또 심드렁하니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었다. 고정직도 없는 백수가 왜 그리도 다사다망한지 요즘엔 일이 바쁘다며 보채지 말라고 짜증 낸다. 등록기일이 며칠 안남았는데도 남자가 꿈쩍 않자 결국 안달아난 사람은 지순이다.
그러던 남자가 술에 취해서 그녀가 잠자리에 들 시간에 문뜩 세방을 찾아왔다. 마치 먹이 구하러 나선 하이에나 눈빛을 빼닮은 음충맞은 눈길이 보기에 심상치 않아 지순은 협조에 대한 기대보다는 불안감이 앞섰다. 남자는 오랜 고행끝에 집에 도착한 남편행세로 거만스레 녀자를 시켜 맥주를 가져다 주안상을 놓게 했다. 어차피 남자의 협조를 받아야 할 일이 있고 하니 녀자는 그쯤은 군말없이 해준다.
남자는 술이 싫다는 그녀를 막무가내로 상에 앉혀놓고 함께 술잔을 들었다. 신세타령을 전주 삼아 또 돈구걸이다. 친구연줄로 지금 가구공장에 취직이 가능하게 됐는데 조선족들이 막 밀려들어 닥치는대로 일자리를 차지하는데다 실업자가 눈덩이 굴듯 날마다 늘어나는 한국에서 취직이 어디 헐은 일이냐? 빈말로는 안될 일이니 사장님한테 후한 인사를 차려야 할것이란다. 보다싶이 자기는 현재 생활여건이 변변찮으니 오십만원만 빌려주소 이제 취직이 돼서 돈을 벌면 돌려올것이고 앞으로 수입이 있게 되면 다시는 돈소리도 없을테니 피차간 다 좋잖냐고 엉너리도 친다. 남자는 지순이한테서 돈을 빼갈 때면 종래로 거저 달라는 법이 없었고 빌려간후에는 한번도 갚은적이 없는 사람이다.
남자의 메기입에서 돈소리가 터진다. 지순은 벌써부터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얼굴에 안타까운 표정이 되였다.
ㅡ전번에 삼십만을 가져가구서... 두달도 안됐는데 또 오십만을 달라믄 어떡하요. 내 무슨 돈 낳는 기곈가요?
ㅡ닌 글두 일할데 있어갖구 벌잖노. 니기 돈 없으믄 이 강백수가 돈 있단말인기여? 니 이기와 맘대루 나다니구 돈 버는게 다 누구덕인지 알기나 해?
브로커의 고용인신세에 제돈을 벌고서는 제쪽에서 무슨 큰 은혜나 베풀어준듯이 큰소리 탕탕 치며 거만을 부리는 꼴이 여간 뻔뻔스럽지가 않다.
ㅡ지금 한국 와서 돈 벌기 어디 쉬워요? 식당에서 오전 열시부터 저녁 열한시반까지 손발이 부르트게 일해서 겨우 백이십만원 받는다구요. 거기서 봐요. 방세, 전기세, 물세, 가스비같은거 떼구 소비를 내놓고나믄 남는게 몇알 된다구요. 환률이란거는 형편없이 떨어져 어전 륙도 안되는데 아직 올 때 진 빚도 채 갚지 못했어요!
ㅡ아따, 안줄라카믄 관둬! 씨바, 이담부턴 아무 일 있어두 이 남편을 찾지 말라카이. 알았어?!
남자가 술잔을 콱 놓으며 성 내고 일어설때는 벌써 맥주병 네개째가 굽나 번져지고 있었다. 남자가 눈알을 희번득거리며 성난 사자처럼 우락부락 설쳐댈때면 지순은 고양이 앞에 나선 쥐꼴이 되고 만다. 집에서는 라면, 빵에 짠지따위로 때식을 에때고 수도물을 끓여서 식혀 마시면서 아글타글 돈을 모으는 그녀의 사정은 남자의 념두에도 없다.
남자가 배짱치기를 하며 결별할듯 신을 신자 지순은 바빠맞았다.
ㅡ즈금 공자도 못타구 돈이 바빠서 그래요. 좀 있는걸로 이제 등록비를 내야지. 지난달 방세도 아직 못냈어요. 삼십만을 가져가면 안돼요?
ㅡ고것 갖구는 모자란다카이. 정 그라믄 사십만원만 줘봐!
구걸하는 처지에도 특세를 대고 흥정하듯 배포유하게 배짱 세우는 남자에게 지순의 사정얘기는 먹혀들지 않는다. 남자를 등지고 괴춤속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에 감아싼 돈뭉치에서 사십만원을 갈라 남자에게 넘겼다.
식욕과 물욕을 채운후에도 남자가 녀자한테서 얻고 싶은것은 의연히 있었다. 당금 간다던 남자가 돈을 챙겨넣고는 신던 신을 차던지고 슬금슬금 구들을 올라와 능란한 솜씨로 녀자를 와락 끌어않고 넘어졌다.
ㅡ난 아저씨와 정말 이거 하기 싫단말이예요. 물러나요!
ㅡ좀 가만있어봐! 우린 어쨌던 부부잖아...
말 그대로 폭력이다. 왕강하게 항거하자 그 소리가 싫다고 옆집에 사는 외톨이가 흥분한듯 신발로 문을 쥐여박는 소리가 탕탕 몇번 들렸다.
갖 한국을 왔을 때 남자는 식당일을 하는 지순이를 찾아와 자기집에 가자고 했다. 지순은 백수외톨이네 집에 가기 싫은데다 이미 계약금도 다 주었기에 꼭 가야할 의무는 없다는 생각에 거절을 했었다. 그런데 정작 지내보니 피치못할 사정이 또한 없는게 아니였다. 출입국관리국에서 섭외결혼의 진가확인을 위한 방문조사가 때론 느닷없이 집에까지 들이닥치는 바람에 집에 최저한 부부생활양상을 보여줄수 있는 증거물이 있어야 했다.
흔적을 남기려고 지순은 부득불 남자의 세방에 가서 란장판인 집안을 말끔히 치우고 함께 저녁을 지어먹었다. 다음엔 첫시작부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남자의 손에 잡혀 어쩔수 없이 함께 밤을 지냈다. 시름놓고 한국에 체류하고 장차 또 영주권까지 따기 위해서는 남자와 인맥을 영 끊을수도 없는 일이였다.
2
한 반시간쯤 달리다 도로왼편에 붉은색을 많이 먹은 주유소가 보이자 녀자는 그쪽으로 핸들을 틀면서 남자 보고 차가 기름이 떨어졌다고 했다. 가격현시판에 나타나는 리터수와 가격수치가 정비례로 번개불처럼 반짝반짝 올리뛰기를 한참 하다 툭 멈춰섰을때 금액은 23만원으로 나와 있었다. 주유도움이 기름탱크아가리에서 주유기를 꺼내 걸고 운전석을 바라보는데 녀자는 못본체 걸레로 운전대와 실내 계기들을 닦는데만 전념했다. 진작 속타산이 있었던 남자가 뒤석을 돌아보고 ㅡ우리 일로 수고하는건디 기름값이야 우리 내야디ㅡ 넌지시 귀띔했다. 지순의 외국인등록증수속을 밝으러 가는 마당에 우리일이란 바로 지순의 일이라는 말과 같아서 지순은 자기를 독촉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전번처럼 둘이 기차를 탔더면 왕복에 3만원도 안들 교통비를 23만원이나 파해야 하니 이건 제돈 팔아 남의 배를 실컷 불려주고도 신세지는 꼴이 아닌가? 그러잖아도 남자가 자기 녀친이 승용차로 태워준다고 할 때 지순은 어쩐지 껄끄러운 생각이 들었는데 바가지르 쓰게 됐다.
돈을 꺼내 주유원에게 넘겨주는 지순의 손은 바르르 떨렸고 코등엔 열띤 땀이 내배였다.
동백출입국관리사무소에 다달았을때는 오전 열시를 갖 넘은 때라 내근들이 한창 실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업일군이 상앞에 와 앉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서 상투적인 물음을 몇개 던졌다.
ㅡ두분 진짜부부 맞아요?
부부관계로 외국인등록증을 내러 온 사람이 진짜 부부 아니라 할 사람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묻는걸 봐선 아마도 그런 확인이 필요한 모양이였다. 진가구별이 어려운 애매한 부부가 얼마나 많았으면 첫마디에 이런 불순한 질문이 터질가 싶기도 했다. 하긴 진짜와 가짜부부를 알아내는게 어디 위조지페감별기로 가짜돈을 가려내듯 쉬운것은 아니였다. 둘이 벌써 법적수속을 밝고 함께 먹고 잔 경력까지 가진이상 단지 서로 갈라져 지낸다는것만으로는 판단이 어렵다. 검문조사에서는 당사자와 브로커사이 돈거래문서나 령수증을 진가판정의 하나 유력한 증거로 삼으나 그것 역시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다. 진짜결혼자들도 중매인에게 일정한 소개비를 지불하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는 계약서도 쓰니 말이다. 그러기에 한국에는 진짜부부가 박복하게 위장결혼에 걸려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갈라져 울며불며 강제송환을 당하고 가짜부부가 진짜로 인정받아 서울을 활보하며 의도대로 돈벌고 국적 따는 이들이 적잖은가 보다.
ㅡ맞습네다! 예ㅡ 진짜 부부죠 뭐.
ㅡ진짜 부부 맞아요.
비여있는 집이 울리는듯한 남자의 확신어린 웅글진 대답이다. 사업일군은 이어 지금 한집에 살고 있느냐, 부부감정은 어떠하냐, 무슨 일을 하고들 있느냐 등등의 공식적인 물음을 련달아 던지고는 그 대답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수속을 해주었다.
외국인등록증수속비와 관리비를 합쳐 16만 4000원이 나왔다. 남자는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표정 남산보듯 창밖에 눈길을 던졌다. 자기가 이렇게 수고를 마다하고 협조에 나서준것만해도 고맙게 여기라는 태도였다. 남자의 그런 심사를 지순은 처음 수속을 밟을때부터 이의없이 받아들였고 오늘도 례외는 아니였다.
지순은 돈을 낸후 사무소를 나오자 남자가 지순에게 승용차문까지 열고 등을 슬쩍 쓸어주며 별스레 선의를 드러냈다. 지순이 주춤하고 버텨섰다. 인젠 수속도 다 끝났으니 한시급히 그들과 갈라져 제멋대로 따로 가고 싶었다.
ㅡ두분 따로 볼일이 있겠는지 가보셔요. 전 기차로 먼저 돌아가겠어요.
ㅡ열두시가 다 됐구머이 점심꺼정 안먹구 배고파 어떻거야? 부담 같지 말구 같이 가서 밥이나 간다이 먹자. 어서 타.
지순은 고양이 쥐생각 하듯 관심어린 태도로 등을 떠미는 남자 손을 뿌리치고 돌아설 주대는 없었다. 어쨌거나 자기일로 걸음을 판 사람들한테 너무 야박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따라다니자니 별로 재밌을것 같지 않았다. 남자 비위를 잡혀놓았다가 이제 또 무슨 심술을 부릴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간 부담 같지 말라와 간단히 먹자는 말에 다소 안심이 되는지라 지순은 그런대로 차를 탔다.
음식점에서 남자가 복무원 손에서 메뉴를 받아 유심히 들여다보자 지순은 속이 조마조마해났다. 간단히 밥이나 먹자면서, 그저 국밥이나 올리라면 될것이지 메뉴는 왜 저렇게 눈이 꺼매 들여다 본단인가?
한식경이나 메뉴를 살피던 남자가 침을 한번 꿀꺽하고 복무원에게 료리주문을 했다.
ㅡ장어생선구이 하나 하구예...
그리고 남자는 메뉴를 맞은편 녀친에게 넘기며 오늘 수고 많았다며 사의표시를 앞세우고 소원인 료리를 하나 짚으라 했다. 녀자는 미리 생각이 있었던양 메뉴를 받아 피끗 보고는 쇠갈비찜을 주문했다. 메뉴는 다시 남자 손을 거쳐 지순의 앞에 옴겨졌다. 이렇게 제가끔 소원인 료리를 주문하다 보면 나중에 값은 얼마나 나오고, 결산은 누가 할지? 그런 근심에 쌓여있던 지순은 먹고싶은 생각보다 돈걱정이 더 컸다. 식미란 정서가 동반되는것이여서 침울하고 불안한 심리상태에서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 법이다.
ㅡ난 별로 먹고 싶은거 없어요. 그만하면 되잖아요?
될수록 적게 주문하기를 바라는 그녀 마음을 남자가 헤아릴리 없었다.
ㅡ익. 사램이 셋이서 두개만 갖구 되것나. 하나씩이야 돼야디
남자는 메뉴를 끄당겨 또 한번 훑고 지순의 몫까지 하나 더 주문을 했고 거기다 "참이슬"과 맥주도 두병씩을 덧얹고서야 흡족한 듯 건가래를 떼고 담배를 붙여물었다. 간단히 에때자던 사람이 완전히 술판을 버젓이 벌릴 작정이다.
남녀가 안아무인격으로 색기 다분한 눈길을 번다스레 흩날리며 잔치기로 술을 먹었다. 녀자는 남자가 따라준 맥주를 뾰족한 입으로 홀짝거리고 남자는 녀자가 따라준 소주를 꿀물켜듯 했다. 지순이는 남자가 배려하는척 한잔 부어주는것을 사절하고는 술판에서 아예 외면당했다.
3
남자가 일어서 거슴츠레한 눈으로 지순이 보고 오늘 넣고 온거 없어. 먼저 결산해. 한마디 귀띔하고는 녀친을 데리고 휭하니 문을 나섰다. 지순이 조급해 신발도 채 신지 못하고 불렀다.
ㅡ저...저기요. 저 돈이 좀...
그 말에 돌아 온 대답은 남녀가 문밖으로 사라진뒤 덜컥! 하는 문소리뿐이였다. 등을 떠밀려 동굴속을 들어가듯 마지못해 카운터로 다가간 지순이 영업원이 불러주는 식비에 그만 환장할 정도의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예? 어리둥절해 반문했다.
ㅡ21만 3000원이라구요!
영업원의 재차의 대답에는 짜증섞인 언성이 부가됐다. 지순은 마치 남의 귀중한 애완물을 마사먹은 어린이처럼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돈이 자랄가?!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핸드빽을 더듬어 돈을 꺼냈는데 아니나 다를가 모자랐다. 그녀는 다시 핸드빽의 이구석저구석을 샅샅이 뒤져 천원짜리와 백원짜리까지 가리지 않고 죄다 끌어냈다. 그래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호주머니에 널려있던 잔돈까지 모아 겨우 값을 치르고나서야 안도의 숨을 쉬였다. 수모감과 비분에 질린 해쓱한 얼굴로 밖을 나온 그녀의 심정은 하나 슬쩍 다쳐만놔도 와ㅡ 울음보를 터뜨릴 어린애처럼 울먹거렸다.
차를 세웠던 자리에 차가 보이지 않아 황황히 사위를 살피다 섬찍하니 놀랐다. 차는 벌써 궁둥이를 돌려대고 저만큼 꼬리표를 놓고 있었다. 분명 그녀를 잊고 가는 것은 아닐텐데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허우적대며 ㅡ이봐요ㅡ 서요! 같이 가요...소리 지르며 허겁지겁 뛰였다. 점심전까지만 해도 그들차에 앉기가 그처럼 싫더니만 지금은 앉지 못할가봐 안달아났다. 차가 바람을 스치듯 아무 반응도 없이 차행렬속에 빨려들어가서야 그녀는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격으로 멍해졌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피끗 떠올라 핸드폰을 꺼내 남자 전화번호를 눌렀다.
ㅡ이봐요, 같이 가잖구 어디를 가는가요? 같이 가요?!
ㅡ우리 지금 가볼데가 있어 가니까이. 니는 먼저 돌아가라잉
남자 목소리가 ?은 개살구처럼 매몰스레 귀청을 때렸다. 지순이 급해맞아 소리쳤다.
ㅡ이...이봐요! 내게 지금 차비도 ...
말이 채 끝나기전에 대방의 핸드폰은 말을 뭉청 잘라먹고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ㅡ여보세요! 여보세요! 와이?
분노에 찬 눈길로 남녀가 사라진 쪽을 쏘아보던 그녀의 눈에서 마침내 참고 견뎌왔던 눈물이 물주머니 터지듯 흘러내렸다. 목구멍이 찢기듯 악에 받친 질타가 앙킬지게 터지며 주위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야ㅡ 개새끼야!
아직도 부스럭돈이 조금 남아있었다. 그러나 기차역을 통하는 선로뻐스는 바라보지도 못하고 걸어서 가는데 좋이 한시간은 걸렸다. 뽀족구두에 조여 부르튼 발이 알알해났다. 돈을 깡그리 끌어봤자 고한지까지 가는 기차표는 끊을수 없었다. 벽에 붙은 가격표를 올리다보니 고한지까지는 못가도 한성군까지 가는 표는 끊을수 있었다. 오천칠백삼십원으로 기차표를 끊자 이젠 빵 하나 살 값도 남지 않았다.
한성군을 와 기차에서 내려 버스정거장을 지나던 지순은 뻐스 타는 려객들을 멍해 바라보았다. 저 마을버스를 타면 집까지 가는데 한시간도 안걸릴텐데... 푼돈이 이렇게 절박히 그리워본적은 머리털이 나서 여직 종래 없었다. 막연히 서있다 결심을 굳힌듯 차바퀴가 굴러가는 아스팔트도로를 따라 두발로 "장정"을 시작했다.
을씨년스럽던 하늘에서 무리새가 지나며 물똥 갈기듯 여기저기에 비방울을 내리던졌다. 당금 비가 내릴거라는 예고인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지순은 우구를 준비못했다. 혹여나 해서 슈퍼를 지나다 들려 우산값을 물어보니 제일 눅거리가 천오백원이였고 일차성비닐막박비옷도 천원이하는 없었다.
비에 흠뻑 젖어 휘청휘청 셋방까지 왔을때는 날이 어두웠다. 한걸음도 더 내디딜 맥이 없었던 그녀는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물창봉이 된 몸으로 구들에 나동그라졌다. 스스로도 너무나 가련한 꼬락서니에 설음이 북받쳐 눈물이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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