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령모개(朝令暮改)
◎글자풀이: 아침 조(朝), 하여금 령(令), 저녁 모(暮), 고칠 개(改)
◎뜻풀이: 아침에 내린 명령을 저녁에 고친다는 뜻으로 정부의 명령이나 정책이 수시로 바뀜을 비겨이르는 말이다.
◎유래:
많은 역사학자들이 서한(西漢) 초년 한문제(漢文帝)와 한경제(漢景帝)가 집권하던 문경(文景)시기를 청렴한 정치로,태평성대를 이룬 왕조로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역사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문제 초년에 백성들의 생활은 결코 찬탄을 자아낼 만큼 풍요롭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한문제 역시 전해지는 것처럼 고명한 인물이 아니었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시 흉노(匈奴)가 자주 북쪽 변방을 침범하여 약탈을 일삼는 까닭에 백성의 생활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갔다. 한번은 한문제가 도성을 떠나 순행길에 올랐다. 임금님 행렬이 다가오는 것을 본 한 백성이 급급히 다리 밑으로 몸을 숨겼다. 한참 시간이 흘러 행렬이 다 지나갔을 것으로 생각하고 엉금엉금 기어나왔지만 마침 다리를 지나던 행렬과 딱 마주치게 된 것이다.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자 겁을 먹은 마부가 고삐를 확 잡아당겼다. 그러자 말이 앞발을 추켜세우며 울부짖더니 뒷걸음질쳤다. 그 바람에 한문제를 태운 가마가 크게 요동쳤다. 호위병이 재빨리 한문제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폐하,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가마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한문제는 조정 정위(廷尉) 장석(張釋)을 시켜 이 사건을 처리하도록 했다. 조사해 본 결과 그 백성이 고의적이 아님을 알게 된 장석은 한무제를 찾아 이렇게 말했다.
"폐하, 소신이 그 백성에게 벌금을 물리고 풀어주려고 합니다."
한문제가 가당치 않다며 대로하자 장석이 말했다.
"나라의 법령에 따르면 부주의로 인한 행위에 대해서는 중벌을 내릴 수 없습니다. 단지 벌금형에 처할 뿐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폐하께서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그 자를 죽이라 명하셨다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한테 처리하라 명령하고 나서 번복한다면 제 입장이 곤란해질 것 아닙니까?"
한문제는 속으로 못마땅했지만 장석 장군의 말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제대로 된 법령이 없었고 정해진 법령도 왕의 명령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기에 백성은 늘 불안속에서 살았다. 이러한 사정을 알리기 위해 조착(鼂錯)이라는 사람이 조정에 상소문을 올렸다. 거기에는 "조령모개"라는 말이 나온다.
"집집이 토지 백무(百畝)를 경작하여 얻은 수확량은 많아야 백석에 지나지 않는다. 봄에 경작하고 여름철에 풀 뽑고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에 저장하는 외에 관청을 수리하고 노역에 불려 나가는 등 백성은 쉴 날이 없다. 그들은 손님을 맞이하고 바래며 죽은 자를 조문하고 아이도 키워야 한다. 홍수와 가뭄의 재해도 서러운데 세금이나 부역에 억눌려 살고 있다. 게다가 아침에 내려진 령이 저녁에 바뀌니 고통스럽기 그지없다(조령모개). 있는 사람은 좋은 물건도 반값에 내놓게 하고 없는 사람은 돈을 빌려 원금과 이자를 물게 된다. 논밭과 집을 팔고 자손을 팔아 빚을 갚는 사람이 생겨난다."
후세에 《논귀속소(論貴粟蔬)》라 불리게 된 조착의 이 상소문은 한문제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뒤로 한문제는 백성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백성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령모개(朝令暮改) 이 사자성어는 바로 조착이 올린 상소문에서 나오는 것으로 정부의 명령이나 정책이 수시로 바뀜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