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위학(助紂爲虐)
◎글자풀이: 도울 조(助), 껑거리 끈(紂), 할 위(爲), 사나울 학(虐)
◎뜻풀이: 주임금을 도와 포학한 일을 저지르다. 악독한 사람을 도와 나쁜 짓을 방조함을 이른다.
◎유래:
진(秦)나라 말기, 억압통치에 억눌린 진나라 백성들이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유방(劉邦)은 이 반란에 가담하기 이전에 패현(沛縣)에서 말단관리인 정장(亭長)을 지냈는데 인부들을 군에 압송하는 일을 맡았다. 진나라의 법에 따르면 인부호송 도중에 한명이라도 도망치면 책임자를 사형에 처했다. 한번은 유방이 백여명의 인부를 호송하던 도중 인부들이 잇달아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유방은 나머지 인부들을 풀어주고 자신도 적당한 곳을 찾아 몸을 숨겼다.
농민봉기의 열기는 점차 패현 주변에까지 번졌다. 진섭이 이끄는 봉기군이 두려웠던 패현 현령(縣令)이 그의 두명의 보좌관인 소하(蕭何), 조참(曹參)과 합심하여 봉기에 호응하고 진나라에 대항키로 결심했다.
그러자 소하와 조참이 현령에게 말했다.
"진나라의 관리였던 현령께서 이제 와서 패 땅의 군사를 내세워 진나라에 대항하려 한다면 백성들이 불청(不聽)할까 우려되옵니다. 차라리 진나라의 가혹한 정치에 불만을 가지고 도망친 유방의 무리들을 불러 모으는 건 어떨런지요. 그렇게 되면 패 땅의 사람들도 잘 따를 것입니다."
현령은 소하와 조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겨 사람을 시켜 유방을 찾아오라고 했다. 이때 유방은 이미 수백명에 달하는 무리를 거느린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령은 곧 후회했다. 유방과 같은 도망자를 다시 부른다면 그들이 합심하여 자신을 모반할가 두려웠던 것이다. 현령은 도로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단 한사람도 들이지 말라고 명령한 뒤 소하와 조참을 죽이려고 했지만 이를 눈치 챈 소하와 조참은 날이 어두워지자 성벽을 넘어 유방이 있는 곳으로 도망갔다.
다음날이 되어 성밖에 도착한 유방이 성문이 굳게 닫힌 것을 보고 친필 격문을 화살에 매달아 성안으로 쏘았다. 격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백성들이 진제국에 대한 불신이 지속된지 오랜데다가 진나라에 병탄되었던 제후국들도 부활을 꿈꾸며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 하오니 그대들이 현령을 처형하고 우두머리를 새로 뽑아 우리 군과 뜻을 같이 한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죽음을 당할것이다. "
유방의 말대로 성안의 사람들은 현청에 몰려들어 현령을 죽이고 성문을 활짝 열어 유방을 맞아들인 후 그를 현령으로 추대하려 했다. 이때 유방이 극구 사양했지만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가봐 전전긍긍하던 소하와 조참은 유방을 끝까지 현령으로 추대하고 그의 수하로 들어갔다.
진 2세(秦二世) 2년, 항량이 죽자 초회왕(楚懷王)은 팽성(彭城)으로 도읍을 옮기고 항우를 장군으로, 유방을 석군장 겸 무안후(武安侯)로 봉한 후 함양을 진격하게 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함양을 평정하는 사람을 관중왕(關中王)에 봉한다고 약속했다.
유방은 뛰어난 전술과 전략을 통해 천신만고 끝에 항우보다도 한걸음 앞서 관중에 입성하였다. 그는 가장 먼저 아방궁에 들렀다. 금은보화가 가득 쌓여있는 아방궁에 구름같이 몰려다니는 미녀들의 모습을 본 유방은 그만 마음이 혹하여 향락에 빠지게 되었다. 수하장군들이 궁궐을 나가자고 아무리 애걸해도 소용이 없었다.
하루는 모사 장량이 간하였다. "진 제국이 궁전을 짓고 음탕한 생활을 하여 천하의 백성들을 해쳤습니다. 이에 참지 못한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그때문에 장군께서 이곳에 오게 된 것을 벌써 잊으셨습니까? 벌써 향락에 빠지려 하다니 이것이야말로 조주위학(助紂爲虐)이며 악한 자를 도와 더욱 악행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장량의 말을 들은 유방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마지못해 궁궐에서 나와 항우를 마중할 차비를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