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명원 문화재들은 어디에?
中国国际广播电台
 

      198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을 침략하고 원명원(圓明園)에 침입하여 원명원을 깡그리 약탈하였다. 그들이 원명원에서 대체 얼마나 많은 보물들을 약탈하였는지는 오늘날까지 계산할수도 없이 많으며 프랑스 침략군이 귀국후 프랑스 황제에게 상납한 진귀한 골동품만해도 약 10000만여점이다. 때문에 오늘날 원명원의 진귀한 문화재들을 보려면 영국이나 프랑스에 가야만 볼수 있다.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는 원명원에서 약탈한 수만점의 진귀한 보물들이 진열되여 있다. 그중에는 진한(秦漢)시기 문화재와 수당(隋唐)시기 서화, 명청(明淸)시기 금과 옥을 비롯하여 없는것이 없다. 중국 동진(東晉)시기 유명한 화가인 고개지(顧慨之)여사함도권(女史箴圖卷)”이 바로 이곳에 있다. 이는 최초의 모양을 통해 정신을 보여주는회화예술의 걸작이다. 당시 프랑스 황제였던 나뽈레옹3세는 풍텐불로성(Fontainebleau)중국관을 건설하고 침략군이 그에게 선물한 원명원의 천여점의 문화재 진품들을 전시하였다. 그중에는 상주(商周)시기 청동기와 명청시기 관요(官窯)자기, 여러가지 옥 조각품, 상아조각, 건륭(乾隆)황제의 옥쇄 그리고 건륭황제가 66세 탄신을 맞으면서 차렸던 백명장수노인연회에 대해 적은 벽옥병풍등이 있다. 프랑스 빠리 국가도서관에는 원명원에서 약탈한 실크에 그린 원명원의 40곳의 경치 그림과 건륭황제가 제사를 쓴 원명원 경치도 등 80폭의 진귀한 문화재가 있다. 이밖에 세계 각국의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원명원의 진귀한 보물은 헤아릴수도 없이 많다.

20005월을 전후하여 홍콩 문화재경매에서 원명원의 문화재 몇점을 공개 경매하였다. 그중 3점은 서양루(西洋樓)해안당(海晏堂) 12지 분수의 소, 원숭이, 범띠 머리상이였다. 해안당 12지 분수는 중국의 12개 띠에 따라 설계한 분수시계로 매 시간마다 그에 속하는 띠의 시계가 자동적으로 물을 뿜으며 정오 12시가 되면 12개 띠의 시계가 동시에 물을 뿜는다. 설계가 극히 정교하여 침략군에 약탈당할때에도 가장 진귀한 보물로 간주되였으며 소유할수 있는 사람도 신분이 특별한 사람이였다. 

원명원 원숭이머리 동상 

원명원 범머리 동상

원명원 소머리 동상 

乾隆款醬地描金粉彩鏤空六方套瓶

  경매에서 범머리는 1400, 소머리는 700, 원숭이 머리는 740만에 거래가 성사되였다. 사람들이 다행스레 생각하고 안위를 느끼는것은 원명원의 진귀한 문화재 3점을 모두 중국의 두 회사에서 샀다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