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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세계의 비밀열쇠를 만드는 사람, 남상호 교수를 만나서
2014-01-09 10:17:38 cri

사이버공간에서 개인정보는 그 누군가에게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이버공간의 논리값(logical value, 逻辑值:여러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조건이 참인지 거짓인지 표현하는 논리 연산에 사용됨.)으로 표지된 실체는 기실 복사가 가능하기에 수시로 위조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이버공간의 정보거래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을만한 객관적인 검증입니다." 남상호 교수는 맺고 끊듯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한다.

남상호 교수는 자타가 승인하는 정보기술안전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는 공화국 창건 이후 최초로 정보안전연구에 종사한 노일대 전문가로서 연구사업에 종사한지 어언 40여년이 넘었다. 그는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에서 연구원으로 있었고 정보안전국가중점실험실기술위원회 부주임, 해방군정보공정대학 겸직교수, 북경대학 정보과학기술학원 겸직교수 등을 역임했다.

얼마전 필자는 북경 향산기슭에 있는 저택에서 남상호 교수를 만났다. 백발이 성성한 남상호 교수가 인자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암호를 연구하는 분이기에 다소 딱딱하지 않을가 하는 필자의 근심과는 달리 남상호 교수는 이웃집 어르신 같은 편한 느낌을 주었다.

"적아의 대치단계에서 중요한게 바로 정보의 보안유지이고 쌍방의 거레에서는 제일 중요한게 바로 정보에 대한 진위식별이지요." 남상호 교수는 이렇게 자기의 일가견을 밝힌다.

그는 네트워크의 정보안전 핵심기술을 개인정보 보호기술과 진위식별기술로 나누고 있었다. 그는 군부대에서 연구원으로 있는 기간 암호를 연구하는 보안유지에 주력했고 퇴역후에는 또 진위식별이론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의 첫 전자암호기 발명자

남상호 교수는 길림성 연길에서 고중을 졸업한 뒤 1955년 중국인민해방군 정보공정대학에서 4년간의 공부을 하고 본격적으로 암호연구에 발을 내디디었다. 이때부터 암호연구는 그의 일생을 동반하게 되었다.

기실 연구작업은 고리타분한 암호들의 수집과 정리, 배열이 기본이었다. 그 따분한 일상에서 남상호 교수의 남다른 집념은 빛을 발하며 하나 또 하나의 난제를 푸는 "열쇠"로 되었다.

"저의 연구생애에서 기억에 제일 남는 일이라면 '708 공정' 때 우리 나라의 첫 전자암호기를 만든 것입니다."

"708 공정"은 1970년 8월 중국인민해방군에 쾌속통신망을 구축하기 위해 시동을 걸었던 공정을 이르는 이름이다. 이때 남상호 교수는 중국 첫 전자암호기 설계사업에 참가했다. 그는 그의 전우들과 4년간 불철주야로 연구한 끝에 피아노 크기의 중국 첫 전자암호기 제작에 성공했다. 그때 당시 중국인민해방군의 극비사업을 지도하던 주은래 총리는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직접 보고싶다고 말했다. 남상호 교수는 대뜸 전자암호기 보고서를 작성하고 흥분된 심정으로 상경했다.

"그게 1975년 겨울이었지요. 그런데 솜옷을 벗어버린 4, 5월이 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기지에 돌아가서 대기하라는 총리 사무실의 연락이 떨어졌다. 남상호 교수는 기지에서 다시 반년을 기다렸다. 와중에 주은래 총리가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는 불행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때 남상호 교수에게는 또 다른 불행한 일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때 일부 극좌경향의 사람들은 남상호 교수에게 "맹목적으로 외국의 것을 따라한다"는 "죄명"을 씌웠다. 최초로 전자암호기를 만든 남상호 교수는 칭찬은커녕 비판의 대상으로 되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후 전자암호기는 비로소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1978년부터 중국인민해방군은 전자암호기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고 중국 암호사업도 수공작업에서 전자화로 나아갔으며 세계 선진국과의 차이가 몇십년에서 불과 십여년으로 단축되었다.

일찍 미국 국방부는 전자계산기로 지휘와 조절, 통신, 정보 각 시스템을 긴밀히 연결한 종합시스템인 전군지휘자동화시템인 "C3I"시스템을 실시했다. 국방네트워크가 설립된 후 보안 유지를 위해 미국에서는 1986년부터 국방보안네트워크 (SDNS)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 국방보안네트워크는 10만명 가입자가 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지만 제3자는 철저히 차단되는 전용망이다. 1987년 중국에서도 대형국방네트워크 안전보안시스템 구축에 착안, 그 연구제작임무를 남상호 교수한테 맡겼다. 중국 측의 사용자 규모도 10만명이였다. 통신보호망 건설에서 중미 양국은 같은 출발선에 있었고 공동의 난제는 바로 이 10만명 가입자에게 배분할 비밀열쇠를 어떻게 생성할것인가 하는 것이였다. 그때부터 남상호 교수는 수많은 수자, 암호와의 총성없는 전쟁에 돌입했다. 4년동안 수많은 연구와 실험을 거듭해 1991년에 끝내 "SAD-이중비밀열쇠산법"(双重密钥算法)을 제기해 이 난제를 극복했다.

"미국은 비록 중국보다 1년 앞서 연구에 몰입했지만 현재까지도 이 인증규모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상호 교수는 이렇게 말하면서 즐겁게 웃었다.

"인터넷기술은 미국이 우리보다 앞섰지만 안전보안의 각도에서 보면 우리보다 뒤떨어졌지요."

남상호 교수 등 몇몇 연구원이 함께 성공적으로 연구해낸 이 "SAD이중비밀열쇠산법"은 중국통신보안을 국제 선진수준에 이르게 했다.

군복무 기간 남상호 교수는 기술발명과 성과로 선후로 국가과학기술진보 2등상, 3등상 및 군대과학기술진보 1등상, 2등상을 수여받았다. 또 6차례의 공을 기입하며 부군장급 행정직함으로 퇴역했다.

남상호 교수가 집필한 저서들

사이버공간의 신분증 "전자비밀열쇠"

퇴역한 후 남상호 교수는 또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나중에 세계 3대 인증기술의 하나로 인정된 CPK기술을 내놓았던것.

CPK기술은 스노든의 개인정보수집프로그램 폭로사건으로 다시 여론의 초점을 받고 있는 사이버공간의 정보안전분야의 기술이다. 2013년 열린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는 국가안전위원회를 설립하고 정보안전사업을 나라의 전략적단계로 승격했다. 컴퓨터망은 20세기 80년대의 전용망에서 90년대의 인터넷망을 지나 현재는 공중망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공중망 시대에 정보안전기술연구에서 관건적인 기술은 바로 표지인증이다.

남상호 교수는 생소한 학술용어로 그의 암호세계로 우리를 안내했다. 표지인증은 통속적으로 말하면 신분에 대한 검증을 말하는데 모든 객체를 포함한 실체는 표지가 있다. 예를 들면 동일한 사용자는 메일로 통신할 때 메일주소가 사용자의 표지가 되고 전화로 교류할 때는 전화번호가 사용자의 표지로 된다. 그럼 사이버세계에서 그 해당되는 실체인지를 어떻게 검증할가? 남상호 교수는 몇년간의 반복된 연구와 노력끝에 2003년 그 물음에 해답한 CPK기술과 진리값증명기술(truth logic)을 내놓았다.

CPK(Combined Public Key) 기술은 미세한 요소로 조합방식을 통해 무한대에 가까운 비밀열쇠를 생성하는 암호 알고리즘으로 "매핑 알고리즘"(映射算法)을 통해 사이버공간에서 실체의 표지와 비밀 열쇠의 대응을 건립해 실체의 진위를 판단하는 것이다.

CPK "조합공개열쇠"를 설치한 쌀알만한 칩(芯片)에 개인의 문자와 그림자료 등을 저장함으로써 복사가 불가능한 "전자신분비밀열쇠"를 제작한 후 컴퓨터의 플래시메모리 혹은 은행카드, IC 카드에 탑재할 수 있다. 이 "전자신분비밀열쇠"는 본인만 사용할 수 있고 유실되면 타인이 사용할 수 없다. CPK인증기술은 CPK를 칩에 설치해 인증을 실현하는 체제로 인증과정에 주엔진의 자원을 소모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인증량측에 비밀통로를 설치해 철저한 보안을 유지한다. "전자신분비밀열쇠"를 사용하면 인터넷상의 지지가 없이 즉석인증이 가능하며 인증규모는1048 – 101000에 달해 전 세계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CPK는 단연 세계 3대 인증기술의 하나로 부상했다. 미국 국제비밀암호년례별회의 집행위원회 주석인 제임즈 p 휴즈는 "CPK는 표지에 기초한 암호화기술을 한 단계 승격시켰다."고 하면서 "이 기술은 알기 쉽고 보급하기 쉬우며 공개열쇠체제 및 표지에 기초한 비밀열쇠체제의 모든 우세를 결합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현재 이 기술은 민생은행에서 사용하고 있고 또 응용영역이 점차 확대되어 정부나 군사, 금융, 보험 등 영역에도 사용될 전망이다. 남상호 교수는 앞으로 이 기술을 이동통신영역으로 확장해 3G시스템 등 첨단안전인증 휴대폰에도 사용하여 비밀통신의 요구를 실현할 계획을 밝혔다.

저택앞에서 사진을 남긴 남상호 교수

그의 "행복세계"의 문을 여는 "비밀열쇠"

남상호 교수는 "암호" 이야기에 매우 들떠했다. 그의 말을 빈다면 그는 암호밖에 모르는 사람이였다. 언제인가는 어린 딸을 데리고 상점으로 가던 길에 "사고"를 쳤다고 한다. 딸을 남에게 맡겨놓고 사무실에 달려갔던것. 그때까지 머리에 담아두고 있던 연구과제의 "비밀 열쇠"가 문득 뇌리에 떠올랐다고 한다.

"저는 별다른 취미가 없어요. 하지만 노트북을 꼭 갖고 다닙니다."

남상호 교수는 무언가 머리에 떠오르면 하던 일들을 놓아버리고 그의 노트북을 연다고 한다. 예전에 노트에 연필로 꼼꼼히 생각을 기록하던 습관 그대로였다.

비록 가상세계의 암호에는 전문가였지만 가정이라는 이 작은 세계에서 그는 문외한이었다. 가정의 "비밀열쇠"는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던것. 연구에만 전념하다보니 집안생활은 안해가 전담하고 있었다. 성공한 남편 뒤에는 언제나 안해가 서있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상기되는 대목이였다.

부인은 오히려 그런 남편이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한다. "저분의 연구태도는 두 딸에게 모두 좋은 영향을 주었죠. 딸들은 모두 그런 아버지를 본받아 우수하게 잘 자랐습니다."

마침 저택을 방문한 남상호 교수의 동료도 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교수는 연구사업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분입니다.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공헌이 가장 많으면서 보수는 제일 적게 받습니다. 정말 쉽지 않다고 모두 극찬합니다."

"뭐 대단하지 않아요. 그저 본인이 할수 있는 일을 그냥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남상호 교수는 과찬이라고 말하면서 연신 손사래를 쳤다.

그는 또 "성공"을 위해 부지런히 뛰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했다.

"삶의 가치는 성공여부가 아닙니다. 성공여부는 자신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자신에 대한 판단이라고 할수 있지요. 무엇인가를 너무 집착하지 말고 또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에 최선을 하고 열심히 해야 합니다."

남상호 교수의 "행복의 세계"를 여는 "비밀열쇠"가 무엇인지 비로소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취재기자: 권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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