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취여구(予取予求)
◎글자풀이: 나 여(予), 취할 취(取), 나 여(予), 구할 구(求).
◎뜻풀이: 남이 나에게서 얻고 나에게서 구함. 남이 나를 제멋대로 대함.
◎유래:
춘추시기 약소국인 신(申)나라에는 초(楚)나라 여인이 시집와서 낳은 아들 신후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신나라가 초나라에 의해 멸망한 후 신후는 초나라 문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문왕에게 아부하고 재물에 탐욕스럽기까지 했던 신후를 초나라 관리들은 몹시 증오했다. 허나 왕의 사랑을 독차지한 신후를 건드렸다간 큰 화를 당할까 두려워 속으로 분노를 삭힐 뿐 감히 나서서 질책하지 못했다.
훗날 초문왕은 임종에 즈음해 신후를 불러 그에게 옥벽(玉璧)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과인은 자네가 아플까 다칠까 늘 노심초사하며 보살폈으니 그 누구보다도 자네를 잘 알고 있소.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을 모르며 그동안 내게서 여취여구(予取予求)하며 받은 것도 모자라 더 받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니 주변에 적들이 많은 것이 당연지사. 과인이 죽고 나면 사람들이 자네를 괴롭히고 재물을 약탈할 것인즉 내가 죽거든 반드시 이 나라를 도망쳐야 할 것이오. 명심해야 할 것은 절대로 소국으로 가서는 안되오. "
초문왕이 죽은 후 신후는 정(鄭)나라로 도망쳐 그곳에서 다시 정여공의 총애을 받았다. 기원전 656년, 제(齊)나라 환공이 각 제후국의 군사를 이끌고 채(蔡)나라를 공격하고 이어서 초나라를 진격했다. 초나라 성왕은 대부 굴완(屈完)을 제나라 군사가 주둔해 있는 소릉(召陵: 하남성 언성현 동쪽) 진영에 사자로 보내 제나라와 맹약을 맺으니 제나라는 물러갔다.
상황을 지켜보던 진(陳)나라의 대부 원도도(轅濤塗)가 정나라 대부 신후에게 제안했다. "만약 제후군이 진나라와 정나라를 거쳐 간다면 두 나라는 식량과 군수품의 조달로 괴로움을 당할 것이 뻔하오. 저들이 해변을 따라 동쪽으로 회군하면 좋을텐데 말이오."
"좋지. 그거 좋은 생각이구려." 신후가 대답했다. 그리하여 신후와 원도도는 합심하여 제환공을 설득하기로 했고 원도도가 나서서 제환공에게 계책을 고하니 환공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제나라의 환심을 사고 싶었던 신후는 배후에서 원도도 몰래 제환공에게 이렇게 간하였다.
"제나라 군이 정나라와 진나라 두 나라를 거쳐가면 군사에 필요한 식량과 군수품을 공급받을 수 있으니 그쪽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자 제환공은 크게 기뻐하며 신후에게 호뢰 땅을 하사하고 원도도를 잡아 가두었다.
신후의 배신에 보복을 결심한 원도도가 훗날 신후에게 이렇게 말했다. "호뢰 땅에 훌륭한 성을 쌓으면 그대의 명성이 널리 퍼져 자손들도 자네의 공덕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오. 자네를 도와 제후국에 협조를 구해볼까 하는데…어떻게 생각하오?" 원도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긴 신후는 기꺼이 제안을 받았들였고 제후들의 도움으로 호뢰 땅에는 아름다운 성이 세워졌다. 기회를 놓칠세라 원도도는 곧바로 정나라 문공에게로 가 신후를 모함했다.
"신후가 하사받은 호뢰 땅에 훌륭한 성을 쌓았습니다. 요충지인 그곳에 성을 쌓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장차 반란을 꾀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죄로 신후는 결국 정문공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초나라의 영윤 자문이 신후의 죽음소식을 듣고서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옛말에 '지신막약군(知臣莫若君)'이라 하였으니 신하를 아는 이는 그의 군주보다 나은 사람이 없구려."
사자성어 여취여구는 나에게서 얻고 나에게서 구한다는 뜻으로 남이 나를 제멋대로 대하거나 남이 나를 이용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