曠日持久(광일지구)
◎ 글자풀이: 밝을 광(曠), 해 일(日), 유지할 지(持), 오랠 구(久)
◎ 뜻풀이: 오랜 세월을 헛되이 보내다. 시일을 질질 끌다.
◎ 유래:
전국시기 조나라 명장 조사(趙奢) 는 전지(田地)에서 나오는 세금을 관장하는 벼슬에 있으면서 조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그후 수차례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이름을 떨쳤다.
조혜문왕 29년(기원전 270년), 진나라가 한(韓)나라를 침공했을 때였다. 두 나라가 알여(閼與: 산서성 화순)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중 기선을 제압당한 한나라가 조나라에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전쟁이 조나라 국경에까지 미치자 위태로움을 느낀 조왕도 장군 염파(廉頗)를 불러 출병여부를 물었다.
"염파장군, 파병하여 한나라를 구원하는 것이 조나라에 도움이 될 것 같소?"
"길이 멀고 지세가 험난해 소신이 보기에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명장 염파가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자 조왕은 다시 무장 악승(樂乘)에게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마지막으로 조사의 의견을 물었다.
조사가 대답했다.
"비록 한나라에 이르는 길이 멀고 험하나 한나라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두마리의 쥐가 동굴 속에서 싸우는 격이니 용맹한 자가 이길테지요."
그리하여 조왕은 조사를 장군으로 봉하고 진에 대적하여 한나라를 구원하게 했다. 조사는 한단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보루를 쌓고 수비를 견고히 하면서 진나라 군이 지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기회를 틈타 이틀동안 밤낮으로 돌진해 유리한 진영을 확보한 뒤 공격을 재개했다. 그 결과 진나라를 크게 격파하고 알여땅과 그 주변 땅을 손에 넣는데 성공하였다. 혜문왕은 조사가 전쟁에서 세운 공을 높이 사 그를 마복군(馬服君: 마복은 하북성 감단시 서북의 산)에 봉했다.
그 후 연(燕)나라가 조나라를 진공하였는데 속수무책이었던 조나라는 제나라에 57개의 성읍을 떼주면서 장수 전단(田單)을 파견해 줄것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제나라의 전단이 조나라의 군사를 통솔하게 되었고 이에 몹시 분노한 조사가 평원군에게 항의했다.
"조나라에 인물이 그리도 없단 말입니까? 역적들로부터 목숨 걸고 지켜온 땅을 내준 것도 모자라 연나라의 상곡군수를 지냈던 소인을 내치고 제나라의 전단에게 우리 군을 맡기다니요! 제게 맡겨주시면 백일이 채 되기 전에 연나라를 반드시 격파할 것입니다."
평원군은 조사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사도 물러서지 않고 주장했다.
"물론 재상께서는 제나라와 연나라가 원수지간이라 전단을 추대한 것이겠지요. 허나 지혜롭고 총명한 전단이 결코 조나라를 위해 싸우진 않을 것입니다. 조나라가 강대해지면 제나라는 패왕의 자리를 내놓아야 하니 제나라 사람인 전단이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할리 만무합니다. 그는 조나라의 군을 거느린 채 '광일지구', 즉 헛되이 세월을 보내며 시간을 끌다가 연, 조 두 나라의 병력이 소진될 때에야 자기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제나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연나라와 조나라에게 얻어지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조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단에게 군을 맡긴 조나라는 잃었던 땅을 되찾긴 했으나 국력이 소진되어 결국 강국으로 일어서지 못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전국책 조책(戰國策 趙策)"에 기록되어 있으며 사자성어 "광일지구(曠日持久)"는 헛되이 세월을 보내며 시간을 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