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붕지탁(天崩地坼)
◎ 글자풀이: 하늘 천(天), 무너질 붕(崩), 땅 지(地), 터질 탁(坼)
◎ 뜻풀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다라는 뜻으로 대사변이나 대변동을 일컫는다.
◎ 유래:
전국시기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군대을 파견해 조(趙)나라의 도성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조나라는 위(魏)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강대국인 진나라가 두려웠던 위(魏)나라 왕은 장군 신원연(新垣衍)을 한단으로 잠입시켜 조나라 평원군(平原軍)을 만나 진나라에 항복하라고 은밀히 권유했다.
조나라 평원군을 만난 신원연이 이렇게 전달했다.
"현재 천하를 호령하고 있는 진나라가 한단을 포위한 것은 땅을 욕심내서가 아니라 소왕이 제(帝)위에 오르기 위함이오. 만약 진소왕을 제왕으로 추대하면 진은 틀림없이 기뻐하며 철군할 것이오."
한편으로 진나라 대군이 밀려오고 다른 한편으로 위나라의 권유가 있자 조왕과 평원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에 빠졌다.
이때 마침 조나라를 지나가던 제나라의 유세가 노중련(魯仲連)이 이 사실을 듣고 신원연을 만나게 해달라고 평원군에게 부탁했다. 신원연을 설득하여 돌려보내겠다는 것이었다.
정치와 이치에 능하고 박학다식한 노중련의 명성을 익히 잘 알고 있었던 신원연은 자신의 계책이 깨질까 줄곧 만나기를 꺼렸지만 이미 사실을 말했다는 평원군의 말에 어쩔 수 없이 허락하여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이 마난 자리에서 신원연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곳 한단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평원군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자들뿐이오. 천하의 고사(高士)인 선생께서 평원군에게 무슨 부탁이 있길래 여태 한단에 머무르며 떠나지 않는단 말이오?"
노중련이 대답했다.
"세상은 절개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비아냥거리지요. 그렇다면 진나라는 어떤가요? 예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고 오로지 전쟁에서 무고한 백성을 죽이는 제후들만 격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권모술수로 군사를 부리고 백성을 노예처럼 부립니다. 그런 진나라 왕이 제위에 올라 천하를 호령한다면 저는 차라리 동해에 빠져 죽고 말겠습니다.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은 죽기보다 싫으니말입니다. 진왕이 제왕이 되면 초래될 해악을 위나라는 모르고 있습니다. 제가 장군을 만나고자 한 것은 조나라를 돕기 위함입니다."
"진왕이 제위에 오르면 무엇이 위험하다는 말이오?" 신원연이 물었다.
"과거 제(齊)나라 위왕(威王)은 인의를 받들어 제후들을 이끌고 주나라에 조배(朝拜)를 올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나라는 가난했고 약소국이었기에 제후들은 입조하기를 꺼려했지요. 하여 제나라만 갔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일년이 지나 주열왕이 세상을 뜨자 그제야 제후들이 문상을 왔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제나라만 가장 늦게 도착하여 즉위한 주선왕의 화를 샀지요. 주선왕께서는 대로하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天崩地坼) 천자가 세상을 떠났거늘, 새로운 천자가 초석(草席)에 누워 상중인데 제후국인 주제에 인제야 나타나다니… 네 목을 베어 마땅하다!'라고 했답니다. 이 말을 들은 제나라 왕은 발끈하며 '뭐라고? 이 놈의 자식이!"라고 되받아쳐 결국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열왕의 생전에 조배를 갔던 제나라가 주열왕이 죽자 그의 아들을 욕한 것은 새로 등극한 천자의 지나친 요구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세력이 미약하나 천자는 천자인데 신하로서의 본분을 잃은 것이지요. 저기 서있는 하인 열명을 보십시오. 하인 열명이 한 사람을 떠받들고 있는 것은 힘이 없거나 지혜가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바로 신분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위나라는 진나라에 신하같은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노중련은 진왕이 제왕으로 되면 위나라를 포함한 제후국들이 참혹한 죽임을 당할 수 있다고 피력하는 동안에 신원연은 한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다. 조나라를 동원하여 진왕을 제왕으로 추대하려던 신원연은 노중련의 말이 끝나자 몸을 일으켜 두번 절하며 말했다.
"곧바로 조나라를 떠나겠소. 앞으로 진왕을 제왕으로 추대하자는 말은 절대로 입 밖에 꺼내지 않겠소."
과연 조나라가 진나라에 대항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진군은 즉각 50리나 뒤로 물러나고 철군했다. 이때 공교롭게 위공자가 진비의 군권을 빼앗고 인마를 영솔하여 조나라를 구원하였고 조나라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에 나오며 《전국책•조책 (全國策•趙策) 》에도 기록이 남아있다. 사자성어 "천붕지탁(天崩地坼)"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다'라는 뜻으로 '대사변' 또는 '대변동'을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