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풍불경(南風不競)
◎글자풀이: 남녘 남(南), 바람 풍(風), 아닐 불(不), 다툴 경(競)
◎뜻풀이: 남쪽 초나라의 세력이 부진함에 비유하는 말로서 현재는 적수의 힘이 강하지 못함을 뜻하는 말로 사용한다.
◎출처:《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십팔년조(襄公十八年條)>
◎유래:
춘추전국시기 제(齊)나라의 공격을 받게 된 노(魯)나라가 진(晉)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니 진나라 평공(平公)이 12곳의 제후들을 모아 노나라의 구원에 나섰다. 제후연합군은 제나라를 순식간에 제패하고 제나라의 도읍 임치성까지 쳐들어가 물샘틈없이 포위했다.
그 무렵 정(鄭)나라의 대부 공손사지(公孫舍之)가 정나라에서 참전하고 있던 정간공(鄭簡公)에게 밀서를 전해왔다. 정간공이 봉인을 뜯고 서신을 꺼내보니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공자가(公子嘉)가 진(晉)나라를 배반한 후 초(楚)나라와 내통하고 초나라의 군사를 불러들여 정나라를 정벌하게 하고 자신은 이미 초나라와 내응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초나라 병사들이 곧 정나라에 당도할 예정이니 공께서는 주야불문하고 회군하시어 나라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정간공은 이 사실을 급히 진평공에게 고하였다. 진평공이 중군원수 중죽언(中竹偃)을 불러 대책을 묻자 중죽언이 대답했다.
"주공, 제나라의 임치성은 성벽이 높고 견고해 하루아침의 공격으로 무너지기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정나라가 초나라의 공격을 받을 위험에 처하였으니 만약 정나라가 패한다면 그 허물은 우리에게 있게 됩니다. 하오니 우선 철수하여 정나라를 구하는 편이 옳을 줄로 사료되옵니다."
평공은 죽언의 말을 받아들여 즉시 임치성에 대한 포위를 풀고 군사를 물렸다. 정간공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서둘러 정나라로 돌아갔고 진평공도 11 곳의 제후 대군을 이끌고 철수했다. 이윽고 제후국의 군사 행렬이 축아(祝阿)에 이르렀다. 평공은 초군과의 싸움에 대한 걱정이 태산과 같았다.
초조한 나머지 진평공은 악기 연주로 길흉을 점치기로 유명한 악사 사광(師曠)을 불러 점을 치게 했다. 울적한 진평공의 마음을 달래주고자 사광은 악기로 남풍(南風)을 노래하고 이어서 북풍(北風)을 노래했다. 그는 진평공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공, 염려 마옵소서. 소인이 연주한 북풍의 노래는 음률이 청아하고 평화로웠지만 남풍의 노래 음률은 미약하고 저조하며 조금도 생기가 없습니다. 이는 남쪽 초군이 반드시 패할 괘이며 그들은 틀림없이 아무 소득도 없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삼일 안에 반드시 반가운 소식이 있을 줄로 사료되옵니다."
사광의 말에 진평공은 만족스럽다는 듯 크게 소리 내 웃었다. 과연 3일이 안 되어 초나라에는 내란이 일어나 초군은 철수하였다. 사실은 이러했다. 반역자 공자가가 초나라와 연합했지만 공손사지가 음모를 미리 알고 이에 대처한 결과 공자가가 감히 성 밖으로 나가 초나라 병사들을 맞이하지 못하게 되었다. 초나라 군은 정나라 국경에 당도하였지만 내응한다는 소식을 받지 못하자 진을 치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봤다. 그때 마침 엄동설한에 대설을 만나 초나라 병사 태반이 얼어 죽게 되었고 초군은 할 수 없이 군사를 거두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진평공은 이 소식에 몹시 기뻐하며 음률에 통달한 악사 사광의 예지력을 극찬하였다.
사자성어 남풍불경은 진나라의 사광이 초나라를 평가한 말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후에는 적수의 세력이 부진하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