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의로 말할때 곡예는 여러가지 비범한 기예의 총칭이다. 고대에는 또 "잡기", "잡기락"이라고도 불렀다. 중국의 곡예는 현란하고 고풍스러우며 소박하고 대범한것이 특징이며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기예의 일종으로 불리고 있다.
중국곡예는 신석기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후 여러 나라들의 씨름기술의 우점을 모아서 하나의 오락적인 곡예종목이 형성됐는데 그것이 바로 씨름놀이(角抵)이다.
한나라 시기, 씨름놀이의 내용은 더욱 충실해 졌고 품종도 많이 풍부해졌으며 기예도 휠씬 뛰어났다. 동한시기에 이르러 곡예예술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표현예술을 모은 새로운 "백희"체계를 형성했다.
남북조시기, 여러가지 곡예기술의 교류가 빈번해졌다. 이 시기의 곡예는 다종다양한것이 특점이다. 민간의 곡예기초가 풍부할뿐만 아니라 각 조대의 궁전에서도 다채로운 곡예표현을 진행했다.
당나라때 일부 종목은 신속한 발전을 가져와 전례없이 뛰여난 기예들이 나타났는데 그중 "대나무 장대타기"의 기예가 매우 뛰어났다. 마술절목도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고 맹수를 길들이는 법도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송나라때부터 곡예는 궁전에서 민간으로 발전해 새로운 종목이 많이 창조됐다. 와옥공연장이 흥행하기 시작한후 부터 곡예사들은 쉽게 자신의 기예를 표현할수 있는 장소가 있게 되었다. 이 밖에도 송나라때 전문적인 곡예훈련반과 신인을 배양하는 "과반"(科班)이 있었다.
송나라 이후, 곡예의 사회적 지위가 많이 떨어졌다. 원나라가 건립된후 곡예는 강호를 헤매며 기예놀음을 위주로 하는 강호예술로 불리웠고 청나라때 곡예사는 길거리 연출을 위주로 생계를 유지했다.
해방후 곡예는 새롭게 태어났다. 곡예예술은 간단한 기교표현으로 부터 악대, 무용, 조명 등이 배합된 종합적인 예술표현이 됐다. 당과 정부의 영도아래 중국곡예는 이미 전세계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예술종목으로 되었다.
(편집: 석봉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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