口蜜腹劍(구밀복검)
◎글자풀이: 입 口(구), 꿀 蜜(밀), 배 腹(복), 칼 劍(검)
◎뜻풀이:구밀복검, 웃음속에 칼을 품다,웃음속에 칼이 있다.
◎유래: 일상생활중에는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 있으면서 속으로는 칼을 감춘 것처럼 음흉스런 사람들이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사람들이 소수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볼라치면 말과 행동이 다르며 평생 연기를 하면서 살아간다. 이들의 구별이 있다면 그 연기수준의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중에서 제일 대표적인 인물은 당현종(唐玄宗) 때의 재상이었던 이림보(李林甫)를 꼽을수 있을 것이다.
이림보는 잔꾀가 많은 사람이었다. 관직을 맡은지 얼마 안되어 재상인 원건요(源乾曜)의 아들을 사귀게 되었다. 이 인맥을 이용해 이림보는 국자감 사업이라는 말단직에서 어사대부로 고속승진하게 되었고 이어 리부시랑을 맡아 관리들의 임명과 파면을 관리하는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다.
요직에 오른 이림보는 자신의 연기력을 남김 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어느 한번은 이림보가 문관들의 승진을 주관하게 되었다. 이때 당현종의 아들이 녕왕(寧王)의 측근 열명을 추천했는데 이림보는 이를 거절했다. 그는 이들의 승진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지어는 이들의 관직을 한급씩 낮추어 놓았다. 이런 조치를 취한후 그는 녕왕에게 이렇게 아룄다.
"이번에 이들을 승진시키지 않은 것은 당신과 나의 공정함을 보여줄수 있습니다. 제 관직이 더 높아지면 꼭 이들을 좋은 자리에 올려 놓을 것입니다."
이림보의 연기력은 그 효력을 보아 얼마 지나지 않아 재상으로 임명되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당현종 24년, 현종은 낙양(洛陽)에서 장안(長安)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이때 한 대신이 말했다.
"아직 가을을 하지 않았는데 황제께서 대량의 인마와 함께 장안으로 돌아가신다면 밭에 있는 곡식들을 밟아서 그 피해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봄에 돌아가심이 가당한걸로 아뢰옵니다."
이 말을 들은 당현종은 몹시 화가 났다. 이때 이림보가 당현종에게 가만히 말했다.
"폐하께서는 곡식피해 같은 것은 염려 마시고 장안으로 돌아가십시오.피해를 본 곡식들은 그 부세를 면제해주면 될것이오니 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림보의 말에 당현종은 크게 흐뭇해했고 그에 대한 신망이 더욱 두터워졌다.
이림보는 조정에서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다른 한 재상인 장구령(張九齡)이었다. 얼마후 이림보는 음모를 꾸며 장구령을 조정에서 밀어냈고 그 자신은 중서령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이어 이림보는 당현종이 세명의 황태자를 죽이도록 일을 꾸몄는데 많은 사람들이 황태자들의 죽음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이림보는 자신을 위해 "월당"이라고 부르는 건물을 지었는데 정직한 대신들을 음해할 때면 이곳에서 일을 꾸미군 했다.
그가 이 "월당"에서 웃음을 띠고 나온 후에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죽어나가군 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라 그 자신도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혼백이 찾아 올가봐 전전긍긍했다. 밤에 잠을 잘 때에도 여러 곳 가운데 한곳을 임의로 정했는데 이 때문에 집안 식구들도 그가 어느 집에서 잠을 자는지 알수가 없었다고 한다.
관례에 따르면 당나라의 재상은 큰 공을 세웠거나 덕망이 높은 사람이 맡아왔다. 이들은 백성들과 가까이 하기 위해 허례허식을 싫어했다. 그러나 이림보는 이와는 정반대로 출타할 때면 몇백명에 달하는 호위무사들을 거느렸는데 관리들은 길에서 이림보의 행차를 만나게 되면 멀리 피하군 했다.
이림보는 표면적으로는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하고 상대방의 마음에 드는 말들을 골라했지만 배후에서는 살인을 하고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았다. 후에 사람들은 그의 진면모를 알게 되었고 이림보를 "입에는 꿀을 바르고 속에는 칼을 품었다"고 평가했다.
좋은 말은 다하고 나쁜 짓을 일삼았던 이림보, 결국은 역사에 지울수 없는 오명을 남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