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상첨화(錦上添花)
◎글자풀이: 비단 금(錦), 위 상(上), 더할 첨(添), 꽃 화(花)
◎뜻풀이: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는 뜻으로 좋은 일에 또 좋은 일이 더해진다는 의미이다.
◎유래:
당태종(唐太宗) 시기 산서 분하만(山西 汾河灣)의 한 마을에서 어느날 갑자기 큰불이 나 순식간에 마을 전체를 태우고 기왓장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 중 다행히 목숨을 건진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예(禮), 자는 인귀(仁貴), 설인귀(薛仁貴)였다.
(사진설명: 당나라 장군 설인귀)
유족한 가문에서 태어나 남 부러움 없이 살았던 설인귀는 뜻하지 않은 화를 당하고 하루아침 가난한 유랑자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을 하던 설인귀는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류원외(柳員外)의 저택에 머물러 기식(寄食)하며 다른 머슴들과 함께 땔나무를 나르는 일을 했다. 건장한 체격의 그는 열 명이 겨우 들 수 있는 통나무를 혼자서 들쳐 메고 뛸 만큼 힘이 장사였으며 다른 이들이 하루 먹는 양을 한 끼에 다 먹어치울 만큼 그 식성 또한 대단했다. 설인귀가 혼자서 몇 명의 몫을 거뜬히 해내는 것을 보고 주인 류원외는 매우 기뻐하며 계속 남아 일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설인귀는 류씨네 머슴으로 지냈다.
류원외에게는 백옥같이 하얀 피부를 가진 어여쁜 딸 류영춘(劉迎春)이 있었는데 류원외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자랐다. 겨울이 다가오자 류원외는 귀한 비단옷을 딸에게 선물했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던 어느 추운 겨울날 류영춘은 부친이 선물한 비단옷을 곱게 차려입고 뒷뜰을 거닐며 설경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던 중 얇은 옷가지 하나만 걸친 채 나무가 쌓여 있는 곳에서 잠을 자는 설인귀를 발견하였다. 그를 불쌍히 여긴 류영춘은 자신의 비단옷을 벗어 그에게 살포시 덮어 주고 자리를 떠났다.
따뜻한 기운에 눈을 뜬 설인귀는 화려한 비단 옷을 덮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옷을 유심히 살피니 무명실로 곱게 짠 붉은색 옷감에 여우 가죽을 덧대어 만든 보기 드문 귀한 옷이었다. "신령님께서 나를 가엾이 여겨 눈과 바람을 막아주려고 내려주신 게 틀림없어."라고 생각한 류영춘은 비단 옷을 걸친 채 뜨락에 쌓인 눈을 치기 시작했다. 이를 본 류원외가 딸의 비단옷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크게 노하였다. 설인귀가 자기의 딸과 사사로운 정을 나눴다고 의심한 류원외는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은 채 딸 류영춘을 집에서 쫓아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류원외는 딸의 명예를 생각해 설인귀와 류영춘을 혼인시키고는 다시 집에서 쫓아냈다.
쫓겨난 두 사람은 마을 밖의 허름한 곳을 찾아 거처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생활하였는데 류영춘 어머니가 몰래 넣어준 은 몇 냥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갔다. 마을 사람 모두가 설인귀를 가난한 자라 업신여기며 냉대했다. 그러나 작은 가게를 꾸려 생계를 유지하던 왕무생(王茂生)만은 예외였다. 왕무생은 평소 가난한 설인귀 내외를 불쌍히 여겨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며 극진히 대해주었다. 또 명절이면 술과 고기를 사주며 위로해주곤 했다. 그리하여 왕무생과 설인귀는 둘도 없는 벗이 되었다.
가난한 삶 속에서도 처 류씨는 "당신은 재주가 있으니 군에 들어가면 공을 세울 수 있을거예요."라고 하며 남편 설인귀의 능력을 칭찬하고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얼마 후 설인귀는 군인이 되었고 마침내 당고전쟁에 참전해 큰 공을 세웠다. 당태종은 설인귀의 공을 높이 사 양료왕(兩遼王)으로 봉하였다. 그동안 아내 류씨는 남편을 기다리며 스스로 농사짓고 베를 짜서 자식들을 키웠다.
설인귀는 아내가 혼자서 고생할 것을 생각해 군직을 물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방의 관리며 유지들이 예물을 들고 찾아왔다. 유독 왕무생만이 술 대신 물을 들고 찾아왔다. 설인귀는 크게 연회를 베풀고 왕무생을 가장 높은 자리에 모셨다. 그는 남들이 바치는 귀한 술을 모두 마다한 채 오직 어려울 때 도와준 친구 왕무생이 보낸 맑은 물만 마시며 다른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제 대왕의 몸이니 부족한 것 없구려. 자네들이 갖고 온 예물은 모두 금상첨화일 뿐, 왕무생이야말로 나와 고락을 함께 나눈 진정한 벗이라오."
금상첨화 이 고사성어는 바로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