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피삼사(退避三舍)
◎글자풀이: 물러날 퇴(退), 피할 피(避), 석 삼(三), 집 사(舍)
◎뜻풀이: '물러나 90리를 피하다'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여 물러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유래:
진(晉)나라 공자(公子) 중이(重耳)는 19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였는데 덕망이 높고 인품이 훌륭해 가는 곳마다 제후국 군주들의 환대를 받았다.
중이가 초(楚)나라에 머무를 때였다. 초성왕은 중이에게 예를 갖추어 극진히 대하였고 두 사람은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
한번은 연회석상에서 초성왕이 중이에게 농담조로 물었다.
"내가 자네를 이토록 아끼는데 장차 군위에 오른다면 과인에게 무엇으로 보답할 생각이오?"
중이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만약 제가 국군이 된다면 진, 초 두 나라가 싸우게 되었을 때 먼저 퇴피삼사(退避三舍)할 것입니다. 90리를 후퇴하는 것으로 은혜를 갚지요."
같은 자리에 있던 초나라의 장군 자옥(子玉)이 이 말을 듣게 되었다. 그는 영웅의 기개가 넘치는 중이가 향후 진나라에 돌아가면 반드시 초나라에 위협이 될 인물이라고 판단하여 중이를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초성왕에게 간하였다.
그러나 초성왕은 자옥의 말을 듣지 않았다.
"현재 주변국들에서는 영웅물색에 한창인데 신(臣)은 되려 영웅을 없애려하다니 가당치 않소. 그렇게 되면 주변국들의 신의를 잃고 악명만 높아질뿐 우리에게 얻어지는 것이 무엇이란 말이오?"
19년이 흐른 뒤 중이는 귀국하여 진(晉)나라 문공(文公)으로 즉위하였다. 오랫동안 나라 밖을 떠돌며 모진 고난과 배고픔을 견뎠던 진문공은 온 힘을 다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치며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리하여 진나라는 점차 안정을 되찾았고 백성들은 부유해졌다.
당시 패업을 이루기에 여념 없었던 초나라는 기원 633년에 진(陳), 채(蔡), 정(鄭), 허(許) 등 나라들과 연합하여 송나라를 공격하였다. 마침 초나라의 장군 자옥이 초군을 이끌었다. 연합군은 승승장구하며 빠르게 송나라 도읍을 포위하였고 연합군의 드높은 기세에 송나라는 급히 진나라 문공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동안 송나라와 깊은 우의를 다져온 진나라는 송나라에 파병하여 조나라와 위나라를 연이어 제패하고 초나라 진격에 맞섰다. 초나라와 맞선 상황이 되자 진문공은 초성왕에게 한 약속이 떠올라 즉각 "퇴피삼사"하라고 명령했다.
90리나 되는 거리를 후퇴하라니 까닭을 몰라 어리둥절해진 병사들에게 진문공이 해명하였다 .
"과인이 과거 초나라에 있을 때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 먼저 90리를 물러서겠다고 초왕과 약속한 일이 있다. 과인은 그 약속을 지키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나라군은 90리를 물러섰다. 그러나 이는 진문공의 계책에 불과했다. 진문공이 초나라 군사의 예봉을 피해 약점을 찾아 다시 진격하니 초군은 군기가 해이해지고 기세가 꺾이면서 결국 진나라에 대패하자 이에 분하여 초나라 장군 자옥은 자살하고 말았다.
진문공은 퇴벽삼사의 약속을 지킴과 동시에 패주의 지위도 확립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역사에서는 이 전쟁을 "성복대전(城濮大戰)"이라고 부른다.
사자성어 퇴벽삼사는 '물러나 90리를 피하다'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여 물러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