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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천 재해지역을 주목하고 있는 여 촬영가 이예(李銳)
2010-01-04 18:19:15               
cri

(사진: 여 촬영가 이예의 '문. 피안'이란 촬영집)

젊은 여 촬영가 이예는 2008년 5월12일 사천문천대지진이 발생한 그날로 문천을 찾았습니다. 지진때문에 처음 문천을 찾았던 그녀는 현재 문천과 떼여놓을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2009년 봄, 이예의 촬영작품집 "문.피안"(汶.彼岸) 베이징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그는 촬영집 전시로 취득한 수익금을 전부 지진재해지역 어린이 돕기에 기부했습니다.

문천을 찾은 첫날, 이예는 자신의 능력미달로 재해 현장을 제대로 촬영할수 없어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이예의 당시 심정을 직접 들어보시죠.

"처음으로 문천을 찾았던 2008년 5월12일, 당시 저는 촬영기자 신분이였고 뉴스 기자였습니다. 직업상 비록 문천을 찾기는 했지만 저는 도저히 촬영해 나갈수가 없었습니다. 여성인 제가 그토록 참혹한 현실을 촬영하기에는 너무나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전쟁이나 일부 큰 범위의 재난 촬영은 자신에게 정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주간의 취재를 마치고 이예는 베이징으로 돌아왔습니다. 재해후의 참상은 이예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몸은 비록 베이징에 있지만 이예의 마음 한구석에는 재해지역 피난민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당시 목격했던 재해민들의 막막한 눈길, 친인을 잃은 서러운 울음소리, 또 고인에 대한 존중과 생존자에 대한 사랑, 자원봉사자들이 보여준 감동적인 소행이 머리속에서 떠날줄을 몰랐습니다. 이예는 그들의 생활에 어떤 변화라도 있는지 궁금했고 그들을 찾아 직접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이예의 얘깁니다.

"당시 저는 한동안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재해지역을 찾자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일반인들의 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활동하는 편입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한후 일정 시간이 흐른후 그곳 주민들의 생활은 어떠한지를 주목하고 창작활동을 하는 거죠."

2008년 올림픽후 이예는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동안 줄곧 재해지역 상황을 주목해온 그는 그때가 가장 적합한 시기였다고 판단했습니다. 지진 당시 재해지역에서 해외어린이기금회 관련인원과 얘기하는 과정에 그는 앞으로의 일정을 확실하게 정했던것입니다. 이예의 말입니다.

"저는 반년후 다시 재해지역을 찾자고 계획했습니다. 책도 내고 전시도 하고…마침 해외어린이기금회도 저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여 저희들은 협의를 보았는데 그들은 저에게 일부 도움과 자금적인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이예는 2008년 10월에 정식 사직하고 다시 문천을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진짜로 문천을 찾은것은 그해 12월이였습니다. 12월은 문천이 가장 추운계절입니다. 그러나 이예는 행장은 물론 카메라와 천여개의 필름을 휴대하고 두번째로 문천을 찾았습니다. 그번에 이예는 초첨을 문천에 맞추었습니다. 문천에 체류하는 백여일간 이예는 38개 크고 작은 마을을 지도를 펼쳐가며 다 돌아다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도란 바로 이예가 손수 그린 지도입니다.

"처음에는 여러갈래의 코스를 설계했지요. 문천이 산구였던만큼 이 코스는 어디까지이고 저 코스는 또 어디까지인지를 확인해야 했고 끊임없이 보충작업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원래 지도를 사려고 계획했었지만 구하지 못하는 바람에 인터넷에 접속해 촬영전 사전 조사를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스를 정하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10월 중순에 준비를 시작했지만 12월 4일에야 드디여 성도에 도착했습니다."

(사진: 지진 재해을 입은 문천 지역)

이예가 직접 그린 지도가 그후 촬영집 출간 편집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발휘했습니다.

사천에 도착한 이예의 카메라는 쉴새없이 작동했습니다. 그의 카메라 렌즈는 주로 생사의 고험을 겪은 사람들과, 중상을 입고도 거연히 서 있는 도시, 특히 재해후 활기를 되찾은 어린이들에게 돌려졌습니다.

이예의 촬영작품집에서 많은 어린이들의 사진을 볼수 있는데 그들의 눈에서는 어른들의 걱정과 슬픔어린 눈빛과는 달리 단순하고 유쾌하며 명랑한 모습들이 담겨있어 특히 독자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이예의 말입니다.

"작품집에는 어린이가 애완견을 안고 있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 있는데요. 사실 그 어린이의 어머니는 지진때 돌아갔습니다. 그는 현재 계모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매일 즐겁게 뛰놀고 있었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크면 기억할지는 모르지만…이런 일을 떠올리기 싫습니다. 저는 그냥 어린이 모두가 유쾌하게 생활하기를 바랄뿐입니다."

2008년 문천 방문을 통해 이예가 얻은 가장 큰 감수는 평온이였고 낙천적으로 계속된 생활을 해나가는 사천인들을 본것입니다.

"그들은 자체로 구할수 있는것은 자체로 구하고 무엇을 할수 있으면 무엇을 했습니다. 영수진을 그 예로 들수 있는데 제가 당시 묵었던 집은 원래 자그마한 장사를 하던 집이였습니다. 지진으로 가옥이 전부 훼손된 그들은 간이방에 침대 몇개와 이불을 마련해 놓고 저와 같은 사람들을 상대로 하루에 몇십원씩 받고 장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임시 간이방 구역마다 영업하�� 다방도 적지 않았습니다."

마을마다 찾아다니며 생동한 현장을 기록하는 과정에 이예는 앞으로의 자신의 생활에서 동력을 찾았습니다. 문천의 라부마을 촬영순서가 되였는데 마침 음력설이 겹치게 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싶이 춘절은 중국에서 가장 큰 전통명절입니다. 이예는 문천재해지역에서 예전과 완전히 다른 춘절 분위기를 감수했습니다.

"저는 마씨성을 가진 젊은 당서기네 집에 묵었습니다. 마서기는 저에게 이왕이면 자신들은 무용같은것을 즐기면서 명절을 보내겠지만 올해는 없다고 소개했습니다. 저는 마서기네 가족 3대와 함께 설을 쇴습니다. CCTV음력설 야회를 다 본후 저는 밖에 나가 한바퀴 돌아보았습니다. 그때의 분위기는 제가 살고 있는 도시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등불이란 찾아볼수 없었고 폭죽소리도 들을수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설이라는 분위기를 전혀 느낄수가 없었습니다. 마서기의 형부 역시 지진때 돌아갔는데 그의 누나는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지만 집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이 별로 없었습니다."

춘절이 지나 이예는 문천취재를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돌아올때 필름만 한트렁크를 갖고 왔습니다. 돌아오면서 이예는 어떤 사진을 골라 세인들에게 보여줄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베이징을 떠날때부터 줄곧 책 출간과 관련해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최종 독자들로하여금 자신의 생활과 생명의 의의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기로 정했습니다 저는 성격적으로 자유롭고 낙천적인 편입니다. 많은 일에 대해 크게 따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매사, 매사람에 대해 특별히 대하며 특히 자신의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참답게 대하고 있습니다."

2009년 5월, "문. 피안"이라는 촬영집이 드디여 세인들과 대면했습니다. 피안이란 무엇인지, 이예의 작품속에 그 답이 있습니다. 피안이란 시간의 흐름이고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이상이며 강인함과 희망이 있는곳입니다. 이예의 작품집을 통해 재해지역 대중들이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충분히 느낄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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