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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구
2009-06-15 15:04:36 cri

百折不挠, 백절불뇨—여기서 百는 백 백자, 折 꺾을 절, 不 아닐 불자, 挠 굽힐 뇨자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이 성구는 백번 꺽이여도 굽혀들지 않는다는 뜻으로 되겠습니다.

동한시기 교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대바른 그는 그릇된 일과 언제나 과감히 투쟁했습니다.

젊은 시절 현에서 자그마한 벼슬에 있을 때 그는 벌써 예주에서 진국상의 벼슬에 있는 양창의 죄악을 적발한 적이 있으며 한양태수로 있을 때는 그의 수하에서 상규령으로 있는 황보정이 법을 어기자 즉각 사형에 처한 일도 있습니다.

한령제 때 상서령의 벼슬에 오른 교현은 태중대부 개승이 황제와 옛교분이 있다는 것을 턱대고 백성들의 재물을 마음대로 횡령한 일을 적발하여 상소했습니다.

그러나 한령제는 교현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아니라 개승의 관직을 더 높여주었습니다.

이에 분노한 교현은 병을 핑계로 즉시 벼슬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그후 령제는 <태위>라는 벼슬까지 내리였으나 그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후한서 교현전>에 보면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교현의 열살나는 어린 아들이 문앞에서 놀다가 갑자기 세 강도에게 붙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양구라는 장수가 이 일을 알고 즉시 군사를 풀어 강도들을 물샐틈없이 포위했습니다.

허나 그 이상 더 접근하면 강도들이 어린애를 해칠가싶어 감히 진공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교현은 대노하여 <강도는 백성들의 화근인데 어찌 나의 아들때문에 백성들의 화근을 용서한단말인가>하고 소리치고는 병사들을 재촉하여 곧 진공해서 강도들을 몽땅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결국 강도들에게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교현의 강의하고 과단성있는 정신을 높이 찬양하였습니다.

교현의 사후 유산이란 전혀 없었고 장례도 극히 간소했습니다.

후날 조조는 교현의 무덤앞에서 공경하는 마음으로 제를 지내주었고 채옹은 <태위교현비송>이라는 글을 지어 교현은 <백번 꺽어질지언정 휘여들지 않는다>고 칭송했습니다.

성구 百折不挠, 백절불뇨는 바로 채옹의 이 글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百折不挠, 백절불뇨란 성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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