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28 15:01:13 | cri |
賣劍買牛(매검매우)
◎글자풀이: 매(賣),칼 검(劍),살 매(買),소 우(牛)
◎뜻풀이: 검을 팔아 소를 산다는 말로서 원래는 봉건통치자들이 봉기한 농민들로 하여금 칼을 놓고 농사일을 하도록 한다는 말이었으나 후에는 직업을 고쳐 농사일에 종사함을 뜻하거나 잘못을 뉘우치는 말로 사용되었다..
◎유래:
한선제(漢宣帝) 류순(劉詢)은 황제로 옹립되기 전에 민간에서 꼬박 18년 유랑하였다. 이 18년간 류순은 일반 백성의 갖은 시련과 고난을 다 겪었다. 그리하여 그는 황제로 된 후에도 마음속으로는 항상 백성들의 질고를 못 잊었다.
선제(宣帝)는 거듭 수상(水相)과 어사대부에게 강조하여 말하였다.
"일반 백성들의 바람은 쉽게 만족시킬 수 있네. 만일 정령이 간단명료하고 지방관원이 소송 안건을 방치하지 않고 열심히 들어주고 공평하게 처리하면 그들은 매우 만족하여 농사를 지을 것이며 국가 조세지세(赋税钱粮) 임무를 완성 할 것이네."
선제는 이러한 것을 감안하여 더 한층 수상에게 당부하였다.
"태수나 주자사(州刺史)와 같은 지방관리가 직접 민간 사무를 관리하면 그들의 적임(称职) 여부는 세상의 난을 다스리는 관건이 될 것이네. 그리하여 자네들이 지방관원을 선발 할 때 반드시 신중하고 필히 내가 직접 심사할 것이네."
선제는 관련 율령도 반포하여 선 지방관원이 빈번하게 전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였다. 그 이유는 지방관원의 안정은 백성이 그들을 신임하는데 유리하고 그들 또한 지방사무에 관한 이해에도 유리하기 때문이였다.
그밖에 지방관원 업적(政绩)이 출중하면 황제가 어지로 표창이 가능하고 녹봉과 상금(증봉,사금)을 인상하며 조정에 중요한 직무가 비였을 때 지방관원 중에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규정도 있었다.이런 임용정책은 여러 우수한 지방관원을 육성하였다. 그리하여 이 시기에 정치가 맑고 백성이 안정된 생활을 누리며 즐겁게 일하는 부흥 현상이 나타났다.
어느해 발해 일대에 기근과 가뭄이 들어 백성들은 의복과 음식이 변변치 못하였기에 적지 않은 착한 농민들이 막다른 처지에 몰려 모험을 마다하지 않고 강도가 되었다.
선제는 청렴하고 능력있는 관원을 파견하여 발해의 태수(太守)로 임용할 것을 결정하고 이리저리 고르다 못해 고희(古稀)가 넘은 습수(袭遂)를 선정하였다.
부임하기 전 선제는 습수와 어떻게 발해를 다스릴 것이냐고 물었다.
습수가 반문하였다.
"일반 백성은 아마 살길이 보이지 않아 모험을 마다하고 강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놓고 폐하께서는 파병하여 섬멸할 의견입니까? 아니면 감화교육 할 것입니까?"
선제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자네를 파견한 것은 당연히 자네가 도덕으로 그들을 감화시킬 것을 바란 것이네. 만약에 군사를 부리려면 나는 다른 사람을 파견했을 것이네"
습수가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반드시 폐하 어지 (旨意)대로 다스릴 것입니다.하지만 혼란스러운 지역을 다스리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니 짧은 시간내에 효과를 볼 것을 기대하면 안됩니다.저는 수상과 어사가 저의 지역 사무에 간섭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스릴 방법을 결정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선제가 말했다.
"이것은 쉬운 일이네. 내가 수상과 어사에게 발해 사무는 자네가 전권처리(全权办理)하고 있으니 그들한테는 개입 못하도록 할테니 자네는 안심하고 가서 일을 처리하게 모든 일은 내가 책임질 것이네"
습수가 깃발을 지니고 마침 발해변계에 도착하자 일찍이 사병대오가 나와 응접,보호하였다. 습수는 거절하고는 깃발을 든 하인을 데리고 부임하여 일을 시작하였다.
그가 부임하고 나서 즉시 백성에게 선포하였다.
"무릇 본분에 충실하여 농작물을 가꾸면 모두 좋은 백성이다. 반면에 칼과 검 무기를 사적으로 숨긴 자는 모조리 강도로 취급할 것이다"
포고문을 반포한 다음 습수는 곡물창고를 열어 빈민을 구제하라고 명령하였다.
부득이 강도로 간주된 자들과 병기를 사적으로 숨긴 자들은 바로 무기를 관부(官府)에 팔았고 습수는 가격에 따라 사들였다. 백성들은 칼을 판 돈으로 소를 사들였고 그로부터 발해는 잘 다스려졌다.
매검매우 사자성어는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후에는 잘못을 뉘우치는 것을 비겨이르는 말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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